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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하지만 사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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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하지만 사람이 문제다

[이근 칼럼]<23>사다리 걷어차기? 사다리 올려버리기!

불안, 그놈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안, 불만, 불확실이라는 소위 삼불로 요약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민과 식자들이 크게 이의를 다는 것 같지 않다. 대선 주자나 정치인들도 공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낙 삐딱하게 바라보고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자의 전공이고 배운 짓이라 이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언제 우리가 불안하지 않고, 불만이 없고, 불확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정도의 차이라고 반박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정도는 주관적인 것인데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실 불안, 불만, 불확실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불안하고 불확실하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고, 불만이 있으니까 이를 표출하여 상황을 바꾸려고 한다. 모든 것이 너무 안정되어 있고 확실하고 행복하면 개인적이나 사회적으로 동력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무력해지거나 안이해지고 발전이 없다. 이러한 논리의 극단으로 가면 물론 불확실성 속에서 고위험 고수익을 좇아 무한경쟁으로 가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가지만, 반면 불안과 불확실성과 불만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저녁이 있는 삶"은 오지만 "아침을 시작하기 어려운" 삶이 될 수 있다.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아주 그냥 죽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과 불만, 그리고 불확실성을 이대로 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를 줄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이를 무조건적으로 줄이기보다는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줄여야 한다. 그 원칙은 바로 불안과 불만과 불확실성이 모든 개인의 노력과 창의성에 비례해서 줄어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았는데도 모두가 다 동일한 대학 졸업장을 따고 또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사회는 일하고 발전하려는 인센티브, 즉 동력이 떨어져 지금 당장의 개인은 좋지만 미래의 한국은 암울해진다. 따라서 "현실"적인 해답은 국가가 신의 경지에 올라 역사의 종언을 내리면서 "천국"을 만들려 하기 보다는 불안과 불만과 불확실성이 있는 인간세상에서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천국에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이다.

불안과 불만과 불확실성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열쇠일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왜 지금의 불안과 불만, 그리고 불확실성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사실 불안과 불만, 그리고 불확실성은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우리의 곁을 항상 지켜온 "사랑, 그 놈"과 같은 놈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놈들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놈들을 떠나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천국의 열쇠는 소수에게만 주어졌다. 예전에는 그래도 노력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개천이 아니라 4대강이나 되어야 용이 나올 법하다. 개그 프로의 "용감한 녀석들"이 말하는 "안 될 놈은 안 되"는 인간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이 글의 핵심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뉴시스
사다리 올려버리기와 의욕상실

왜 안 될 놈은 안 되는 그런 "놈"들이 많아졌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우선 내가 만일 "안 될 놈"으로 분류된다면 어떤 정신병리학적 증상이 가장 먼저 나타날까? 그건 아마도 "의욕상실"일 것이다. 해 봤자 안 되는데 뭐하러 하나? 의욕상실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러한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전체의 동력, 즉 다이내미즘이 떨어져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된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아니라 "내믹"이 빠진 "다이 코리아"가 된다. 이상하게도 이번 정부 들어서서 이런 의욕상실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다들 그냥 다람쥐 쳇바퀴 속의 다람쥐 마냥 달리고는 있지만 무력하게 달린다. 의욕이 없다람쥐. 학계와 시민사회가 다 죽어버린 느낌이고, 젊은이들도 나이든 사람도 어깨가 쳐져 있다. 오직 저 멀리서밖에 보이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만 의욕이 넘쳐서 아드레날린 분출이다. 사람 감시하고, 쳐 넣고, 공사 따고, 빼돌리고, 등등 아직 다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분명 의욕이 넘친 것이 사실이다. 대형마트 열고, 빵집 열고, 광고 협박하고, 주식 작전하고, 죄지어도 마음 편한 사람들은 분명 의욕이 분출할 것이다. 통계적으로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치적 수사로는 의미가 있는 숫자인 1% 대 99%의 구분에서 1%는 의욕이 넘쳐나고 99%는 무력감에 쌓인 인구이다. (이는 미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국가 부의 약 35%를 최상위 1%가 소유하고 있고, 최상위 10%가 약 75%를 소유하고 있다.)

이제 왜 안 될 놈이 많아졌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바로 1%라는 소수 특권 세력이 천국을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가, 잘사는 국가는 사다리를 타고 부자나라로 올라간 후 사다리를 걷어 차 버렸다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을 썼지만 이 은유는 잘못된 은유다. 부자 나라든 특권세력이든 이들은 천국에 올라가서 천국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천국 위로 올려버린다. 걷어차면 다시 세워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안 보인다. 무력감, 의욕상실의 이유이다.

