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이 무너지고 진실이 스스로 입을 여는 순간, 거짓말을 나팔수처럼 앞장서서 전파해 온 언론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경향〉 "진실보다 '객관과 균형'이라는 미명에 의탁했다" 자성**
〈경향신문〉은 24일자 사설 '언론의 본연을 되새긴다'를 통해 "무너진 것은 '황우석 신화'만이 아니다"라며 "진실 추구라는 기본 사명을 방치했던 언론도 그 신뢰의 근간을 잃어버렸다. 아직도 신화의 붕괴를 믿고 싶지 않은 국민들의 실망과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을 이토록 키운 것은 바로 언론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경향〉은 "'황우석 신화'는 거짓과 조작으로 잉태됐으나 그것을 수립하고 확장해 온 것은 언론"이라고 명확히 하며 "소위 이땅의 주류 언론들은 외롭게 분투해 온 이성과 성찰의 힘들이 모아져 진실의 자락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써 눈감으려 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우리는, 경향신문은 과연 이성과 진실의 편에 제대로 서고자 성찰했던가. 우람한 허위의 성채를 향해 진실의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해 왔는가"라고 되물으며 "황우석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경마보도하며 희망을 과장했고, 허울에 발맞춰 온 것은 경중의 차이로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답할 수 없다"고 반성했다.
이 신문은 또 "거대한 해일이 되어 닥친 여론이라는 광풍 앞에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진정 물으려 하는 용기보다는 '객관'과 '균형'이라는 미명에 의탁하려 했음을 감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뼈아픈 자성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언론의 본연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SBS〉역시 23일 저녁 보도를 통해 "저희 SBS는 지난 5월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잡지 논문을 사실로 믿고 전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의 판단에 큰 혼선을 빚게 해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충분한 확인과정을 거쳐 진실을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언반구 없는 〈YTN〉, "본보도 반성" 슬쩍 걸친 〈동아〉**
그러나 "MBC 〈피디수첩〉이 강압적 취재를 했다"는 보도로 사태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친 〈YTN〉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으며, 〈동아일보〉는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를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아〉는 24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태는 성과 위주의 '빨리빨리 문화'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외국 언론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운을 뗀 뒤, "황 교수가 정치권과 지나치게 말착한 것도 과학자의 정도는 아니었다"고 황 교수 본인과 우리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일차적 책임 소재로 꼽았다.
이어 도마 위에는 "오래 전에 줄기세포 오염을 보고받고도 안이하게 대처한" 청와대와 "황 교수의 연구가 부풀려진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아 결국 기만극을 방조한" 일부 과학계가 올랐다.
〈동아〉는 "국민이 황 교수팀에 지나친 기대를 갖게 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세계 최초에 현혹돼 황교수 측의 말을 받아쓰기에 바빴다"며 "취재윤리를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MBC 〈PD수첩〉 팀이 진실 발견에 기여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마지못해 언론 일반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였다.
〈동아〉는 결국 "다시는 거짓 신화에 휘둘리지 않는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떤 실수와 실패를 했는지,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국가적'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두리뭉실하게 '우리 모두'의 책임론을 제기한 뒤 사설 제일 끝에 "본보 역시 황우석 파동을 자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꼭 한 마디 덧붙였다.
이같은 태도에 대해 언론계 안팎에서는 "비겁하게 일반적인 책임론 뒤에 숨어 '나도 반성했다"는 기록이나 남기고 넘어가려는, 지극히 얄팍한 행태"라며 "자신의 과오를 정면으로 당당하게 인정하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동아일보의 미래는 없다"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과학 사기' 아닌 언론이 조작한 '환상 붕괴' 사건"**
언론들의 뒤늦은 해명과 사과를 보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글을 올린 한 젊은 과학도는 "언론은 단순한 사과문 정도로는 이번 황우석 사기 사건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할 수 없다"며 "언론이 진정으로 사죄하는 길은 스스로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파헤치고 분석하여 그들 스스로의 종합적인 보고서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사회에서 각 사회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일차적으로 언론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스스로 그 역할을 저버렸다"면서 "언론들은 황우석이 어떻게 해서 국민 영웅으로 자리매김 되었는지, 영롱이 같은 경우에는 왜 학계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사실들이 국민들에게 사실인 양 보도될 수 있었는지, 그렇게 된 배경과 동기를 낱낱이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이번 황우석 사건은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과학 사기 사건'이 아니라, 모든 한국 언론들이 합심해 만들어낸 환상이 일거에 사라지면서 일어난 사건 아닌 사건"이라며 "지금이라도 언론이 '내용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경향〉 〈동아〉 사설과 〈SBS〉 보도의 전문.
