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우리들이 하는 말이
별이 되는 꿈을 꾼 일이 있다.
들판에서 교실에서 장터거리에서
벌떼처럼 잉잉대는 우리들의 말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꿈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찬란한 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릴 때의 그 꿈이 얼마나 허황했던가고.
아무렇게나 배앝는
쓰레기 같은 말들이 휴지조각 같은 말들이
욕심과 거짓으로 얼룩진 말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별들이 되겠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역시 그 꿈은 옳았다고.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이
망설이고 겁먹고 비틀대면서 내놓는 말들이
괴로움 속에서 고통 속에서 내놓는 말들이
어찌 아름다운 별들이 안되겠는가.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꿈을 꿀 것 같다.
내 귀에 가슴에 마음 속에/아름다운 별이 된
차고 단단한 말들만을 가득
주워담는 꿈을.
-신경림, `말과 별` 전문
TV를 천리안의, 편재하고 싶은 예술 소망의 결과라고 볼 때, TV드라마 `배우`, 즉 탤런트의 소망은 착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의 `말`이 아름다운 `별`로 되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이때 이 연기자는 보통 아버지 혹은 보통 어머니의, `낯익음의 권위`에 달하게 된다. 그러자면 명대사와 명연기는 물론 명장면과 명연출, 그리고 명시청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TV드라마의 엄청난 접촉 면적에 비하면, 그리고 그 요란한 시청률 경쟁에도 불구하고, `말`이 `별`로 되는 경우, 특히 그냥 내뱉는 듯한 말이 드라마 밖 해묵은 일상을 건드리며, 해묵음 자체를 빛나게 하는 경우는 드믈다. 아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영화사에 명배우는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과 거리가 TV드라마보다 훨씬 멀며, 그만큼 환타지고 그만큼 멋있는 것을 추구하므로, 설령 가난을 다룬다 하더라도, 우리 바로 곁의 말들을 `별`로 만드는데 별 관심이 없다. 김승호와 황정순은 명배우지만 서민적으로 `멋지고`, 최무룡과 김진규는 멀쩡하게 `멋지고`, 장동휘와 박노식은 주먹건달로 `멋지고`, 이예춘과 허장강은 다시 볼 수 없는 악역 배우고 김지미는 `아름다움의 연기력` 그 자체를 연기한 배우고, 신성일과 엄앵란은 물론 다시 없을 `맨발의 청춘` 커플이지만, 화면 속으로 너무 멀다. 오늘날의 영화 배우 스타들은 스스로 하늘 높이 떠있으므로 일상의 말을 줏으려면 다시 내려오는 수고를 겪지 않으면 안된다. 영화와 TV드라마는 그렇게 다르고, 그러므로 다시, TV드라마 연기자로서는, 심지어 사극 연기를 하더라도, 낮은 말을 높은 별로 끌어 올리는 과정이 본질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나라 TV 드라마 연기사를 고두심 이전과 그 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그녀 `연기는`우리네 실생활과 차이가 미분화할수록 감동적이고, 그런 그녀 연기로 하여 우리네 일상은 그녀 연기를 누릴수록 감동적이다. 우리가 `성격 배우` 혹은 `성격 춤` 혹은 성격음악(표제음악)이라 할 때 혹시 암시하는 어떤 부정적인 측면, 화면 밖으로 나오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그녀 연기에는 없다. 그것은, 우선 우스개 삼아 말하자면, `고두심`이란 이름이, `예쁜 연예인 시대`인 지금은 더욱, 놀랍도록 촌스러운 것임에도 우리가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더욱 놀라운 점에서 그렇다. 나는 배우 이름이 아름답고 부르기 쉽고 그래야 하는 것인 줄 몰랐다.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연출자들이 예쁜 예명을 하나 짓자고 하기도 했지만, 내가 안 하게 되고, 뭐 잘 몰랐으니까, 아버지가 주어준 이름이 최고다 생각했으니까 고집을 했다. 동생 이름이 고두화인데, `화`자가 하나 들어간 것이 예쁘게 들리길래 어릴 때 이름을 바꾸자고, 그런 소리를 한 적은 있다. …고두심 이후 젊고 이쁜 탤런트들은 영화스타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즉, 그들도, 일상의 말을 줏으려면 다시 내려오는 수고를 겪지 않으면 안된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가 망가지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고두심은, `예쁜 탤런트`로 시작하지 않았고, 망가질 필요가 없다. 않았으므로, 없다? 아니다, 않았는데도, 없다. `망가지는 연기` 또한 명연기자만 가능한, 그러므로 명연기자에게만 주어지는 역할이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 명세빈, <불어라 봄바람> 레지 김정은, <내 이름은 김삼순> 김선아의 망가짐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딱히 망가지는 꼴 때문이 아니고, 그 망가짐 연기를 명세빈이나 김정은, 혹은 김선아 아닌 배우가 한다는 것을 어언간에, 아니 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연기력이 뛰어나고 그들의 망가짐이 치명적인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론과 인기 분석은 사실 나중 일이고, 부산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럴 때 그들은 희극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고두심은, 늘 곁에 있으므로 굳이 내려올 필요가 없고, 내려올 필요가 없으므로, 희극적이었던 점이 한번도 없다.
