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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심장, 절규하는 사랑의 노래, 그리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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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심장, 절규하는 사랑의 노래, 그리고, 그러나...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제2부 <9> 가수 전인권

전인권이 참으로 오랜 세월 공들여 쓴 책 <걱정 말아요 그대>(청년사, 2005) 표4에 나는 이렇게 썼다. 제 목숨을 깎아 여럿의 목숨, 공동의 목숨, 미래의 목숨을 만들어내는 공연 예술의 정점을 `전인권 노래`는 보여준다. 그는 폭발적으로 절규하지만, 동시에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모두 하나씩의 생애다…요즘 그가 너무 아프다. 전에는 약속장소로 오던 도중 갑자기 통증이 도져 서울대병원에 들렀고, 그는 두 시간을 늦었다. 그는 제 할 일로도, 돈이 시간인 면에서도 바쁘고 나는 정말 가진 게 시간 밖에 없는 처지라서 그가 나를 기다리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 응급처치 이후로는, 연락 없는 그를 기다리는 게 또한 하나의 생애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미리 연락이 왔다. 비행기를 놓쳐서….한 40분쯤 늦을 것….무대 위에서 그는 사랑조차 심장이 폭발하는 절규로 호소하지만, 미안해 할 때 그의 표정은, 목소리만 들어도, 수줍음과 미안함이 서로를 심화하는 `어불성설`의 경지다. 하여, 여자에 대한 그의 사랑고백은, 이러할 것 같으다. (`예쁘장이` 시인 채향옥이 읽으니 더욱 그렇다.).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 하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밖에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 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밝은 밥상 위에 놓여진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황어는 겨울 밤 남대천 상류의 얼음 위에 앉아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나희덕, <마른 물고기처럼> 전문