***〈경향〉 언론의 본연을 되새긴다**
무너진 것은 '황우석 신화'만이 아니다. 진실 추구라는 기본 사명을 방치했던 언론도 그 신뢰의 근간을 잃어버렸다. 아직도 신화의 붕괴를 믿고 싶지 않은 국민들의 실망, 한 줄기 희망을 붙들었던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을 이토록 키운 것은 바로 언론이기 때문이다.
'황우석 신화'는 거짓과 조작으로 잉태됐으나 그것을 수립하고 확장해온 것은 언론이다. 외롭게 분투해온 이성과 성찰의 힘들이 모아져 진실의 자락들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써 눈을 감으려 한 것이 바로 이 땅의 소위 주류언론들이다. 언론은 맹목의 질주에 동참했고, 허위의 신화를 만든 공범이었다. 그래서 진실에 의해 그 허위가 드러나는 것을 끝내 두려워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곧 엄청난 국가적 이익을 가져오고, 당장에 난치병 환자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성대하게 홍보해왔기에 그것을 깨는 엄혹한 진실을 추적하지 않으려 했다.
'왜'라는 기본적 질문조차 거부하는 그 거대한 광기 앞에 외롭게 맞서온 MBC 'PD수첩'과 프레시안 등 '또 다른' 언론이 있었기에 이제 진실의 앞에 섰다. 여기서 사실과 과학의 영역에 이념을 들이대고, 진실을 향해 힘들게 질문을 던져온 이성의 노력에 색깔론까지 입힌 보수언론의 야만성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향신문은 과연 이성과 진실의 편에 제대로 서고자 성찰했던가. 우람한 허위의 성채를 향해 진실의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해왔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황우석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경마식으로 따라 보도하며 희망을 과장했고, 그 연구의 진짜 자리보다는 그 허울에 발맞춰 오지 않았는가. 경중의 차이를 이유로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답할 수가 없다. 거대한 해일이 되어 닥친 여론이라는 광풍 앞에서,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진정 물으려 하는 용기보다는 '객관'과 '균형'이라는 미명에 의탁하려 했음을 감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이 고개를 떨구는 이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한 방조자였을 수도 있었다는 자성의 칼을 벼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뼈아픈 자성을 통해 오로지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언론의 본연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SBS〉 "시청자 판단에 혼선 빚어 죄송"**
저희 SBS는 지난 5월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잡지 논문을 사실로 믿고 전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의 판단에 큰 혼선을 빚게 해드렸습니다.
이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앞으로 더욱 충분한 확인과정을 거쳐 늘 진실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아〉'황우석 신화' 붕괴, 국가적 自省 계기로**
무너지는 황우석 신화를 지켜보는 국민은 허탈하다. 성과 위주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외국 언론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황 교수 연구팀의 고의적 논문 조작은 진실을 추구하는 절차와 윤리를 무시하고 조급하게 성과에만 매달린 데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정직하지 않은 것이 치명적 화근(禍根)이었다. 임상실험을 거쳐 난치병의 치료까지 가려면 숱한 난관을 뚫어야 하는데도 황 교수는 곧 실현될 것처럼 과장해 환자와 국민에게 환상을 심어 주었다.
황 교수가 정치권과 지나치게 밀착한 것도 과학자의 정도(正道)는 아니었다. 논문과 직접 관련 없는 대통령보좌관을 공동저자에 포함시킨 것도 그렇다. 황 교수는 연구실에 파묻힌 과학자라기보다는 대중스타처럼 과학 외적 활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업적에 대한 정부의 과잉 기대와 검증 소홀도 '뻥튀기'를 부채질했다. 청와대가 논문에 제시된 줄기세포의 오염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보고받고도 안이하게 대처한 것도 상황을 더 악화시킨 한 요인이다. 이는 정부의 문제대응 능력이 취약함을 보여 준 것이다.
국민이 황 교수팀에 지나친 기대를 갖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세계 최초'에 현혹돼 황 교수 측 발표를 받아쓰기에 바빴던 나머지 검증에 소홀했고 과학계 일각의 문제 제기를 소홀하게 넘겨 버렸다. 취재윤리를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MBC 'PD수첩'팀이 진실 발견에 기여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일부 과학계는 황 교수의 연구가 부풀려진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아 결국 기만극을 방조했다. 그나마 젊은 과학인들이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 것은 과학계의 건강성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황 교수가 퇴장하더라도 줄기세포를 포함한 생명공학 연구가 시들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실제 존재하는 기술과 조작된 허위를 명백히 구분해 줄기세포 연구의 맥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는 거짓 신화에 휘둘리지 않는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떤 실수와 실패를 했는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국가적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본보 역시 황우석 파동을 자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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