그렇다면, 고두심을 일상에서 만나는 일은, 드라마 `속` 낯익은 현실로부터 드라마 `밖` 낯익은 현실로 불러내는 일이므로 낯익고 편안할까? 아니다, 그것은 무섭다. 그것은 `속`과 `밖`의 차이의 끊임 없는,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미분(학)으로부터 그녀를 끄집어내어 적분(학)하는 일이므로 무섭다. `운동` 후유증 때문인지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을 더 좋아하는 버릇, 나쁜 것에 반대하는 일에 나서기보다는 좋은 것과 자주 어울리는 버릇이 생겨 천성 때문에 `문화계 마당발`이라는 `선의의 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장르, 다른 영역, 다른 직업, 다른 차원의 인간들과 만나기를 주저하지 않게 된 지 얼마 안 된 후부터, 그리고 특히 `만남의 글`을 쓰기 시작한 직후부터 고두심과 만나보기를 바랬으나 번번히 지레 주눅 든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얼핏보더라도 연기자 고두심과 <마당 깊은 집>, <산 너머 저쪽>, <아들과 딸> 등 시청률 요란했던 작품을 같이 했으므로 인연이 제일 깊은 듯 보이는 방송작가 박진숙에게 부탁하여 겨우 전화 통화가 된 후 처음 들은 고두심 육성의 내용은 정말 무서웠다. 나 그거 하기 싫은데, 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목욕탕 집 사내들>에서 시집 안 가고 버티는 세 딸에게 하듯 바로 내 곁에서, 너무도 당연한, 그리고 일상적인 짜증투였던 것. 차라리 야멸찼다면 오히려 편했을 텐데, 그녀는 그 틈도 주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잘못하고 오랫동안 꾸중들을 날을 전전긍긍하다가, 예상대로 꾸중을 듣지만, `예상대로`가 무슨 도움이 되기는커녕, `느닷없이`보다 더 무겁게 느닷없는, 그런 상태로 잠시 어버버 댔을 것이다. 그리고 두서 없이, 내용 없이,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애원의 어조만 겨우 버텼을 것이다. 그리고, 만남을 겨우 허락을 받고 나니, 뭔가 망신살의 파국이 예정된 것처럼, 그 `예정 예상`이 다시 준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미치겠네 이거…대담 순서를 앞쪽으로 잡았기 망정이지, 한 두 달 뒤로 미뤄 잡았더라면, 다이어트 효과가 상당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하는 걸 굉장히 꺼린다. 강의 제의를 받아도 못하겠다 대답한다. 그 대신 일 대 일로 만나 그 사람 눈빛을 보며 얘기하는 일은 30년 넘게 해 버릇하여 그런지 잘 익어있다….눈을 맞추는 대화라. 얼핏 황홀한 말이지만, 30년 넘은 방송 동료라면 모를까, 초면에 그녀와 눈을 맞추는 대화`는 얼마나 간담 서늘한가,
초등학교 때는 뭘 몰랐고, 중학교 때부터 꿈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연기자였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고전무용을 했지만, 신성일, 최지희, 엄앵란 등 유명배우들이 모처럼 제주도로 와서 당시 유일한 관광호텔에 묵던 중 베란다로 나오고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그리로 몰리고,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단발이 아니라 갈래머리였는데, 배우 신성일이 `어, 쟤는 배우 얼굴이다. 배우 시켰으면 좋겠다`하며 나를 정말로 뽑아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아무리 날짜가 가도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배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계속 들었고, 결국 오빠 밥 해주겠다는 핑계로 상경했다. 바램 보다는 꽤 늦었지만, 72년 만 21세로 데뷔했다. 초기 출세작 <춤추는 가얏고>는 예술인의 일대기를 그린, 그래서 이중으로 어려운 작품이라 처음에는 겁이 나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유명한 욕쟁이 연출자(장수봉. 앞서 말한 박진숙 작품 모두 그가 연출했다)가 예의 그 `사이 시옷 걸쭉한` 욕을 해대며 `너는 뭐 뭐만 하자고만 하면 못한다고 그러냐?` 하길래 `뭐 이런 게 다 있어?