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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식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줬나"

[해외 시각] 경제위기, 정치를 흔들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 경제위기는 한 편으로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다. 유럽의 정상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등을 덮친 재정위기가 다른 국가로 전염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도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각국 국민들에게 긴축정책만을 강요함으로써 취약한 리더십 부재 현상을 노출했다.

반면에 경제위기 속에서 떠오른 중국 등의 신흥국들은 미국과 유럽이 감당하지 못하는 세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유럽발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유로존조차 중국이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중국과 브라질 그리고 인도 등의 신흥국들은 과거 서방 국가로부터 취약한 정치체제를 지적받아왔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선진국들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정치체제 중 가장 좋은 형태가 민주주의라는, 어찌 보면 확실한 근거가 없었던 서방의 확신이 경제위기를 계기로 흔들리고 있다.

<슈피겔>이 새로운 기획연재의 주제로 '훌륭한 정부'를 꼽은 것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 주간지는 본편 연재에 앞서 '훌륭한 정부'가 '민주주의 정부'와 동의어로 통하지 않게 된 현재 상황을 조망하는 글을 올렸다. 주간지는 서문에서 서방의 정부 체제가 가장 좋은 체제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텔스만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서방의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서방 세계에서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 같은 권위국가 체제가 해답이 되기도 어렵다는 것이 기사가 분석한 현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각국의 지도자들은 각자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은 <슈피겔>이 '좋은 정부'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분석한 브라질, 중국, 덴마크, 미국의 사례를 차후 간추려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좋은 통치제도'가 민주주의란 것도 옛말

만약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수백만 난민, 이민자들만 놓고 본다면, 정치 시스템 사이의 전쟁에서 서방이 승리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민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10개의 나라 중 6개가 북미나 유럽에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장 많이 가는 네 국가인 멕시코, 중국, 필리핀, 인도는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많은 이민자들이 목적했던 곳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종종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함에도 유럽과 북미의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에 가고 싶어 한다.

20년 전인 1992년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우리가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역사의 종언"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서방식 자유민주주의가 "정부의 마지막 형태"를 수립했다고 했다. 많은 수의 이민자들과 독재자들을 실각시키기 위한 중동의 민중 봉기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현재도 유효한가? 냉전이 끝난 후 20년이 흘렀고, 서방 엘리트들은 후쿠야마의 결론이 성급했음을 보여주는 (자신들의) 실수를 볼 수 있다. 9.11 테러로 인한 법규범의 손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는 서방식 통치방식에 대한 심각한 의심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경제 성장을 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영향력도 확대됨에 따라 현존하는 모든 불완전한 정치 체제 중 민주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다.

2008년 봄 <슈피겔>은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연재 기사를 실었다. 그때 당시, 기사의 중심은 철학적이고, 심지어 도덕적인 논쟁에 휩싸였었다. 미국 대통령인 조지 부시는 세계의 민주화를 정치적 목표로 삼아, 만약 필요하다면 이라크에서처럼 군사력을 동원해 이를 관철할 준비가 됐다고 선언했다. 독일을 포함한 4개 국가만이 그와 함께하길 거절했다.

소위 "훌륭한 정부"를 놓고 정치인과 정치학자들은 맹렬한 토론을 벌였다. 경제·부채 위기 발발 5년 후, <슈피겔>은 연재 기사에서 4개 국가를 선정해 각국 지도자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내는 데 얼마나 능숙한지 살펴봤다.

첫 시리즈는 브라질로 겉으로 볼 땐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세계화가 틀렸음을 브라질 정부가 어떻게 보여주려 했는지 리우데자네이루를 예로 들어 살펴봤다. 이어 두 번째 기사에서는 중국의 도시 란주(蘭州)를 예로 들어 중국이 강대국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세 번째 기사에서는, 미국에서 200년이 넘게 자리 잡아온 견제와 균형 시스템의 약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시민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덴마크를 사례로 들 것이다.

