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똑똑한 고양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똑똑한 고양이

[핫피플]영화배우 염정아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염정아를 생각하면 피터 게더스라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겸 랜덤하우스 편집장 생각이 난다. 이 이상한 '연상'의 조합을 설명하자면 좀 길다. 그래서 축약해서 설명하겠다.

피터 게더스는 16년동안 자신과 함께 살아 온 스코티시 폴드 종 고양이에 대해 책 3권을 써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근데 이 고양이는, 저자에 따르면, 침실 문을 열 줄도 알고 사람들로 붐비는 해변에서 (강아지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다닐 줄 알며, 자동차 좌석을 데우는 스위치를 켤 줄도 아는 영특한 존재다. 게더스의 말을 안 믿을 수 없는 것이 1999년 5월 12일자 '뉴욕타임즈'에는 이 고양이 '노튼'의 부고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팜므 파탈을 연기할 줄 아는 그녀**

아무튼 '염정아=피터 게더스'는 '염정아=고양이' 혹은 '염정아=영리한 배우'라는 의식의 연상작용의 역순에 따른 결과다. 쉽게 말해서 '염정아'라고 하면 그것 참 똑똑한 여자같다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그리고나서는 곧바로 (어느 정도는 이미지 때문에) 똑똑한 고양이 '노튼'이 떠오르며 그러자 또다시 피터 게더스라는 작가가 떠오른다는 얘기다.

오동진 당신은 이 난을 통해서 배우 소개를 한답시고 구구절절이 자신의 머릿속 쓸데없는 얘기만을 늘어놓는다고 타박할 분들이 많겠다. 인정! 하지만 이것만은 양보해 주실 수 없으실런지들. 염정아가 비상한 머리와 재주를 지닌 연기자라는 걸 말이다.

국내 영화계에서 아마도 팜므 파탈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여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양이처럼 앙큼한 여자, 자신의 욕망과 이기의 충족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그를 악의 구렁텅이에 스스럼없이 밀어 넣을 수 있는 성격의 여자, 그런 여자의 이미지를 우리 여배우계에서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우리 영화들 중에서 팜므 파탈의 캐릭터가 나올 만한 스릴러나 누아르 계열의 영화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또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팜므 파탈의 적역인 여배우가 없어서 스릴러나 누아르가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말이다.

〈범죄의 재구성〉 때의 서인경 역을 맡았던 염정아를 떠올려 보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거기서 염정아는 야시시한 슬립 차림으로, 담배를 척 하니 꼬나 물고는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등쳐 먹을까 잔꾀를 굴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팜므 파탈에게 걸리면, 결국 이 여자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속임수에 스스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미워할 수가 없게 된다.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지만 끝내 그녀와의 유혹적인 잠자리를 거부할 수 없는 여자, 고양이처럼 암팡진 느낌의 여심을 염정아는 안에 담고 있는 배우다.

***표독스런 발톱과 푼수끼를 동시에 갖고 있는 그녀**

고양이는 때론 매우 표독스러운데, 〈장화, 홍련〉에서 의붓 엄마 역을 맡았던 염정아를 보고 있으면 그 날카로운 발톱이 느껴져서 사뭇 소름이 돋울 정도다. 물론 영화의 결말 부분에 가서 극적인 반전을 보면 오히려 그녀에게 동정이 가지만.

하지만 고양이는 실제로는 매우매우 상냥하고 사랑스럽다. 장난기도 많다. 물론 이건 고양이를 키워 본 사람들만이 아는 얘기일 수 있다. 염정아의 최근 1년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고양이의 그 같은 다른 면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여선생 Vs 여제자〉라든가 최근작인 〈소년, 천국에 가다〉가 그렇다는 얘기다. 두 영화에서 염정아는 전작들에서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듯 푼수기 철철 넘치는 노처녀 혹은 아줌마 고양이처럼 군다.
〈소년, 천국에 가다〉를 만든 윤태용 감독과 자신의 영화 〈쓰리 몬스터〉에 염정아를 우정출연시킨 적이 있는 박찬욱 감독이 하는 얘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박찬욱 : (흐흐) 염정아, 정말 이뻐 죽겠어.
윤태용 : (흐흐) 글쎄말야, 정말 이뻐 죽겠어.

두 감독은 대화 가운데 정말로 똑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흐흐'거렸는데, 이들이 그렇게 '비이성적인' 웃음을 흘렸던 데는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해 내는데 있어서 그녀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설마 염정아의 가냘프고 매력적인 몸매를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감상할 수 있어서였겠는가.)

영화상영 전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염정아는 촬영 때 어려웠던 점으로 감독이 연기 디렉션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을 꼽았었는데, 윤태용의 저런 얘기를 들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장면을 잘 보면 그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염정아가 포장마차에서 소주 몇잔에 흐느적 거리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저건 도저히 감독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해서 나올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것이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밝힐 줄 아는 그녀**

그러니 염정아를 생각하다가 고양이를 생각하고, 고양이를 생각하다 보니 세상에서 제일 똑똑했다는 스코티시 폴드 종 '노튼'과 피터 게더스를 떠올리게 되는 게 그리 엉뚱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기자 십수년동안 사실은 제일 곤혹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여배우를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안된 얘기지만 여배우들과는 별로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똑똑한 여배우들이 너무 많고, 자기 입장이 분명하며,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밝힐 줄 아는 여배우들이 많아졌다. 염정아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배우다.

고양이 '노튼'은 피터 게더스와 16년을 같이 살았다. 염정아는 자신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좀더, 아니 아주 오래 같이 살았으면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