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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밥그릇과 자존심 때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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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린 밥그릇과 자존심 때문에 산다"

[현장]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농성을 계속하는 이유

"경찰 아저씨! 아저씨! 가지 마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렇게 막지 말고 대표이사 만날 수 있게 해줘요. 경찰 아저씨가 빽 좀 써달라구요. 가지 말아요. 제발! 가지마!"

***"경찰 아저씨! 나 회사로 들여보내주기 전까진 가지 말아요!"**

<사진 1>

18일 오후 6시 10분. 오성숙(45) 씨는 곧 혼절할 것만 같았다. 이곳은 지난 8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노조원들에 대해 계약해지에 나선 서울 구로공단의 기륭전자 정문 앞. 조합원들이 계약해지 철회,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생산라인 일부를 점거한 채 철야농성을 벌인 지 55일째인 17일 새벽에 농성자 전원이 경찰에 연행된 탓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격앙돼 있었다.

연행된 16명 중 분회장 및 간부 4명이 결국 구속되자 조합원들이 농성을 계속 이어가겠다며 회사 정문 앞에 천막농성장을 세웠지만 사측 경비용역의 완력 앞에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회사의 '시설경비' 요청에 정문을 막고 서 있던 경찰은 무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오성숙 씨는 그런 경찰의 지휘자에게 "가지 말고 내 얘기를 들어달라"며 애원했다. 방금 전 집회에서는 단상에 올라 "이 회사가 우리에게 정규직이 뭔지, 비정규직이 뭔지를 알려주었다"고 외치며 "열심히 투쟁해서 내 밥그릇 내가 찾자"고 팔뚝을 흔들던 그였다.

***"주5일제 적용되는 300인 사업장 될까봐 계약직 못 해준다 했다"**

<사진 2>

"노동부? 안 믿어요. 불법파견 판정해놓고 두 달 가까이 조치도 안 취하면서 사측에 시간만 줬지 한 게 뭐 있나요?"

기륭전자 앞 집회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애심(48) 씨는 "이 싸움 하다 보니 정부도, 경찰도 다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며 공권력에 대한 불신감을 표했다.

"2003년 입사했는데, 그동안 회사 참 많이 컸어요. 지난해는 최고 호황으로 돈도 많이 벌었는데도 회사는 불법파견 사업장은 다른 데도 많은데 왜 우리가 십자가 져야 하느냐면서, 노조도 인정 안 하고 계약해지로 나옵니다. 이젠 악밖에 남은 게 없어요."

'1년2개월 파견직 하면 계약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사측의 약속에 묵묵히 참아 온 이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난 7월 5일 노조를 결성한 것은 사측의 '계약직 전환 불가' 통보가 계기였다.

"어이가 없었죠. 너희들을 계약직으로 바꿔주면 회사가 300인 이상 사업장이 되고, 그러면 주5일제 해야 되니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기계처럼 말 듣지 않으면 모두 해고였다. 그것도 문자 한 통으로"**

<사진 3>

황옥녀(46) 씨의 분노 또한 김씨에 못지 않았다. 황씨는 엄마가 회사 구사대에 다칠까봐 걱정하는 두 아들로부터 잔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황씨는 "노조 왜 하냐고요? 부당한 거 부당하다고 말하고 정당한 요구 하려구요"라고 잘라말했다.

이 회사의 파견직 기본급은 63만3000원이다. 여기에 수당을 더하고 보험료를 빼면 손에 남는 건 65만 원. 80만 원 가져가려면 토요일과 일요일 잔업특근을 50시간이나 해야 하고, 90만 원을 가져가려면 90시간은 더 일해야 한다. 같은 생산라인에서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은 성과급 700%, 계약직은 400%지만 파견직은 그런 게 없다. 이들이 '계약직 전환'에 목을 매는 이유도 조금이나마 안정된 지위를 얻기도 해야겠지만 이러한 차등조건을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지적해 조금이라도 관리자의 눈밖에 나면 해고, 몸 아파 휴가 내면 해고, 잡담했다고 해고, 집 경조사 챙겼다고 해고, 한 마디로 기계같이 일만 하지 않으면 모두 해고였다. 그것도 문자 하나 보내서."

***출산휴가 한번 썼다고 회사의 '역적'된 정규직 여성**

금속연맹 금속노조 산하 기륭전자 분회는 특이하게 정규직, 파견직, 계약직이 다 함께 있다. 1996년에 입사해 정규직 9년차로 생산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덕순(32)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고용이 안정된 그가 왜 노조활동을 하게 됐을까. 계기는 '출산휴가'였다.

<사진 4>

김씨는 지난해 출산휴가 의사를 밝히는 순간 회사로부터 '그만두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회사 사정에 맞춰 휴가도 반납하며 충성을 바쳐 온 직장이었건만…" 김씨는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제발 2개월 만이라도 출산휴가를 달라는 김씨의 애걸에도 고개를 흔드는 회사에 대해 김씨는 오기가 생겼고, 주의의 조언과 격려에 따라 법적 권리를 주장하며 출산휴가 3개월을 다 썼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회사로 복귀했는데 모두들 아는 척하기는커녕 김씨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출산휴가 한번 제대로 썼다고 해서 회사의 '역적'이 돼 있었다. 결혼퇴직 혹은 출산퇴직의 관례를 깬 그에 대한 회사의 따가운 눈길에 좌절하고 있을 때 옆에서 챙겨주며 어깨 토닥거려준 이들이 바로 파견직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서러움이 북받치는지 금세 코가 빨개지며 간신히 말을 잇던 김씨에게 현재 심정을 묻자 의외로 "담담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구속된 분회장이 돌아올 때까지 남은 사람들이 여기서 버텨줘야 한다"는 생각이란다.

<사진 5>

집회에서 단상에 올라 투쟁결의문을 또박또박 읽어나간 안윤미(25) 씨에게 기륭전자는 세 번째 일터였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노조에 가입했다가 중간에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냥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안씨는 굳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라고 덧붙였다.

안씨는 농성 시작 후 40일이 되도록 집에 '철야한다'며 비밀로 부쳐 왔지만, 회사가 보낸 업무방해 고소장이 집으로 날라와 부모님이 알게 됐다. "처음엔 많이 놀라셨지만, 그래도 지금은 저를 지지해준다"고 말하는 안씨는 정문 앞 천막농성을 계속할 거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답했다. "현장이 아니면 정문이라도 지켜야죠."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되는구나"하고 깨달았다는 오성숙 씨, "이거 하다보니 나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비정규직이 다 없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황옥녀씨, "내가 정규직이라지만 출산 때문에 좌절하고 있을 때 용기준 파견직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는 김덕순씨, 젊은 나이로 얼마든지 이직이 가능함에도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안윤미씨… 이들이 원하는 것은 '밥그릇'과 '자존심'이었다.

월급차별 당하지 않고 존중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기본적 욕구에 모든 걸 걸고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에 기자는 문득 '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과 같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이때 체제위협이니, 구국운동이니, 국가정체성이니 하고 말뿐인 논란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을 바라보면서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저러는가?"

<사진 6>
<사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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