미국의 정치 과학자인 찰스 쿱찬은 "훌륭한 정부를 바라는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에 공급은 감소하는 불일치 현상이 서방의 권력층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이 그들의 한계를 거의 동시에 발견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세력의 강력한 힘에 직면하면서 통화 조절과 같은 전통적인 정책수단들이 무력해졌다는 사실이 거듭 드러났다.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과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회담에선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은행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로이터=뉴시스
또한 유권자들의 동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정부는 "고통 분담보다 이익 배분에 치중한다"는 현실도 증명됐다.

더 나쁜 것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많은 서구 민주주의 정부들이 기후 변화에서부터 이란 문제 같은 지구촌의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지 더 이상 합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서방의 시민은 그들 정부의 약점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들은 왜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기는 스페인 같은 국가들에 투기꾼들이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왜 현재 산업화 사회의 빈부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가? 왜 피츠버그의 낡은 철도를 교체하는 것이 두바이에서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는 일보다 오래 걸리는가? 쿱찬은 "정부 통제능력의 위기가 서방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시스템은 더 나은가?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를 필요가 없는 나라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늘어나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인정했듯이 중국의 성장은 "불안정하고, 불균형하며 조화롭지 못하고 지속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서방은 비교적 최근까지 페르시아만 인근의 군주제 국가들의 돈을 여전히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중동 국가들도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랍의 봄은 그들 정권의 정당성에 도전했다. 그리고 다른 독재 정부처럼, 그들도 세계 금융 시스템을 구하기보다는 현재의 권력을 잡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가장 좋은 형태의 정부에 대한 논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역사는 수십 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은 각국 정부를 포괄적으로 평가하려는 가장 야심 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베텔스만은 지난 2007부터 "지속 가능한 경제 지표"를 사용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의 정부 경쟁력의 등급을 매겼으며, 지난 2004년부터 2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있는 그 외의 모든 국가들에 대해서는 '변동 지수'를 적용해 평가했다.

하지만 이처럼 모든 국가를 단지 두 개의 잣대로 평가한 연구는 경제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조차 얼마나 통념에 머문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보여준다. 게다가 단지 몇 년 전만 해도 "훌륭한 정부" 논쟁은 오직 개도국과 신흥 산업국을 대상으로만 거론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그리고 선진국의 개발구호 기관들이 개도국에 얼마나 많은 돈을 원조할지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됐다.

이런 것도 옛날이야기다. 이제 서양의 고도로 발전한 산업국가들조차도 훌륭한 정부가 있는지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그들 사이의 경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산업 및 생산 부문이 과거 동구권 혹은 중국과 인도로 옮겨 간 것처럼 OECD 회원국이 아닌 국가들과의 경쟁도 심해졌다.

베텔스만 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정부를 가진 국가다. 반면에 북한은 최악이다. 덴마크는 전체 3위고 독일은 11위다. 연구결과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와 하위를 차지하는 나라는 거의 예측되었지만 그 사이에 위치한 국가의 순위는 놀라웠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칠레, 터키, 멕시코보다 순위가 낮았다. 이는 의회 제도나 시민 그리고 언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작았기 때문이다.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헝가리와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몇 개 국가에서 민주 정부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국가들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데 수년 동안 어려움을 많이 겪은 국가들이다.

베텔스만의 연구자들도 <슈피겔>이 4개의 국가 사례로 다루려는 주제의 핵심, 즉 각국 정부가 직면한 과제들 사이에 그 어려움 차이는 얼마나 되느냐는 문제를 다루었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당신은 어떻게 246개의 다양한 치즈를 가진 국가를 운영하겠는가'라고 불만을 쏟아낸 바 있다. 미국에서 감자 재배업자의 로비를 극복한 법안이 통과되기는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2000만 명이 넘는 브라질인과 3억 명이 넘는 중국인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서 중산층으로 편입시키는 과업에 대해 드골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훌륭한 정부의 기준은 피통치자들의 요구와 기대에 따라 세워진다. 개도국이나 신흥 산업국에서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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