김지하 시인은 극우 파시스트인가, 새로운 생명사상의 개척자인가? 최근 '유목-농경문화 통합론'과 '동북아 문화 공동체'를 주창한 김지하 시인의 비전이 사실은 '박정희식 국가주의'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이 비판은 김 시인의 서울대 미학과 동료이자 한살림 운동을 함께 일궜던 천규석 대구 한살림 이사와 생명ㆍ환경운동의 후배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에 의해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은 생태-농업 포기하자는 것"**
천규석 이사는 오는 15일 발행될 예정인 <녹색평론> 2005년 11~12월호(통권 제85호)에 기고한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은 사실상 도시의 농촌 흡수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또 다른 서울 중심주의, 시장 제국주의"라며 "그 연장선상에서 제시된 '한반도 문화 허브'론도 박정희의 국가주의 비전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천 이사는 김 시인과의 대학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인연을 담담하게 회고한 뒤 "최근 그의 담론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농업 관련 발언들은 여러 가지 의문과 이견을 자아내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지하는 (생태주의) 농업 일변도나 유목 일변도의 외짝 문명으로는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유목-농경적 통합 문명'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창조적 통합을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실체는 모호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천 이사는 "통합을 하려면 통합의 주체인 양쪽 당사자가 대등해야 하지만 이미 유럽과 미국의 도시 문명으로 상징되는 유목주의가 이미 온 세계 농촌을 모두 짓밟거나 흡수통합해버린 시장 제국주의 시대에 그것과 통합될 농업과 생태주의는 없다"며 "김지하의 주장만 듣고 보면 마치 생태주의 농업이 세계적인 유목주의에 대등하게 저항하거나 심지어 압도하고 있는 듯 들린다"고 꼬집었다.
천 이사는 "둘의 통합 이전에 통합의 한 대상인 지역의 농민과 농사부터 먼저 살리는 것이 순서"라며 "이런 고민이 없는 김지하의 주장은 지금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속에서 유목주의의 흡수통합 압력에 맞서 어렵게 숨을 지탱해 오고 있는 생태주의와 농업에 희망과 용기를 주기보다는 '김 빼고 초 쳐' 흡수통합된 상태 그대로 두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지하, 도시중심 문화의 우월주의 극복 않고는 아무 것도 못해"**
천규석 이사는 더 나아가 김지하 시인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문화운동 우선주의'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전개했다.
천 이사는 "김지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인터넷 등 디지털 문화가 활발해지는 이 때 생명운동가들이 귀농과 같은 실천에 매달려 있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심지어'생태 파시즘'이라고 매도하면서) 디지털과 에콜로지가 공생하는, 즉 노트북, 자동차,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도 유기 농산물을 먹는, 두 가지 다 지향하는 문화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김 시인의 문화운동론을 소개한 뒤 "온갖 도시의 기득권은 그것대로 다 누리면서도 납 들어간 조기와 오염된 썩은 배추 대신 건강한 유기 농산물을 먹고 싶다는 그의 주장은 지나친 욕심으로밖에 안 들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도대체 도시에서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도시로, 도시로 가는 현실에서 그 유기 농산물은 누가 농사를 지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천 이사는 "더구나 생명운동의 대부로 자처했던 사람조차 생태와 농업보다 은연중에 유목문화와 도시에서 하는 문화운동을 우위에 두고 실재하지도 않는 생태농업과 도시 유목문화의 통합론을 펴고 있는데 (지역에서) 남아날 생태와 농사가 어디 있겠느냐"며 "그의 비전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일부 소수의 '잘난 놈'들이지 모든 세계 민중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천 이사는 "농업만으로 인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 대세인) 태생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고 비(非)자급적인 유목문명만으로도 더 이상 안 된다"며 "지금 필요한 진정한 문화운동은 '도시중심ㆍ유목중심의 교육과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끝까지 밝히고 폭로해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공동체 교육과 문화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자치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락 한 포기 안 심고도 잘 먹고 잘 사는' 그 도시 중심 문화 우월주의부터 극복하지 않고는 사람의 마음도 세상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하가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 국가의 목표가 고작 박정희 비전이라니…"**
천규석 이사는 또 "한반도 전체를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다리로 보고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지,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올라서자는 김지하의 주장은 박정희의 공업화 국가 비전과 다를 게 없다"며 "굳이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가 단순한 물질과 산업적 물량중심주의자라면 김지하는 지식, 정보 등 문화적 물량중심주의자라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천 이사는 "이런 지식, 정보, 문화의 물량중심주의 또한 박정희 식의 산업적 물량중심주의의 결과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결코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며 "같은 비전의 물량-물류 국가주의도 박정희가 하면 독재고 김지하가 하면 민주주의냐"고 반문했다.
그는 "김지하가 목숨 걸고 그에 대항해서 쟁취한 민주화된 국가 목표가 박정희의 비전과 차별점이 없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런 천 이사의 주장은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이 최근 발행된 <말> 11월호(통권 제233호)에 기고한 또 다른 김지하 시인에 대한 비판 '나치 칭송곡 울린 바그너가 되려는가'와 일맥상통한다.
우석훈 실장은 "김지하가 지난 1월 펴낸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은 저자 이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어느 극우파 사상가가 쓴 것이라고 오해될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제조업에서 벗어나 서비스와 문화 컨텐츠를 중심으로 육성하면 한반도가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신세대와 지식인들에 의해 세계적 문화 대혁명이 한반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나치 치하 제3제국의 영광에 대한 노골적 칭송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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