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6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보다는 어두운 과거의 망령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계약 등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뻔뻔스러운 행동 때문이었죠.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면 항상 우리가 피해자였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가 그렇죠.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서 민간인 학살 등 가해자의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되는 해 입니다만, 과연 우리는 베트남에서의 우리의 잘못을 깨끗하게 능동적으로 청산 했는지..의문이 듭니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을 주제로 다룬 시집이 출간됐는데요. 오늘 집중인터뷰에서는, 신작 시집 '미스 사이공'을 내 놓은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이동순 교수를 모시고, 시집을 내 놓은 배경과 한국과 베트남의 불행한 과거를 어떻게 씻어 낼 수 있는지,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시집 '미스 사이공'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이동순 영남대 교수입니다.
이동순 교수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경북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1989년에는 문학평론 신춘문예에 당선됐습니다. 지금까지 시집 11권, 다수의 평론집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고, 특히 우리 문학사에서 잊혀졌던 작가와 월북작가들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왔습니다. 신동엽 창작기금, 난고 문학상, 시와 시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동순 교수 : 선생님, 반갑습니다.
박인규 : 12번째 시집인데요? '미스 사이공'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이동순 교수 : 글쎄요. 과거에 흘러간 시간을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 제가 발간했던 '미스사이공'은 시 작품을 통한 과거사의 정리..이런 차원에서 기획을 했습니다.
박인규 :예전 시집 중에서도 미국을 갔다 오신 경험을 시로 쓰시기도 하고, 실크로드를 다녀오신 경험을 시로 쓰시기도 했는데 베트남에도 3년전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동순 교수 : 그렇습니다.
박인규 : 어떻게 해서 베트남에 대해 쓰시기로..또 과거사를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는지..그 계기가 있습니까?
이동순 교수 : 베트남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고 대면하게 된 것이 만 3년이 됐는데요. 그런데 제 자신에게 있어서는 베트남이라고 하는 곳이 하나의 창문이라고 할까? 그런 구실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저의 베트남에 대한 관심을 시집으로 표현했다기 보다는 베트남을 통해서 한국을 혹은 한국인을 다시 되돌아 보자..라는 그런 계획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베트남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으신 것이 3년 되었다고 하셨는데, 한 달정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가시게 됐고, 그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동순 교수 : 네. 영남대에서는.. 전국 여러 대학들이 그런 계획들을 가지고 실천해 옮기는 중인데,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학생 해외 봉사단을 파견해서 봉사활동을 하게 합니다. 그런 여러 계획들 가운데 베트남이 선택이 됐었고, 제가 그 가운데 일환으로 베트남에 파견되는 해외 봉사단 단장으로 한 달동안 다녀오게 된 것이죠.
박인규 : 그 곳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을 62편의 시집에 담았는데, 그 중에 '미스 사이공'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하고요. 혹시 어렵지 않으시다면 '미스 사이공'이라는 시를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낭송을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동순 교수 : 낭송에 솜씨가 없지만 한 번 노력해 보겠습니다.(웃음)"미스 사이공" 저는 죄가 많아요/ 왜 그리도 쉽게 정을 주었던지 / 거듭 말씀 드리지만 그분은 저를 사랑했습니다 / 이름조차 모르고 / 한국의 사는 곳도 알지 못합니다 /김씨라는 성만 기억합니다 / 그때 태어난 그분 아들은 이제 청년입니다 / 서러운 라이따이한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지난 수 십년 / 흥건한 눈물의 세월이었지만 / 언제나 저를 / 미스 사이공이라고 불러주던 / 그분을 기다립니다 / 언제까지 돌아오기 만을기다립니다 / 저 멀리 있는 세상 / 삶이 더 이상 가혹하지 않은 곳 / 그 곳에서 저는 / 그 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박인규 : 네. 맹호부대 청호부대로 갔던 김모군인을 사랑했던 베트남 여인의 시로 군요? 라이따이한이라고 하죠? 말하자면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낳은..라이따이한이라는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이동순 교수 : 라이는 오다..라는 뜻인 거 같고요. 중국음과 흡사한 느낌이 있는데..따이한은 대한이고..50대 이후에 베트남 전쟁에 구체적인 경과와 실체를 느낌으로 하는 분들은 라이따이한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죠. 적성국가의 자식이다..