어쨌거나, 공중전으로 40분 늦는다는데, 그 40분이 지상전 40분으로 바뀌리란 보장이 없다. 공중 교통에, 천재지변이라면 모를까, 러시아워가 좀체 있을 리 없지만, 지상전은 40분 늦게 출발하면 2시간 늦게 도착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아예 더 늦게 출발해야 뚫린 길로 더 일찍 도착한다는, `제논의 수수께끼`를 능가하는 가상현실을 닮지 않던가. 어쨌거나, 전인권하고 맨정신(을 그나 나나 아주 싫어한다. 아니 맨정신을 싫어하는게 제정신이라고 그나 나나 생각한다. 그가 악기 중에도 일렉트릭기타를 제일 좋아하는 것은 미치기 일보 직전, 즉 싸이키델릭 때문이고, 그가, 혹시 나를 좋아한다면 그것 또한, 그의 표현대로, 내가 `술을 마시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을 항상 즐기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으로 얘기한 적 없고, 아리까리할수록 더 많은 얘기를 하고 더 죽이 맞았던 것 같으므로 이번 공개 대담 기회는 아예 36시간 안 자고, 담배와 커피만 입에 대고, 완전히 풀리는 정신을 궂이 붙잡지 않고 거의 횡설수설을 즐기는 식으로 풀어보려 했는데, 정신이 맞춤하게 비몽과 사몽 사이 혼미 상탠데, 그가 오지 않는 40분이 갑자기 내게 없었던, 그러나 뒤늦게 가끔씩 발동하는 `문청의 밤`처럼 생소하고 어설프다. 밤을 새워, 정말 몽롱한 정신으로 쓸 때는 마치 `내가 천재 아닐까?`, 걸작을 쓰는 듯 스스로 착각하고, `이거 나오면 니들 다 죽었다` 뭐 그렇게 의기양양하고, 정말 `죽인다.`라는 단어가 자아도취와 공격의지를 동시에, 동전 양면을 넘어 자연스러운 한 몸으로 품으며 마구 입에 거품 튀듯 튀지만, 맨정신은커녕 제정신만 돌아와도 그 글의 꼴이 너무도 누추하여 다시 거대한 절망의 동작을 취해버리는, 진짜 문청 시절 이호철(소설가)이 보냈다는 그런 밤. 아무리 위대한 문학도 결국은 `세속성으로써` 위대하다는 것을 지쳐 체념하듯 받아들일 때까지는 도무지 그치지 않는, 그칠 수 없는 그런 밤. <선데이서울> `오빠와의 그날 밤` 류 기사, 심지어 구인 광고까지, 눈에 보이는 `글`은 모조리 잡식한 후에야 황석영(소설가)이 벗어날 수 있었던. 근데,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는 왜 그 흔한 신문 신간 안내란에서도 시큰둥한 거지? 이 책은 전인권 특유의 `육성`이 전인권 특유의 `문체`를 입은, 한마디로 대중예술가가 쓴, 우리나라 최초로 진정한 `예술의 자서전` 제1부인데? 그리고 비록 제1부지만(그것은 그가 만 51세 나이보다 훨씬 더 젊은 현역가수기 때문에 그렇다), 전설의 록그룹 `들국화` 탄생 및 활동과 연관한 그의 음악 `행각` 기록은 다른 글로는 도저히 대치할 수 없을 어떤 `경험의 숨결`을 뿜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 군데군데 쉴 새 없이, 거의 바퀴벌레처럼 끼어드는 그의 예술관, 그리고 `대마초 생각`, 그리고 대중예술계의 허위에 대한 진정하고, 날카롭고, 적절하고, 적라라하고, 기발한 `멘트들`이다. `맨트`는 종종, 예술적 잠언과 사회 비판이 절묘하게 섞인 상태로 비상하거나 비루하고 아픈 세상 속으로 깊이깊이 스며든다. 하여, 전인권 노래가 한 편 한 편 `생애`를 끌어간다면, 이 책은 그 숱한 `전인권 콘서트`를 보다 깊은 `과거와 현재의 모자이크 공간`으로 응축한다. (하긴 그의 그림 솜씨는 화가 수준이고, 2분 내로 그려낼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와는 금새 친숙해질 수 있다는 `믿음`의 소유자다. 15년 전 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결코 잘 생긴 건 아니고, 팔이 길어 어딘가 `고릴라`같은 나의 외모를 1분만에 그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친해졌다고 한다.) 그가 아직 도착 전이므로, 그런 생각을 깔고, 그의 책 <머리말>에서 순서대로 몇 구절 뽑아보자. 말 그대로 사상 초유의 `전인권 화법`이 우리 폐부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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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책방에 그 서적들 사이에 있게 된단 말이지. "형님은 부가가치가 좋은가수"…그렇다면 쓸 만한 거네. 어느 땐 `안 돼! 아냐, 이건 아냐,` 그리고 노래만 들으며 잊으려고 애쓰다 다시 써야 할 것 같은…내가 기타로 도레미를 들려줄 때 이놈(아들 진환-필자) 얼굴 눈 표정이 너무 이쁘다. 학원을 못 믿는게 아니고 새로운 것만 봤다 하면 지남철처럼 달라붙는 이 놈을 못 믿겠다. 또 하나 끝냈다. 고맙다 들팬 친구들(A양, B양, C양, DEFG양. ^^ 그리고 놈.) 책은 복사가 안 된다. 하긴 그 책 베낄 거면 사고 말지…지금 잠시 고통스러운 불황의 세계. 택시 기사는 마치 사차원세계에 온 것 같은 무표정. 그래서 더 열심히 썼다. 이 책으로 우리 장훈이 앨범 좀 더 나가준다면 죽이능 건데…"아닙니다. 제 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 얼굴 창백했던 그때 그 기사님. 하루에 6만원 벌면 감사한다던…딸 셋이 대학생이었죠.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게 맞는 겁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대마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받는` 사람이 있고 `안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독성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공평하게 장단점이 있듯이 대마초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다는 건 내가 살아가는 큰 힘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허용하는 나라는 미쳤습니까. 민기 형님. 형님, 제가 노래에 미치길 바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죄송한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과감하게 두려움, 두려움 없이…나를 만들어 준 저 산과 바다. 왠지 유성이 형님 것 같은 우리 자연들, 산과 바다 모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은주가 있다면 `애쓰셨어요, 전인권 만세!` 문자 하나 왔을 텐데…

<영혼의 절규>(이덕희 옮김. 푸른숲, 2002년)는 20세기 초 위대한 무용가 니진스키가 심각한 정신 질환에 빠져들 무렵 6주 동안(1919. 1.19.-3. 4) 적은 일기로, 다소 난해하지만, 예술혼을 지닌 자의, 고통의 빛이 발하는 빛으로 눈부시다. 전인권 <걱정말아요 그대>는 `천박해서 더욱 화려한` 대중문화예술계에서 자신의 자존을 지켜내기 위한 얼핏 `좌충우돌`이, 맨정신보다 더 우월한 `제정신의 지도`를 그려내고, 아름다움의 모뉴멘탈리를 이뤄내는 과정을 한편으로는 지난하게, 종종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보여준다. 근데 왜, 시큰둥? 영화배우 이은주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과도한 논쟁 이후 역시 과도한, 잡단적이고 의도적인 무관심 `운동`? 이은주라…위 머리말의 맨 마지막 `문자 하나 왔을 텐데`는, 단언컨데 맞다. 이은주 묘비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은주 빈소를 찾았을 때도 이은주의 살아 직전 `문자`가 와있었으니까. 그날 내가 그에게 내밀은 묘비명 전문은 이렇다. (행을 갈라 추도시로 읽고 , 그런 행 배열로 신문 연예면에 실린 것은, 뭐 상관없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다.)