`하다가 오기가 생기고 그런 일이 두 차례 더 있은 후 정말 오기로 한 작품인데, 정말 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그후 고두심은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는` 장수봉을 더 걸쭉한 `사이 시옷` 욕으로 맞받아쳐 단 한 번에 눌렀다는 `신화`를 갖게 된다. 그리고, 하긴, 장수봉의 욕은 처음이 좀 거시기해서 그렇지 애정 표시라, 종류가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순정적이다.) 못 먹는 소주를 `털어 넣어` `산산조각난 상태를 부르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로 담배 장죽을 물고 분장하고 연기하고 촬영하고 혼자 자동차를 몰고 밤새벽길을 밟아 일영에서 돌아오며 카세트 볼륨을 있는대로 높이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집에 와 목욕탕에서도 창을 부르며(sing), 창을 불렀고(call), 결심하고 각오했다. 등허리 굽고 초라하고 남루한 활머니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오늘 내가 늙어 내일 사람들이 고두심을 몰라 보아도 좋다…34년 연기생활에 아쉬움도 없으니 난 행운아다. 앞으로 내려가는 길도 잘 내려가려고 한다(그러나 20대에 이미 할머니 역할을 했고, 여러 명을 울린, 고두심 자신도 연기하며 울었다는 <꽃보다 아름다워> 전에도 치매 역할을 한 바 있는 고두심에겐 사실 내려가는 길이 없다. 그녀야말로 나이를 먹을수록 아름다워지는 연기자다). 요즘 3년 동안 몸뻬만 입는 엄마를 너무 많이 하여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여성을 하고 싶다(그러나 장서희가 `화려한 아름다움`의 연기를 펼쳤던 <인어공주>에서 고두심은 스스로 말했듯 `옷을 실컷 입어서 좋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
이런 여자와, 초면에 어떻게, 감히,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한단 말인가, 몇 분도 안 되어 보잘 것 없는 내 속내를 그냥 들킬 것 아닌가! 아니, 몇 분 좋아하네. …사실 초장에 깨졌다. 같은 제주도 출신으로 문예진흥원 당사자인 현기영(소설가)과, 자칭 고두심 열성팬으로, 오갈 데가 마땅치 않던 중 마침 소식 듣고 달려왔다는 황석영(소설가) 일행이 미리 다방에서 진을 치고 행사 시작 전 그곳에서 차나 한 잔 하라길래, 그러려다가, 고두심을 `모시고` 가는게 당연히 예의 같아 나도 문예진흥원 행사 담당자들과 함께, 문예진흥원 정문 앞마당에서 기다리는데, 내 엉거주춤한 폼으로 미루어 내가 그를 불러낸 `죄인`이라는 것을 한 눈에 짐작한 그가, 담당자들과는 서로 친절하고 공손한 인사를 나누는 그 와중, 내게 눈을 흘리고,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참이었는데, 그런데, 그 흘기는 눈빛의 표정! 마치 30년 동안 아름다운 누님의 꾸지람과 원망과, 무엇보다 예리하게 파고 드는 정겨움의 표정! `여시`라거나 `프로`라거나 그런 `직업적 용어`가 전혀 묻어 나지 않는 그, `연기=삶`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그러나 양 쪽을 빛나게 만드는 표정! 하긴,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펼쳐주지 않았더라면, 그런 적분학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이렇게, 여기까지 왈가왈부를 할 수 있었겠는가. 고두심이 문학인과, 잘 어울린다기 보다는 문학인을 많이 돕고 현기영과 황석영 뿐 아니라 이청준, 박경리, 박완서 등 `대가들`의 작품을 깊이 읽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청준 책에 서문까지 썼을 줄은 몰랐다. 그 분들 작품을 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녀 말은 그랬다. 이청준이 남도의 끈질긴 정서를 문학예술화한다면, 고두심은 제주도 해녀의 삶을 연기예술화한다. 해녀의 자맥질은 얼마나 오랫 동안 호흡을 끊느냐이다. 이렇게 평생 동안 죽음을 견디는 것은 자식의 가장 편안한 단 한번 숨에 맞닿아 있다. …이것은 자연인 어머니로서 얘기기도 하고 `연기자=어머니`로서 얘기기도 하고, 적분학으로서 얘기기도 하다. 그녀 일상이 궁금해질 때다.