박인규 : 전쟁을 해 보신 분들은 그런 느낌이 드시겠군요?
이동순 교수 : 네.
박인규 : 지금 라이따이한이 대략 3~40대가 됐을 텐데..대략 몇 분이나 계시는지..
이동순 교수 : 구체적인 자료를 제가 확실히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수천명 선에 달하지 않을까..그렇게 추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3년전에 가셨을 때도 그런 라이따이한 분들을 만나보셨습니까?
이동순 교수 : 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시골이나 호치민 시에서 식당이라든가, 어떤 간이 상점..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베트남 주민들의 중심부에서 아주 소외된 주변부인생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그 분들은 그 곳에서도 약간은 이방인 취급을 받는 건가요?
이동순 교수 : 굉장히 엄격한 구분과 어떤 편견..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라이따이한 분들은 한국을 오고 싶어 합니까? 어떻습니까?
이동순 교수 : 무척 오고 싶어 합니다. 특히 월드컵 축구라든가, 올림픽..이런 커다란 세계사적인 이벤트를 한국에서 치른 후에 한국이 아주 중요한..선망의 모델로 떠오르면서 아버지의 나라..한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경향이 참 많습니다.
박인규 : 아버지를 찾은 라이따이한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가 보죠?
이동순 교수 : 아주 극소수가 아닐까..싶고요. 거의 십중팔구는 설사 한국을 여비를 장만해서 왔다 하더라도 거부를 당하죠. 아버지가 숨어 버리거나..
박인규 : 그렇습니까? 그 라이따이한 문제도 크지만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민간인 학살 부분..미국 같은 경우는 그것이 많이 공론화가 됐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문제는 제기가 되고 있지만 아직 진상 같은 것은 제대로 규명이 안 된 것 같아요. 지금 말씀하신 중에 그 당시에 전쟁을 해 봤던 50대 후반의 분들은 한국에 대한 적대심이랄까? 분노를 보인다고 하는데..어떻습니까? 가보시니까요?
이동순 교수 : 저의 이야기를 먼저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전쟁범죄 박물관이라고 하는 곳이 호치민시의 중심부에 오픈이 되어 있는데,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니 주로 미국의 참전국가들의 적대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사례와 증거물들을 수집해 놓고 있는데, 한국 관련 기록을 전시해 놓은 한 코너가 있습니다. 그 곳에도 역시 한국 관련 기록을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의식을 가지고 기록을 해 두었었다고 하는데..최근 3~4년 안쪽에서 그 한국과 관련 된 증오심의 문구를 완전히 치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인규 : 가급적 그런..말하자면 적대적인 것은 치워버리는..
이동순 교수 :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보다 강화하기를 바라는 어떤 베트남 정부의 배려가 아닐까..
박인규 :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나라의 전쟁 기념관에 가 보면, 75년 4월 30일을 월남폐망이라고 써 있다고 하는데..어떻게 잘 된 건가요?(웃음)
이동순 교수 : 양쪽에서 보면 그 시각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죠.
박인규 : 폐망이라고 하면,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쉽게 가고 있으면서도..(웃음)
이동순 교수 : 남부월남을 일컫는 말이겠죠.
박인규 : 2002년도에 베트남에 한 달여 동안 다녀오셨다고 했는데..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기간인데..한 달을 다녀오시고 나니까 베트남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느낌의 차이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동순 교수 : 물론입니다. 1개월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10년 세월에 해당하는 밀도를 지니고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는데..저는 참 호기심이 많고 어떤 지역으로 가면 먼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시장통이라든가..어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느껴지는 골목을 많이 헤집고 다닙니다. 호치민시에 있는 동안 제가 공식적으로 봐야 하는 임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쪽 임무를 소홀히 하면서 호치민 시내 구석구석을 뒤집고 누비고 다니면서..어떤 스케치를 많이 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가슴 속에 진한 장면들도 담고..그것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이번 시집으로 묶여진 것이 아닌가..싶습니다.