빛이 나뉘는 총천연색은 신비롭지만, 죽음이 없으므로 영화는 화려할수록 가벼우니 대낮의 밝은 무게에 가닿지 못하고 청순이 그늘을, 연기가 의미를 머금지 못하므로 마침내 네가 와서 사랑에 열린 대낮 글썽한 눈웃음으로 영화를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오래 머물지 않고, 스물 다섯 예술 인생의 절정을 응집, 흰 빛 검은 빛 나비로 죽음과 어우러지다. 2005년 2월 22일. 영화배우 이은주 영면.

슬픔과 술에 지친 채 그 글을 읽던 전인권이 내게 말했다.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은주만큼 흑백 옷이 어울리는 사람은 없는데…인위적이라 천박한 총천연색을 `의미심장`케 하는 것은 흑과 백이다. 전인권이 한국대중가요계의 `흑과 백`이었다면, 이은주는 분명 한국영화계의 `흑과 백`이었고, 그런 점에서 둘은, 단언컨데, 예술적으로, 정신적으로 `통`했다. 전인권과 이은주가 정말 사랑을 했느냐를 내가 딱뿌러지게 증언할 수는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증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둘은 `사랑 너머`에서도, `육체 너머`에서도 `통`했을 거라는 것이고, `스토커 행각`은 , 전인권의 자존심이 거의 예술에 가깝다는 것을 감안하면 또한 어불성설이지만, 그 전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전인권이 등장한다. 정확히 40분 늦게. 너무 떨려 진짜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아마 그럴 것이다. 술과 무관한 취기가 늘 있단들, 오늘은 미안함 때문에 싹 가셨을 것이고, 그런 채로, 공연도 아니고, 팬과의 대화도 아니고, 너무 말짱한 청중 수 십 명과 아주 가깝게 대면해야 하므로. 청중 한 분이 `대마초 지금 안 하시죠?`라고 묻자 그는 `안한다` 했다. 참으로 생뚱맞은, 형사상 질문 아닌가. 당연하지. 전인권의 공식 입장은 `대마초는 좋은 거다. 그러나 나는 안 핀다. 피면 잡혀가니까.`다…그렇게 내가 질문을 교정하자, 전인권이 더 수정한다. 필요할 거라고 했지, 좋은 거라고는 안 했고, 필요한 것을 좋은 걸로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이미 빚을 갚은(징역을 치른) 대마초 경력에 대해 그는 그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주장이 뚜렷하다. 악보 보는 법을 공부하지 못해 노래 만들 때 애를 먹다가 어느 날 약물을 사용, 한 달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루 만에 끝냈고, 그 후 약물을 많이 사용했다. <돌고 돌고> 같은 노래가 그렇고, 아니 요번에 만든 <걱정 말아요 그대> 말고는 약물 사용 없이 만들 노래가 거의 없다. 약물이 나를 집중케 했고,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가 그렇게 나왔다. …그랬구나. 물론 세계관이 `약물`을 통해 나오고 집중된 것이겠지만, 튀든, 반항적이든, 다이나믹하든, 비극적 낙관을 담든, 가락도 놀랍고 가사도 놀랍지만, 저 길길이 뛰는 것들이 이루는 절묘한 조화는 바로 `약물의 집중성`에서 나왔겠구나…하지만,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중학교 때 케네디가 전세계의 희망이란 걸 확실하게 느끼고, 케네디 사망 후 비틀즈가 다시 세계의 희망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던` 그의 음악 출발은, 매우 `음악적으로 멀쩡`하면서, 운이 좋고, 운에 대해 자신만만했다.

열 아홉의 나는 `모범적`이고 `공부에 대한 양심`이 있었다. 연습을 많이 했고, 연습이 다 된 곡만 공원에서 불렀다. 통기타시대라 공원에서 노래를 잘 부르면 여자 꼬시기가 좋은 점도 있었지만, 하여간, 여자와 내 자랑과 노래에 충실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결론은 `지금 열심히 하자`였고, 대마초를 피다 거울을 보면 내 모습에 허깨비들이 무지 많이 살고 있는 거라, 무지 못 생겨 보였고, 그럴 때마다 가차 없이 연습을 했다. 그리고 들국화. 당시 우리는 아주 소수고 거의 신촌에 몰려 있었는데, 책에도 썼지만, `또 다른 균형`을 갖고 있었다. (너무 떨리네…이해해주시고) 왜 팝송인지, 어떤 것이 좋은 음악인지를 아주 잘 판단하는 영리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엄인호는 내가 보기에 리듬기타 하나는 정말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해 못하는 코드가 없었다. 김현식은, 이를테면 그 이전 세대 최헌이나 이용보다 목소리의 표현력이 강하고 비트가 있었다. 조덕한이 작곡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최성원이 작곡한 <매일 그대와> 등은 듣자 마자 대단하고 참 잘 만든 노래라고, 감이 왔다. 우리들은 그런 것을 확실하게 판단하고 확실하게, 피해의식과 술 힘도 빌어, 밀고 나갔다. 그러다 폭발한 것이 바로 들국화다.

