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입시계획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새 논술시험이 본고사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3불정책 고수냐, 대학자율권 확보냐를 놓고 정부와 서울대가 벌이는 전면전의 승부처도 바로 이 대목이다.
서울대 얘기대로 통합형 논술시험이 본고사가 아니라면 정부의 강경대응은 부당한 간섭이요, 자율권 침해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측 판단대로 본고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서울대는 3불정책을 어길 의도가 없다지만, 새 입시계획이 사실상 거기에 반하는 것이라면 정부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국립대학이 정부 교육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태가 된다. 대학 자율권을 논할 계제가 못된다.
결국 통합형 논술이 본고사인지 아닌지 판가름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원인은 두 가지다.
***‘통합형 논술’이 어떤 것인지, ‘본고사’의 기준이 무엇인지...**
첫째, 논란의 대상인 ‘통합형 논술’의 실체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계획만 제시됐을 뿐, 문제 모형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실정이니 누구도 정확한 판단할 수 없다. 둘째, 어디까지를 '본고사'로 볼 것인지 분명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일각의 해석대로라면, 각 대학에서 이미 시행중인 논술시험도 본고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3불정책으로 본고사를 금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본고사이고, 어느 선까지 안 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상태다.
이렇듯 판단의 대상과 잣대, 둘 다 명확치 않다 보니 제각각의 해석과 주장만 난무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논란이 정리되려면, 두 가지 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서울대는 통합형 논술시험의 실체(문제모형)를 제시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본고사 금지의 범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 후 비로소 내실 있는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향후 논의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논의의 초점이 ‘본고사냐 아니냐’에 모아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위 두 가지 기준이 마련된 후에도 결국은 그것들이 해석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양측간에 일치된 결론이 나기 극히 힘들다.
논의하고 풀어가야 할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서울대의 새 논술시험이 진정 문제가 된다면, 본고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몰고 올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 때문이다. 현재 계획대로 강행된다면 공교육의 정상화를 해치고 과외부담을 가중시키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우려다. 정부가 본고사를 금지하는 주된 이유도 이런 폐해 때문이다.
서울대의 새 논술시험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이에 대한 검증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서울대측 주장대로 책을 많이 읽고 학교교육을 잘 받으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우려대로 새로운 사교육 수요만 창출하게 될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검증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측이 새 논술시험 모형을 만들면 서울대와 교육부 혹은 교육단체의 공동주관으로 일선교사들이 평가분석하고 학생들이 모의테스트를 해보도록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서울대측은 보다 더욱 공교육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논술시험 유형을 개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은 사실 서울대가 새 입시계획을 공표하기 전에 미리 거쳤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논란의 이면 ‘내신 문제’에 주목하라**
이 참에 풀고 넘어가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내신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교육 당국은 각 대학 입시에서 내신 반영비율을 높여나갈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 서울대가 내신 비중은 낮추고 그 대신 통합형 논술을 들고 나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공교육 정상화 그리고 과외부담 해소를 위해 내신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기존 내신자료의 신뢰성과 변별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공지의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다. 일반고와 특목고, 그리고 일반고 중에도 지역간 또는 같은 지역 내 학교 간 수준차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학생을 실력대로 공정하게 선발해야 하는 대학측으로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보니 내신 비중은 낮추고 어떻게든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일선 학교에 지침을 주고 감독을 강화하는 등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대학 쪽의 판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 문제 역시 당사자간 협의와 공동작업을 통해 함께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부, 대학, 교사단체 등 책임 있는 당사자 대표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내신 개선방안을 협의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학의 입시관계자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 선발의 현장에서 느끼는 내신자료의 문제점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그에 대한 개선방안이 대학측에서 믿고 비중 있게 활용할만한 수준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학교 간 수준차 등 엄존하는 현실 문제는 내신평가 때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는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대화로 풀면서 함께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교육 당국과 교육자들이 몸소 시민 학생들에게 보여준다면, 그 이상 더 좋은 교육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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