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연구원들의 눈물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연구원들의 눈물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기자의 눈] 이제는 황우석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23일 오후 서울대 수의과대학 정문 앞에서 교수직을 사퇴한다고 말하는 황우석 교수의 모습은 '논문 조작'을 저지른 사람답지 않게 사뭇 비장했다. 황 교수의 비장한 표정은 그의 등 뒤에 선 연구원들의 울음소리와 겹쳐지면서 더욱 더 극적으로 보였다.

사실 이번 사태로 가장 크게 실망하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그 연구원들일 것이다. 한 달에 채 100만 원도 안 되는 수당을 받아가며 일해 온 연구원들의 희생과 노력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연구원들은 황교수에 대해 원망하기보다는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태도가 더 두드러졌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기자들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그들은 왜 울었을까. 연구원들에게 직접 물어보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황 교수팀의 연구원들은 기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황 교수팀 소속이 아닌 다른 수의대 학생이나 연구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우상의 붕괴**

수의대를 다니는 한 학부생은 "사실 나도 울고 싶다. 충분히 공감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제까지 황우석 교수는 수의대의 희망이었다"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수의대 연구원의 대답도 비슷했다. 그는 "아무리 황우석 교수가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연구원과 교수의 관계는 결코 적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며 "생명공학은 특히 경쟁이 심한 곳이고, 외부로부터의 압박이 심한 만큼 교수와 연구원 간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답했다.

이런 답변의 의미는 줄기세포 연구의 특성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줄기세포 연구는 특히 분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있는 분야이고, 연구원들은 다른 연구원보다는 교수와의 관계에서 더욱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즉 연구원들은 연구원으로서의 자기 이해관계를 생각하기보다 교수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업적을 중시한다.

하지만 그 중에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한 연구원은 "황 교수팀의 한 연구원이 '앞으로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고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며 "물론 연구원들에게는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겠지만, 이렇게 논문조작까지 저지른 황 교수팀에 몸을 담았다는 것이 경력에 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황우석이라는 인물은 단지 서울대 수의과대학만의 우상은 아니었다. 황우석은 '이공계 기피현상'까지 있었던 한국사회가 과학의 가치를 돌아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다'는 단꿈에 젖기까지 했다. 연구원들의 울음은 이런 '거대한 단꿈'이 한순간에 붕괴된 데 따른 충격 때문이었고, 그들의 심정은 아마도 대다수 국민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의과대 학생과 연구원들 중에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한 학부생은 "수업시간에 황우석 교수는 학부생 한 명까지도 잘 챙겨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며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함께 가슴 아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사람은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연구원이 아니라 황 교수를 비교적 멀리서 바라본 학부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평가는 황교수의 실제 품성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TV 토론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황우석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애초에는 '신묘한 기술'에 대한 경탄이었는데 점점 황우석 개인에 대한 애정과 집착과도 얽혀들어갔다. 애초에 황우석 교수에 대한 국민들의 열광은 난치병 환자를 낫게 할 수 있다는 기술에 대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황 교수 개인에 대해 상식선을 넘었다 싶게 근거 없는 신뢰와 애정을 보내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한국의 미래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황 교수 개인이 아니라 줄기세포 기술 그 자체다. 진정한 생명과학의 발전을 바란다면, 또 진정 난치병 환자가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형편없이 손상된 과학의 신뢰 회복이 먼저다. 황 교수의 논문조작으로 땅에 떨어진 줄기세포 기술에 대한 신뢰를 되찾아야 하고, 윤리적인 문제 없이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길은?**

황 교수의 논문조작을 인정하는 서울대의 중간 조사결과 발표까지 나온 지금, 그동안 이번 사태를 바라보아 온 우리 모두의 '시선'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혹은 '나'는 지금껏 황우석 개인 또는 황우석 사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가? 과도한 기대와 그에 뒤이은 처절한 배신감이 주조였지는 않았나? 아니면 바이오 주가가 폭락하는 데 따른 걱정과 같은 사적인 이해관계에서 사태를 바라본 측면은 없는가?

지금껏 욕도 하고 푸념도 내뱉고 눈물까지 흘려보았으니 연구자건 일반시민이건 지금 필요한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허심탄회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과학과 과학자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자세, 그리고 고리타분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직의 덕목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둘러가는 길은 없어 보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