박인규 : 베트남을 소재로 한 문학들이 예전에 전쟁 당시에도 나왔지만..최근에도 자주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 제가 본 것은 2년전에 김정환 시인이 '하노이 서울시편'이라고 쓰셨는데, 그 김정환 시인의 시 중에 보면, 한국문학 작가들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한 마음과 함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면 오히려 그 쪽에서는 '괜찮다..' 이런 식으로..어떻게 보면 통 크게 나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어떻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떠나서 예전에 어떤 베트남 전쟁 때 우리의 역할과 관련 된 라이따이한 문제라든가, 민간학살 문제라든가..그런 문제들을 서로가 흔쾌히 풀 수 있는..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신 것이 있으십니까?
이동순 교수 : 제가 베트남에 가서 여러 분들을 만났을 때, 베트남 사람들의 국민성이라고 할까? 대단히 배포가 크고 아주 여유롭고 무엇인가 참 통 큰 민족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로 어떤 것에서 느꼈냐 하면은..미국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이 승전한 국가이다..라고 하는 그런 자부심을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들었는데..미국이 무언인가 경제적 원조를 해주고 싶어한다는 제의가 들어 왔을 때 베트남 국민들은..'그건 말도 안돼..폐전국이 어떻게 승전국을 원조한단 말이야..오히려 우리가 원조를 해 줘야지..' 라고 하는..이런 얘기들을 통해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어떤 통일에 대한 자부심..물질적으로는 현재 빈곤하고 힘겹지만 무언가 통일을 이룬 것에 대한 성취나 보람..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인규 : 저희들로서는 앞으로도 베트남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상호 이해하는 것들이 상당히 필요하겠네요?
이동순 교수 : 참 중요한 문제인데요. 현재 한국인 관광객들이 호치민시와 북부지역..여러 지역으로 많이들 가시는데..참 베트남으로 여행하시는 분들이 특별히 마음 속으로 유념하셔야 될 점들이..한국과 베트남의 예전 관계성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을 하시고 가셔야지..조금 무언가 의미있는 여행이 되고 겸손한 여행이 될 텐데..
박인규 : 돈이 있으신 분들은..돈 자랑도 하시고..(웃음)
이동순 교수 : 위락과 유흥으로 베트남 국민들을 깔보는 모습이 현지의 주민들에게는 굉장히 상처를 준다고 들었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는 미래 지향적인 얘기를 해 보죠. 물론 50대 후반으로 넘어가신 분들은 한국에 대한 과거의 분노의 감정이 있기는 하지만..대체로는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는 말도 많이 들려요? 한류도 대단하다고 그러고..심지어는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새마을 운동 노래인 '새벽종이 울렸네~'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어떻습니까? 한류가 정말 대단합니까?
이동순 교수 : 실제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가서 머물고 있던 기술학교에서는 텔레비전이 한 층에 한 대가 있는데 학생들이 가장 열광하는 프로그램이 한국 드라마..당장 배우 이름 대기를 장동건, 김희선..이런 이름들이 금방 나오고요. 그리고 한국 축구 대표팀의 경기 장면들..굉장히 열광하면서 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나가 보면 낯선 나라에 온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가리봉동, 말죽거리라고 하는 이런 지명이 그대로 달려 있는 버스가 호치민 시를 달리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어떤 한류에 대한 것들로..직접 피부로 느끼게 하죠.
박인규 : 어떻습니까? 한국은 중국이라는 커다란 나라의 동쪽 끝에 있었고, 베트남은 서쪽 끝에 있으면서 중국의 대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상당히 서로 노력을 한 것인데..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문화적이나 역사적으로 공통점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직접 가보시니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이동순 교수 : 우선 지형적으로도 아주 흡사하지만, 순환의 역사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모진 침략과 박해와 유린의 역사를 어렵게 어렵게 극복해 가면서 살아 온 민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참 동질성이 많은 민족이라는 것을 느꼈고, 특히 현재 베트남은 최근에 통일국가를 이뤘는데 한국으로서는 그 점이 참 부러운 것이죠.
