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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골>, 그 새로 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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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골>, 그 새로 난 길"

김민웅의 세상읽기 <101>

온 세상이 비명과 유혈(流血)의 전란(戰亂)에 휩싸이고 있어도, 벌통의 꿀을 지키고 밭의 감자를 캐는 일이 일상의 가장 중요한 소임이자 전부인 마을이 있었습니다. 전쟁의 소문조차 채 발길이 닿지 않은 강원도 두메산골, 이름 하여 <동막골>이었습니다. '동막골'이라면 짐작키로는 '동쪽에 있는 막다른 고을'이라는 뜻 정도가 아닌가 싶은데, 그러나 그곳은 더 이상 나갈 길이 없는 막힌 끝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결국 새로운 길이 나는 시작의 현장이 됩니다.

장진 감독의 극본에 박광현 감독의 영화 <웰컴투 동막골>은 이미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진 터라 그 이야기의 흐름이 대강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지난 반세기 이상의 냉전사를 뒤집어 새로운 희망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에 가장 의미 있게 성공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따뜻함이 곧 진실이며, 아름다운 것이 정작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폭력의 문명을 이기는 것은 인간에 대한 물러설 수 없는 사랑임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치 않은 학살과 죽임을 겪고 난 남과 북의 군인들이 우연히 들어선 마을, 그런데 이미 그 마을에는 추락한 미 공군기의 부상당한 조종사가 있고, 연합군은 그 미군을 찾는 동시에, "동막골"을 적의 진지로 오인하고 표적 삼아 폭격작전을 짜나가고 있는 상황. 마을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고, 이 모든 전쟁의 현실은 동막골의 온기에 녹아들어갑니다. 그리고 잠시 적이었던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연합군의 폭격작전으로부터 동막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자신들만의 비장한 연합작전을 실천에 옮깁니다.

그건 과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꿈꾸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을을 구했다는 기쁨으로 웃으며 죽어간 청춘의 희생을 대가로 얻어진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더 이상은 그런 희생의 반복만큼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함께 나누게 하고 있습니다. 분단의 시대를 이겨내려는 이 시점에서, 세대를 이어 하나가 되게 할 소중한 자산이 한가지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쉬리>가 냉전의 대치를 극화시켰다면,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 대치의 선을 넘어 화해로 가려 했던 의지의 비극적 좌절을 그립니다. 세월을 훌쩍 지나 <간 큰 가족>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통일의 가상현실을 연출하고, 이제 바야흐로 <웰컴투 동막골>에 이르면 우리는 이 모든 경계선을 넘어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내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배우 정재영의 깊숙한 표정과 배우 신하균의 슬픈 눈망울은 두 사람이 결국에는 하나가 될 것임을 선뜻 알아차리게 합니다.

영화 전반부에서의 긴장은 중반에 이르면 웃음과 정겨움에 흠뻑 젖어드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뀝니다. 전쟁의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이 엉뚱하게 비치나, 그로써 전쟁의 현실이 사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거꾸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면 결말을 뻔히 상상하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더더욱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지점에까지 우리는 마침내 도달하게 됩니다.

그건, 우리가 어떻게든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의 실체이자 우리네가 살아나가야 하는 가장 정직한 진실을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손을 댈 수 없는 삶, 아니 결코 침범하게 내버려둘 수 없는 평화의 존귀함, 그리고 그로써 이어져나갈 기쁨이 <동막골>에는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누구에게나 웃으며 "웰 컴"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충만합니다. 적이 사라진 곳에서는 낯선 자일지라도 환대를 받는 감격이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현실에서 서로 적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던 남과 북의 젊은이들, 그래서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곳은 거의 언제나 총성이 울리고 상대의 죽음으로 승리를 확인하는 잔혹한 비극이 되풀이되었지만 <동막골>은 이러한 현실을 찬란하게 격파해나갑니다.

그 격파의 힘은 다름 아닌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인정(人情)이며, 그로써 일구어내는 정겨운 인심(人心)입니다. 인정이 넘치고 인심이 후한 <동막골>은 그래서 다만 어느 막다른 두메산골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한반도 전체의 내일을 위해 새로 난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마음이 열리면 길은 그 어디에도 있음을 두고 두고 깨닫게 하는 동막골 사람들의 순진무구함이 이 세상 만사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라는 진실, 이걸 놓칠 수 없는 우리가 그곳에서 어두운 밤 헤매지 말라고 가파른 산비탈에 정성스레 호박등을 켜는 마을 사람의 하나가 되는 상상으로 이 여름 오후를 즐거워 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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