요즘 `예술적으로 뜨`고 있는 소설가 박민규는 등단 소감에 `세계관을 알게 해준 전인권 형님께 감사한다`고 했지만, 그럴 사람이 앞으로도 많겠지만, 전인권의 세계관에 영향을 준 것은 본인 표현에 의하면, 고속도로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 마주친 명언 `인간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삶은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다`지만, 그리고 스스로 `헤밍웨이를 읽으며 진짜 푸른 바다`를 봤다지만, 아무래도, 존 레논인 듯 하다. 비틀즈를 믿지 말고, 히틀러를 믿지 말고, 케네디를 믿지마, 난 예수를 안 믿어, 내가 예수다, 나는 나를 믿는다, 라고 노래한 레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CCR의 흥겨움에 좀더 빠지고 싶지만, 여긴 외국이 아닌 한국이라 사회적 추방을 견디기는 어렵지만, 정말 진리를 위해 한번 끝까지…옛날 성당에 다니며 금요일 철야기도를 한 3개월 하는 동안 그의 기도 내용은 `하느님 정말 계십니까? 제게 약간 힌트만 주시면 그리로 가겠습니다.`였다. 그리고 오늘, 그가 권하는 노래는, 신과 국가와 재산 일체를 부정하는 레논의 아나키스트 찬가 <이매진>이다.. 특히 아침에 들으면 하루가 정말 즐겁고, 현대자동차 전혀 안 부럽고, 삼성냉장고 전혀 신경 안 쓰게 되고, 세계가 확 열린다…그는 `50대가 되니 정말 나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50대 전까지는 `아주 자신 있는 나`와 `전혀 자신 없는 나`가 정말 계속 같이 갔고, 반성도 많이 했다. 정말 내가 음악을 해도 되는 사람인지…<희망가> 같은 노래를 부를 때 공부와는 상관없이 그냥 기분으로 불렀다(잘 부른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사명감과 기질과 내용과 욕구를 요만큼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하지만 50대가 되면서, 반성과 공부를 많이 했지만 그것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은 채로,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어떤 천부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혹은 발견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나를 표현할 어떤 자격이 있다, 라는 확신. 창에서 많이 배웠다. 창을 공부하는 자격은 첫째가 사람의 생김생김, 둘째가 그 사람의 품성, 그리고 셋째가 비로소 노래 실력인데, 나는 그게 반가웠다. 창을 배운 덕에 내 노래에는, 아무리 소리를 지를 때도, 조심은 있을 망정 오버는 없다. 뱃심이 있어야 성격도 만들어진다. .

2004년 `전인권 4집`으로 펴낸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을,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매우 흡족해했고, 내가 보기에, 흡족해할 만하다. 그런데, 음반명은, `전인권에 맞서 싸우지 않는 사람들`인가 `전인권과 함께 평화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인가? 물론 후자지만, 설명이, 놀랍다. 정치하는 사람들 우리가 좀 칭찬도 해주고 그래야지. 어릴 때처럼 칭찬 많이 해주면 더 잘하고 싶고 그런 법인데, 한 10년 동안 너무 야단만 치고 그러니까, 더 후지게 보이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이 음반에서 전인권표 고성은 `내가 발견한 나의 세계`로, 남들의 옛 히트곡까지 감싸 안으며, 한껏 여유롭고 깊어졌다. 그리고, 모처럼 `우리`로 밝아졌다. 그러나, 전인권. 그가 요즘 너무 아프다. 이따금씩 그의 공연을 보러 가면, 너무 아픈 그의 노래가, 거의 목숨을 담보로 불리는 듯하여, 나는 그만 눈물이 핑돌 정도다.

Ps. 너무 피곤해 보였지만, 그보다 더 너무 오랜만이라 뒷풀이로 끌었는데, 이런저런 왁자지껄을 술 몇 잔으로 견디는게 안쓰러워 `민기형`을 부를까 했더니, 직접 통화를 하고, 직접 가서 모셔 오는 게 예의같다며 나간 그가 돌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김민기와 만났다면,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민기형이 열 여덦, 열 아홉 살 때 만든 노래, 특히 <친구>의 저음으로 다스려진 분노 후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까지 이어지는 `저음=눈물=아름다움` 대목에, `19세 모범생`으로 감동한 이래 평생 `민기형`을 존경해온 전인권이며, `가수 전인권`을 꽤나 아끼고 걱정하는 김민기다. 그가 김민기를 안 만났더라도, 편안했을 것이다. 너무 피곤했으니까. 어느 쪽이든, 정말 그가 돌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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