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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소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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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소년의 꿈"

김민웅의 세상읽기 <149>

<"총 들고 그러지 말고 공부나 하는 게 어떻겠소?" 이해룡은 귀여운 아이 보듯 조원제를 쳐다보았다. "날 보고 그런 말 허지 말고 동무나 총 우리헌테 넴기고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으쩌것소? 빨치산 환갑나이 볼쌔 지낸 것 같은디." 조원제가 야무지게 쏘아붙였고, 그들 일행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한 대목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조원제는 소년 빨치산이고, 그의 실제 모델은 훗날 민족경제학의 건설자가 되는 박현채입니다. 11월 3일 오늘은 바로 그 박현채 선생이 세상을 뜬 지 어느새 10년이 흐른 날입니다. <민족경제론>을 통해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경제적 평등과 정의를 이루어내는 이론적, 실천적 작업의 내용과 의미를 일깨웠던 그는, 사실 냉전의 논리가 지속되어 왔던 남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가 조정래는 박현채와의 만남을 통해 태백산맥의 구체적인 내용을 잡아나갔던 일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습니다.

"생존 빨치산들은 대개 나이가 많았고, 물어물어 찾아가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기억 안 난다'며 말문을 닫았다. 그런데 나이도 젊고, 학자고, 논리가 분명한 분이 말씀해주신다는데 얼마나 고맙겠나. 그때부터 박 선생님은 내 취재원이 됐다."

1934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면서기이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던 그는 광주서중 3학년 때 16세의 나이로 입산, 소년 빨치산 문화중대장으로 활동합니다. 하산 이후 이어진 체포와 투옥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던 박현채는 십대 소년시절에 이미 <자본론>의 핵심적 골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다는 이야기이고 그로써 박현채는 사회경제사와 정치경제학의 불모지 같았던 한국 사회과학계에 충격을 가하는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게 됩니다. 1978년 출간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민족적 생존권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던 산물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본도 모두 지배계급의 이해만 추구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되며, 민족경제 내부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민족자본과 그렇지 못한 외국자본 및 매판자본으로 구분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일반 대중들의 생활을 발전시키면서 민족경제 전체의 진정한 동력이 되는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의 경계를 넘는 지구경제의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현채류의 민족경제론이 얼마나 실제적인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기적 외국자본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한국 금융시장의 현실과 남과 북의 균형 있는 민족경제의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원대한 숙제가 있는 현실에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과연 과거의 이론적 유물로 간단히 폐기처분되어도 좋은 것인지 묻게 됩니다.

아무리 세계화된 경제라고 해도 외국 자본 J. P.모건이나 론 스타가 한국경제의 장래를 위해 고민하는 자본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우리 민족은 다만 언제나 영원한 타자일 뿐일 겁니다. 박현채 선생이 새삼 그리운 늦가을의 한반도 남쪽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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