드라마를 한 편 하면 6개월, 두 편 하면 1년이 간다. 어느 날 자동차가 움직이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서야 어, 가을인가 봐, 그럴 때가 있다. 게다가 원고 마감을 어기는 작가를 만나면 밤샘 작업도 다반사다. 작품성을 따져 작품을 고르는 편은 아니고 어떤 인간적인, 끈끈한 정에 끌려 다니는 편이지만, 연출이 내게 맞는 역을 의논하고 골라주는데다, 대개 팀워크가 잘 맞아 결국 좋은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긴 탁월한 연기자일 수록, 연기예술의 작품성에 몰두하는 편이라, 문학성에 몰두할 겨를이 없겠다.) 남매를 두었는데, 어머니 연기를 많이 하지만, 걔들한테 정말 좋은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할 때가 많다. 어렸을 때 야단을 한참 치는데, 애들이 `엄마, 지금 엄마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하고 똑같아요`라고 해서 웃음을 못 참고 다른 방으로 뛰어가 막 웃고 다시 돌아와 야단치고 그랬던 적이 있다. (이 점에서 고두심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시답잖은 텔레비전 광고와 달리, 어른들이 없는 시간 내어 놀아주는 것으로 철이 들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철이 든다. 그 점에서 애들 없는데서 선생 노릇하며 땀 뻘뻘 흘리는 우리 집사람은 불행하고, 실업자로 집에 붙박혀 글을 짜내고 원고료로 입에 풀칠하는 나는 좀 낫고, 훌륭한 어머니로 밤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하는` 고두심은 훨신 유리하다.) 그녀가 생각하는 어머니상은 까막눈이었지만 참으로 지혜롭고 자애로운 그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다. 남이 아파할 얘기를 잘 못하는 편이다(당연히 그렇겠다.). 대사는 외우고 나서 스튜디오 문만 나오면 딱 잊어버리고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얘기한 것도 그냥 털어버린다. 그러므로, 할 때 아무리 좋았던 작품이라도, 조금 지나면 어떤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경우도 없다(이것 또한, 컴퓨터 용량 문제가 아니라, 프로로서 당연하다. 하물며 나같이 약소한 필자도, 이왕 쓴 것에 집착하면 글이 써지지 않는데…). 내 연기 모니터는 가능하면 하지만, 딴 일이 없어 처음 방송분을 못 보게 되면, 이상하게 재방으로 모니터를 하지는 않게 된다. (그녀는 연극을 많이 했고, 지금도 연극을 통해 관객과 `발가벗은 채` 만나고 싶어한다)책을 쓰라는 사람도 있지만, 일기나 그때그때 감정 메모를 자식들한테 주고갈 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남긴다는 것은 무섭다(그녀 입에서 `무섭다`는 말이 나오다니! 하지만, 고두심은 책을 써야할 것 같다. 그러지 않다면, 고두심 연기예술의 비밀을 엿보는 `쾌감의 교과서`를 우리가 놓치지 않겠는가.). 여가시간은 정말 없는데, 어쩌다 비가 온다거나 동료 연기자가 사정이 생겨 촬영이 빵구나면 마당에 나가 아주 쬐끄마한 꽃들을 들여다보거나 인사동 찻집을 이집 저집 들르며 차를 얻어 먹는 정도다….