박인규 : 약간은 다른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동순 교수님은 시집을 12권이나 내시고 문학평론에 계신 정통문학인이시면서도 대중가요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대구 모 방송국에서 DJ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이동순 교수 : DJ라고 하면 우습고요.(웃음) 흘러간 추억의 가요프로그램인데..주로 식민지 시대 노래나 1960년대 이전의 가요를 제가 참 좋아하고 즐겨부르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저희가 속된 말로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하는데..뭐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명칭입니까?
이동순 교수 : 뽕짝이라는 말은 참 경멸스러운 어휘이니까..쓰지 않는 것이 좋겠고요. 전통가요라는 말도 조금은 거부감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트로트라든가, 흘러간 노래..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싶습니다.
박인규 : 대개 시를 쓰시는 분들은 이른바 순수문학이라고 해서 대중가요나 대중문학에 대해서 약간은 내려 보는 경향이 있는데..어떻게 시를 쓰시면서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시게 됐는지..어떤 이유가 있으신 지 궁금하네요?
이동순 교수 : 제가 주로 창작 쪽이든, 연구 쪽에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감추어진 진실, 은폐되어 있는 것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놓쳐버리고 있는 것들..이런 것들에 관심이 유달리 많습니다. 그래서 고물상도 뒤지고 다니고, 골동품점도 뒤지고 다니면서 유성기음반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다든가, 혹은 문학사 쪽에서 잊혀진 문학인들의 기록들이나 자료..분단시대에 매몰 문학인들이죠? 그것들을 맨 처음으로 전집을 내기도 했었는데..그 이후에 몇 권의 작업들..시를 쓸 때에도 그러한 활동들과 관련된 것이지..이탈되어 있다고는 생각 되지 않는 군요.
박인규 : 대부분이 모르고 잊혀졌지만 상당히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는 부분에 관심이 많으신 거군요?
이동순 교수 : 원래 제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서 다시 그 자리에 복원시키는..이런 것이 창작이나 연구하는 것에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자기 자리를 찾아 주는 것..라디오에서 DJ..라는 표현이 적절할 지는 모르겠지만..하시면서 주로 일제시대부터 60년대까지의 우리의 전통가요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우리 전통가요의 제자리라고 할까요? 의미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어디입니까?
이동순 교수 : 우리 국민전체가 너무나 열광하고 흠뻑 취합니다. 그 노래를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그것에 있는 대중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에 대해서 그 동안 고급한 문화를 추구해온 문화인들이 너무 홀대하고 경시를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흘러간 옛 가요들의 노래 가사를 보면 굉장한 생활사적 중요 자료들이 그 속에 들어 있는데요. 그 시대를 훌륭히 증언하고 있고..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보면, 그 시대에 나타났던 문학 작품들보다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시장의 어느 한 부분으로 이 가요시를 반드시 되찾아 놓아야 한다는..이런 관점을 가지고 논문도 쓰고, 그런 MC 활동도 하곤 합니다.
박인규 : 혹시 이교수님이 전공하신 대중가요를 베트남에 가셔서 전해 주신 적은 있으십니까?
이동순 교수 : 학생들과 어울릴 때 한국 가요를 불러 본 적은 있지만 그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듣지..자기들의 가슴으로 와 닿지는 않겠죠?
박인규 : 저만 해도 이교수님보다 연배가 10년쯤 밑 인거 같은데요.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힙합이라든가하는 것은 예전의 번지 없는 주막..과 같은 노래들이 마음에 와 닿고 했는데요. 그런데 요즘은 사실은 텔레비전이나 대중문화를 완전히 10대가 점령, 장악을 해서 30대 이상은 사실 들을 만한 노래가 없는데 어떻게 대책이 없을까요?
이동순 교수 : 결국은 그 문화를 형성하는 계층에 소통의 문제일텐데..이 소통이 굉장히 어려운 여건 속에 있죠. 제가 이번에 지난 학기에 영남대에서 '한국의 대중가요와 생활사'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강조를 하나 개설했는데..엄청난 수강생들이 몰렸습니다. 700명 가까이 몰렸는데 처음에는 조금 거북하게 생각하다가..그 후에는 흥미를 느끼고 참 즐겁게 한 학기를 들었다는 고백을 한 젊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박인규 : 수강생들이 모두 대학생들이죠?