이제 사다리를 올려버린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와 몇 달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등장하는 공약과 시대정신 얘기를 해 보자.

사람이 먼저다, 그러나 사람이 문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대표주자들이 외치는 공약, 시대정신 등으로 보았을 때 여당과 야당이 별반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다. 양쪽 모두 "경제민주화"가 간판이고, 대북정책은 어떠한 형태로든 유연해질 것 같다. 복지정책도 모두 강조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좀 보이지만 큰 방향에서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그렇다면 누구를 뽑으나 대한민국의 운명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나중에 밝히고, 우선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간판이 된 것은 정치인들의 어정쩡한 선택이라는 주장을 해본다. 특히 야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경제민주화를 하고 복지를 하면 하늘로 올라간 사다리가 다시 내려올까? 재벌개혁을 하고,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늘어나면 사람들의 의욕이 다시 충전될까? 아직 국민소득이 2만 달러 대에 머무르고 있는 대한민국이 다른 선진국과 같은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지금과 비슷한 재벌개혁안이 쏟아졌고, 전 진보정권에서도 재벌개혁안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세계화" "위기극복" 혹은 "경쟁력"이라는 구호로 무효화되었고 오히려 재벌 및 특권층만 강화되고 견고화되었다. 복지가 강화되면 일부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오겠지만 "출근하는 아침이 오지 않는 삶"의 문제, 즉 좋은 일자리의 다량 창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저녁만 있는 삶"이 오더라도 "풍요로운 저녁"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추후"의 문제이고 이를 위해 먼저, 혹은 동시에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 혹은 동시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운영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민주화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1%의 네트워크를 민주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화는 독점 구조를 철폐하고, 공정한 룰과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서 1%와 99%가 장벽 없이 섞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천국으로 올려버린 사다리를 다시 내린다는 의미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경제민주화를 추진하였지만 항상 대한민국을 더욱 강하게 양극화로 가져간 장본인은 바로 1% 특권층 인적 네트워크이다. 이들은 공통의 특권적 이익을 공유하는 정치인, 관료, 법조인, 언론인, 학자, 그리고 재벌을 포함한 대규모 자산가로 얽혀있는 네트워크다. 대한민국에서 현재까지 거의 모든 정부는 이들 세력에 의해 포획되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가 되어왔다 (산업화 시대 초기를 제외하고). 즉 정부가 사다리를 올려버린 셈이다. 그 점에서는 가장 민주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보였던 노무현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모 대통령 후보가 "사람이 먼저다"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구호는 운영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1% "사람이 문제다"이다. (It's the 1% human network, stupid)

이 인적 네트워크의 힘은 대한민국의 운영체계(K-OS)를 장악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람이나 법, 이념 등을 제거하거나 피해가 생기면 순식간에 복구해 내는 힘이다. 개혁은 운영체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일 뿐이고 시스템이 다운되면 바로 투입될 애프터서비스(A/S)는 세계최강이다. 이 인적 네트워크에 새롭게 들어가는 것은 매우 힘들다. 가문과 학교와 충성도라는 신분, 그리고 영혼을 팔 수 있는 능력 등이 검증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그래서 1% 대 99%의 구도는 굳어질 수밖에 없다.

이 인적 네트워크는 이익집단 간의 경쟁이 당연시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려 하고 어쩌면 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개별적 이익의 추구가 사회적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나을 때에 생긴다. 또한 이익 추구의 방법이 불법적이고 탈법적이고 편법적일 때 문제다.

특정 이익집단이 운영체계를 장악하고 부와 특권을 독점하게 되면 나머지 이익집단들은 앞에서 말한 "집단 의욕상실증"에 걸린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안 될 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는 99%가 정체되고 1%만 살 맛 나는 세상이어서 사회전체가 죽어버리거나 폭동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어떤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것이 가장 개혁적일까?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계층 간 이동을 노력과 능력에 맞추어 자유롭고 공정하게 하는 전통적인, 그리고 이상적인 방법이다. 이른바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가 운영체계를 장악하고 부와 특권을 독점한 이익집단이 이러한 바이러스의 침투를 용인할 것인가? 우리는 기존의 인적 네트워크를 현실적으로 해체시킬 수 있는 방법과 힘이 있을까? 답은 "거의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두 번째 방법은 다음 글에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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