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온건파'의 전격 지지로 원내 사령탑에 오른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취임 첫 날인 13일부터 대여(對與)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나서는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이 대표는 "안정된 당 운영"을 강조했던 당선 제일성처럼 당장은 당내 마찰을 최소화해 가며 박근혜 대표의 경계심을 푸는 데 주력하기로 마음을 정한 듯 하다.
***"박 대표 뜻에 양보하겠다"며 신뢰 쌓기에 주력 **
이 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 회의를 주재하며 "박 대표와 당무를 협의함에 있어서 의견이 다를 경우는 내가 양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자리에 박 대표가 참석치는 않았지만 참석 대상 대부분이 '친박(親朴)' 성향으로 분류되는 지도부 회의였다.
이 대표는 "갈등의 냄새도 나지 않게 하겠다"며 연신 박 대표와의 불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이 대표는 사학법 투쟁을 두고도 급격한 방향전환을 시도하지는 않을 태세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를 통해 "나는 병행 투쟁을 말해 본 적이 없고 내 생각은 재개정 투쟁을 장외에서 더욱 폭 넓게 해 나가다가 여당이 받아들이면 그때 등원하겠다는 것"이라며 당장은 박 대표가 이끌어 온 장외투쟁에 동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당내 현안을 이유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며 여권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이 대표는 "황우석 파동에 드러난 노 정부의 책임 문제는 형식 여하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모든 자료를 수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외에도 윤상림 게이트, 'X파일' 도청 문제 등 사학법에 묻혀졌던 이슈들을 두고 적극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한때는 대척점에 서 있던 박 대표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이 대표인 만큼, 이같은 관계개선 노력이 한동안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등원 결정 두고는 '힘겨루기' 불가피 **
그러나 '밀월기간'도 길어야 한 달이다. 2월 임시국회 협상 과정에서 사학법 재개정 방향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서부터 두 지도부 간의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 대표는 사학법 쟁점인 개방형 이사제와 관련해 초중고교와 대학을 분리해 도입하자는 대안을 내놨다. 요컨대,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을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주장인 만큼 전교조가 없는 대학에는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그러나 개방형 이사제 수정만으로는 "원천무효에 가까운 개정"이란 박 대표의 요구를 채우기 힘들 뿐더러, 박 대표가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여기는 사학법을 이 대표는 '협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데서부터 사안을 바라보는 두 지도부 간의 시각차가 확연하다.
여야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조기 등원을 압박하고 있는 소장파 그룹과의 관계설정에서도 두 '대표'간의 갈등이 예상된다.
박 대표는 지난 연말 의총에서 등원 거부를 계속하자는 당론이 정해진 이후에는 소장파들의 의견에는 철저히 귀를 닫고 있다. 원희룡 최고위원이 언론을 통해 등원을 주장했을 때에는 "열린우리당 대변인이냐"며 노기(怒氣)마저 띄었다.
그러나 소장파의 지지로 당선된 이 대표는 다르다. 이 대표는 이날 "(소장파 그룹이) 당을 위해 생산적인 말씀을 해 주시는데 충분히 반영해야 되지 않겠냐"며 "무조건 배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동안 내가 비주류의 상징처럼 돼 있었는데 내가 당직을 맡았으니 우리가 주류가 된 것이다. 당의 주류와 비주류는 늘 바뀐다"는 이 의원의 농이 그저 농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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