이동순 교수 : 네. 그렇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옛날 전통가요에 관심이 많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동순 교수 : 아주 낯설고 수용하기가 힘겨웠는데 그러나 결국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현재 가요의 뿌리가 되는 옛 가요들의 이해를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라고 생각하는것 같았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그 젊은 친구들이 우리의 옛날 가요들을 부르기도 합니까?
이동순 교수 : 예를 들면, 박향민이 불렀던 '오빠는 풍각쟁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삽입곡으로도 나왔었는데..그런 노래가 나올 때 그 박향민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오빠는 풍각쟁이'라는 자기들이 아는 노래..또 다른 박향림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주 흐뭇했습니다.
박인규 : 교수님은 학부 학생이들이나 대학원 학생들과 송년회에서 술 드시면 우리 가요를 많이 부르시겠네요?
이동순 교수 : 기회가 있다면 지지 않고 노래 시합도 하곤 합니다. 이길 경우가 많습니다.
박인규 : 요즘 대학생들은 송년회에 가면 노래방이라고 하죠? 어떻습니까? 노래방문화 같은 것들이 대중가요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 아닙니까?
이동순 교수 : 부정적으로 많이 미친다고 보는데요. 노래를 많이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노래 그 자체를 즐기고 하는데에는 너무 획일화되어서 저는 노래방 문화에 대한 것은 흔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박인규 : 개성을 오히려 저해 시킬 수 있는..
이동순 교수 : 그렇습니다.
박인규 : 혹시 대중가요 전문가로서 요즘 송년회도 많이 하는데 같이 부르기에 좋은 노래가 있을까요?(웃음)
이동순 교수 : 글쎄요.(웃음) 대중가요 전문가는 아니고요. 그냥 열의로 관심을 가지고 하고 있기 때문에..요즘 고민이 하나 있는데요. 저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지목을 할 때는 제일 불편하고 참 힘듭니다. 왜냐하면 수백곡의 목록이 외부에서 아우성치면서 자기를 선택해 달라고 할 때..
박인규 : 굉장히 노래를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동순 교수 : (웃음)
박인규 : 요즘은 문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교류 하는데는 문화가 가지는 역할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베트남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문화교류들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현재 한류라고 해서 우리가 우리 문화를 많이 전파하지만 한국사람들은 베트남 말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그런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과거사 정리를 위해서 문화교류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그런 측면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는 것인지..말씀해 주시죠?
이동순 교수 : 베트남 노동자들이 우리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한국에 와 있거든요. 엄청난 조직사회를 이루고 있는데..그 분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자세에서 무엇인가 깨우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과 베트남간의 문화교류문제에 있어서도 무언가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먼저 회복시켜주고 인정하는..이런 자세로 접근을 해야죠. 한류문제도 이렇게 풀어가야 우리가 한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늘 우리는 우월자로서 다가가고..
박인규 : 우리가 베트남 문화시장을 정복했다..이런 식의 마음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시죠?
이동순 교수 : 그런 식으로 자꾸 군림하려는 자세가 있기 때문에..베트남 현지에 가서 사업을 할 때도 번번히 실패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대게 그런 인식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문화 교류도 그런 차원에서 무언가 깨우침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잊혀졌던 문화를 찾아서 제자리에 올려 놓는 것을 계속 해 오셨다고 하셨는데..앞으로 또 잊혀졌던 것들을 찾아내야 할 과제 같은 것이 있으십니까?
이동순 교수 : 지금까지 해 오던 작업들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고요. 여전히 창작과 연구쪽에서 우리들 앞에 당연히 나타나야 할 것들, 은패되어 있는 것들, 매몰되어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여력이 닿는 한 하나하나 들춰내서 문학적으로 무언가 또 다른 부분에서 그런 활동을 해 가고 싶은 의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인규 : 대중가요 방송은 계속 하실 거죠?
이동순 교수 :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제가 대구에 내려가면 들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이동순 교수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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