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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가락에는 춤추는 평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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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가락에는 춤추는 평화 있어"

김민웅의 세상읽기 <95>

도대체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는 어느 허공에서 툭 하고 솟구쳐 오른 번뜩이는 놀라움인가 하는 질문을, 예로부터 입어 온 조선 백성의 흰옷이 그야말로 썩 잘 어울리는 그의 무대에서 분명코 던지게 됩니다. 게다가 그의 겸손하고도 꾸밈없는 말투는 그 육성을 듣는 이로 하여금 여지없이 미소 짓게 하는 순박한 매력이 있으니, 이 50대의 사나이가 주는 아름다움은 흉흉하고 난폭한 세상에서 그저 고맙기조차 합니다.

충청남도 광천이라는 곳이 어떤 마을이길래 이런 사람 좋은 소리꾼을 태어나게 했는가 싶고, 그가 부르는 <찔레꽃>을 들을라 치면 어느새 듣는 이에게 찔레꽃 흐드러지게 핀 산 속에서 세상 시름 잊고 춤추게 만드는 힘이 스미게 하니 가히 '장사익'이라는 이름이 갖는 명성이 헛되지 아니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읊으며 해질녘 들판에 석양이 깔리듯 조용히 퍼지는 그의 소리가, 예기치 않게 굽이치듯 꺾어져 저 멀리 구름 걸린, 높기가 한량없는 산봉우리로 걷잡을 수 없이 치달을 때는 비상(飛上)의 서늘함으로 선기(禪氣)를 느끼기도 합니다.

하늘에 닿을 듯 산야(山野)를 휘몰아치듯 거침없는 태평소 연주로 다져진 그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절절함은 이 시대의 한과 흥을 함께 담아 새로운 세상을 펼쳐냅니다. '국밥집에서'를 부를 때에는 인생사의 노고에 대한 위로가 가득한 표정이 되어 그의 나이가 품는 연륜까지 합쳐, 부질없는 근심을 하는 이들에게 소박한 일깨움을 쏟아냅니다.

그 가사가 또한 깊습니다. "노래를 부른다/허리가 굽은 그가/탁자를 타닥 치며/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만났으니/희망이 족할까/희망가를 부른다/이마의 깊은 주름은/세상을 덮고/눈길 머무는 나를 본다/그렇다/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끝내 흙으로/돌아가는 길을/안다." 장사익은 그리하여 국밥집 탁자를 유랑길에 오른 도인(道人)처럼 두드리며 앉아 있는 노인의 눈길이 문뜩 머문 젊은이가 되고, 또 그 젊은이를 지울 수 없는 이마의 주름으로 바라보는 노인이 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희망가'는 슬프면서 따뜻합니다.

역시 인생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겸허하고 누구든 그 처지가 곤궁하면 가리지 않고 안쓰러워하며 보듬을 줄 아는 이의 소리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노래가 쌓아 온 '신뢰감'이 무엇인지를 새삼 알게 합니다. 믿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시대에 만나게 되는 희귀한 기쁨입니다.

가령 그의 '나 무엇이 될까 하니'는 이런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나 무엇이 될까 하니/그리운 그대 꿈속까지 찾아가/사랑하는 그대 귀 씻어주는/빛 고운 솔바람 소리/나 무엇이 될까 하니/그리운 그대 꿈속까지 찾아가/맑은 물소리." 한적한 산사(山寺)의 종소리가 육중하게 그러나 결코 낯설지 않게 울리는 가운데 이어지는 그의 노래는 우리를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으로 이끌고 가기도 하며, 언뜻 길이 끊어진 숲 속 솔바람이 드디어 멈춘 자리까지 인도하기도 합니다.

지난 27일 <평화 박물관> 건립을 위한 공연이었습니다. <춤추는 평화>라는 제목이 붙은 자리에 장사익을 비롯하여 아이들과, 국악 연주자들이 객석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시인의 숨결을 순발력 있게 그리고 탁월함이라는 말이 부족할 지경으로 풍족하게 불어넣을 줄 아는 또 하나의 젊은 노래꾼 홍순관 등이 정성들여 꾸민, 고운 빛깔의 마음들이 맑은 합창을 하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홍순관은 이 일을 위해 또다시 먼 노랫길을 떠난다고 합니다. 소중한 장도(長途)입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도 크게 한몫 하면서 분주하게 사람들을 엮어낸 자리였습니다.

무대 위에는 색동저고리 무늬가 나비처럼 펄럭이듯 장식되어 있었고, 해금과 거문고와 태평소와 기타와 장구 그리고 피리가 본래부터 그렇게 어울리도록 되어 있는 것처럼 어울려 화려한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건 어디에 내어놓아도 자랑이 한이 없게 될 우리의 몸이 된 가락이자, 아득한 시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때로부터 이미 핏속에 흐르는 소리임이 틀림 없었습니다.

하여, 장사익의 노래는 그 긴 세월이 익혀낸 뿌리칠 수 없는 갈망을 우리에게 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들에 핀 무명의 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버리는 걸 참아낼 수 없고, 희망이 끊어진 벼랑 끝에 외롭게 서 있는 이들을 모른 체 하지 못하며, 탁류의 하천(河川)을 보고 그냥 돌아설 수 없는 이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시선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이길 평화가 그저 오는 것은 단연코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이런 소리꾼 하나 있어 적어도 그만큼은 우리의 영혼이 넉넉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장사익의 가락에는 '춤주는 평화' 있어 사뭇 좋기만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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