주눅이 좀 풀렸는가, 나는 그녀에게 모처럼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 있 었었다. 고두심은, 의외로 김수현(방송작가)과 일을 두 번 밖에 안했다. 그 중 <목욕탕 집 남자들>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대박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김수현 특유의 그 `괴팍한 코믹` 성격`들의 잔치 속에서, 그 쟁쟁한 연기자들과 쟁쟁한 입담의 전쟁터 속에서, 고두심은, 가장 자연스럽다. 마치 코믹하지 않음이 그 모든 코믹의 코믹성을 보장 혹은 담보해준다는 듯이. 그런데, 다시 그런 장면들의 와중, 허리가 유독 약한 고두심이 그 사실을 깜빡 잊고 몸을 쓰다가 여시 허리를 삐는, 매우 안싱깊은 장면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고두심은 정말 꼼짝을 못하고 우왕좌왕대는데 강부자(시어머니)가 `비켜라, 비켜!`하면서 이불을 가져와 바로 옆에 깔고 고두심을 굴려 다시 끌고가는데, 이 장면은 한마디로 기똥찼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은, 절묘하고, 거의 믿을 수가 없다. 목욕탕에 보일러가 안 들어온다니 신새벽부터 난리가 나고 기술자 장용(남편)이 어둥지둥 내려가고 고두심이 커피를 타서 들고 또한 허겁지겁 내려가다 미끄러져 다시 허리를 움켜쥐는데, `아픔의 극치`와 `우스꽝스러움의 극치`(사실 아프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어떻게 보면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죽음 아닌가?)의 결합을 어떻게 그렇게, 다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그리하여 아픔이 웃음을 (덧나게 하는게 아니라) 틀어막게 하고, 웃음이 아픔을 (덧나게 하는게 아니라) 틀어 막게 하는, 하여 이중으로 숨이 막히는 그런 연기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리고, 좀 `연예계`스런 질문이지만, NG는 몇 번 났는가, 그 NG 장면은 남아 있는가?....그런데, 고두심의 답이 정말 놀랍다. 그게, 이제까지는 비밀로 했는데, 사실 그때 내가 정말 허리통증이 있었고, 김수현 선생이 그걸 알고 써먹자 해서, 그냥 써먹은 건데,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청중 앞에 그녀와 나란히 앉으니, 표정 얹힌 그녀 얼굴과 나의 얼굴은, 흔하디 흔한, 그리고 성적인 `미녀와 야수`는 잽이 안되고, 완전 `잘생김과 안생김`의 대비였다. 청중 덕분에, 청중을 핑계로 나는 그녀를 만났고, 그녀 덕분에, 그녀가, 마치 소심한 소년에게 용기를 주듯 무언가를 펼쳐주었으므로, 나는 청중 앞에서 고두심과 `고두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리가 끝나고 그때까지 (당연히)기다린 `고두심 팬들`과 술을 한 잔 하면서, 그녀는 어느새, 이따금씩 반말도 하고 그랬는데, 초장 반말이 아늑하게 들린 것 또한 전에 없던 일이고, 아쉬울 정도의 시간만 앉아 있던 그녀가 `같이 일하는, 오랫 만에 만난 오빠`들과 한 잔 해야겠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한바탕 꿈이었던 듯도 하다. 그녀는 지금, 오랜만에 드라마를 쉬는 한편, <역사스페샬>이란 교양프로 진행자라는 색다른 일을 하고 있다. 역사라. `착한 여자` 고조선 웅녀, 고구려 고주몽의 `정치적 어머니` 유화, 혁명적 아름다움을 성취한 백제 도미부인,에서 누추의 미학을 표출하는 조선 미얄할미에 이르는 모든 전형의 여성들을 그녀가 모조리 연기하는 `역사 다큐멘타리 극장`을 나는 그녀에게 맡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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