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면 누군지 알까?.....그럼요, 몇 번이나 봤는데….강은일과 아주 친한 주홍미(공연 연출기획자)는 그렇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강은일은 처음에 그냥 착한 마음에 긴가 민가 해주더니, 추가 설명을 서너 번 하고서야 비로소 기억이 난다면서 하는 소리가 이랬다. 아, 알아요. 아, 그 배 나오고, 키 작은 아저씨요?.....맞아요. 맞아….그랬지만 난 좀 비감했다. 나는 `나온 배` 속으로 외모와 표정이 사라지는 타입이다, 뭐 그런 말이 되겠군...그런데, 다소 격식 있는 만남을 가지려고 그녀를 보니 역시 미인이고, 그는 `이용식 파마`를 했다며, `머리 모양이 좀 이상한데, 괜찮을까 몰라.` 이렇게 너스레를 떨며 주홍미(가 고맙게도, `강은일과 이야기` 자리에 동참해주었다. 하긴, 그럴 만하다. 강은일은 `나이든, 혹은 `예술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주홍미가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바쁜 중에도 와서 귀한 연주를 들려주었을 뿐 아니라, `엔터테이너`를 자처하기도 했다. )와 나를, 문예진흥원 계단을 내려가던 다리가 휘청, 아니 후둘거릴 정도로 웃겼지만, `왠 미인이 `악기=몸`을 모처럼 빠져 나와 내 앞에 현현하는지라, 여전히 `나온 배` 속으로 외모와 표정이 사라지는 처지인 것도 까먹고, 이 미인을 차지한 `바깥 식구`가 궁금했다. 잘 나가던 삼성맨이었어요….삼성맨요?....네… 하필 그날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다가, 삼성 그룹 신용도가 국가 신용도보다 높다는 뉴스를 듣고, 자세한 용어는 모르겠으되, `삼성이란 데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군. 혹시 저거, 우리나라가 돈을 빌리려면, 삼성이 빚 보증을 서줘야 한다는 얘긴가?` 그렇게까지 비약을 했었는데, 그 삼성맨, 그것도 잘 나가던 삼성맨이 강은일을 만나 삼성을 때려치우고 지금은 국악닷컴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단다. 그 말을 너무 당연하게 하는 것이 뭔가 당연하면 안 될 것 같아 `사람 하나 망가트렸군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렇죠…여전히 아뭏지도 않다는 투다. 이쯤 되면, 나는 갑자기 그의 아이들이 불쌍해진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애는 일곱살 유치원짜리라는데, 그는 집에서 연습을 하고 연습은 무수한 틀림과 반복을 요하고, 해금 연습 소리는 날카로운데다 멀리 가고, 무엇보다 연습시간에는 아이들이 어미를 건드릴 수가 없다. 아이들이 굉장히 싫어하죠…나는 그게 다소 안심이 되었다. 싫은 게 당연하지. 아무리 유명한 엄마를 둔 것이 유쾌한 일이라지만, 싫은 걸 싫다고 내색 못하고, 심지어 좋아한다고 말(해야)하고, 더 심지어 좋아한다고 스스로 착각한다면 훗날 얼마나 헷갈리겠는가. 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이란 질문에 `해금 소리.`라고 답해 엄마를 감동시켰지만, `왜?`라는 잇닿은 질문에 `하도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라고 대답했다니, 강은일 음악의 기에 아 눌릴 만큼 여유도 있는가 보았다. 학신 강은일 음악은, 국악 출신치고는 드믈게, `기가 뻗친`다기 보다는 `강력한 부드러움`을 발산하는 편이다. 이런, 이런….내가 지금 남의 자식 걱정할 땐가….정말 오지랍도 넓구만…
강은일은 소녀티와 고전미가 서로를 적당히 응원하고 버텨주고 서로 위로 받는 만만찮은 미인이다. 표정 또한 맑고 정결한 화사함과 `코믹의 장난끼`가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화사함이 늘,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성질의, 장난끼가 이따금씩,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툭툭 튀어나오는, 아니 터지는 성질의 것이라 해도 그렇다. 하지만, 그건 직접 만나서, 진지한 얘기든 시시콜콜한 얘기든, 이야기로 혹은 술로 대면했을 때 얘기지, 헤어진 다음에는 그녀의 외모와 표졍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의 `해금=음악` 때문이다.. 해금은 걸핏 하면 ~깡깡이`로 불리며 시답잖고, 잔망스런 음이나 내지르는 악기로 천대받지만, 그녀의 연주는 해금을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놀랍게도, 첼로까지 버무린, 그야말로 `악기=몸`으로 만들고, 그것이 섹시`와 `청순`을, `참신`과 `문명`을 너무도 절묘하게 동일시하는 거라서, 육체가 정신보다 거룩하고 정신이 육체보다 육감적인 경지가 보이고, 그 속으로 그녀의 외모와 표정이 빨려 들고, 빨려 드는 것이 보일 뿐 외모와 표정은 아뜩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해금은 그의 `악기=몸`이고 그는 해금의 `악기=몸`이다. 무슨 야한 소리? 미꾸라지는 온몸으로 물살을 휘젓지만, 제 생각에만 `온몸`일 뿐 남이 보기에 그냥 미꾸라지다. 용이, 용보다 더 큰 바다 괴물이 온몸으로 바다를 휘젓는단들, 용과 바다괴물의 온몸은 그것을 보는 이의 온몸이 아니다. 하지만, 강은일의 `해금=몸=악기`는 제 혼자 휘젓지 않고, 우리를 휘젓지 않고,, 단지 후벼파거나 적시는게 아니라, 우리를 감동의 `온몸=휘저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금은 해금이 그냥 나의 삶인 것 같다. 내 배에서 나온 핏덩이, 타인이 될 수 없는 내 자신. 해금을 보면 소리도 모나고, 나랑 똑같고, 그래서 단점만 들리고 보인다. 해금 소리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맞아, 이래서 내가 내 삶을 바꿔야 하는구나. 아, 그래, 이런 면은 내가 더 바꿔야겠다. 한마디로, 해금은 내 자신이고 어머니고 스승이다. 해금을 통해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사회를 알게 되는 그런….그렇다면, 그 전은?
강은일은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가족 모두 당한 사고였고, 다른 사람은 모두 기절했고, 그도 다쳤으나 홀로 없는 듯 있는 정신으로, 알아챘다. 아, 아빠가 위독하시다….안간힘으로 버스를 세우고 식구들을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간호원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사망` 그러면서 아버지 머리 위로 흰 천을 들씌웠고, 그것은 본 사람은 여전히 강은일 혼자였다. 소름이 끼쳤고, 아버지를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만드는 죽음은 더 소름 끼쳤다. 아버지는 그런 방식으로 정을 뗐고, 강은일은 하늘이 깜깜해져 몸을 바닥에 퍼지르고, 배운 적도 본 적도 없는 `땅을 치는 울음`을 하염없이 울었지만, 낯익을수록 더욱 소름끼치는 죽음은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죽음은 그의 가족을 해체시킨다. 그렇게 `거칠고 힘들고 심란했던` 그의 중학시절을 잡아준 것이 바로 해금이고 그의 해금은 그렇게 죽음과 매우 가깝다. 마치 조용미(시인)가 자신의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맨 앞에 `시인의 말`로 부친, 시보다 더 시적인 시의 뼈대처럼.
삼천 개의 뼈가 움직여
춤이 되듯,
나는 삼천 개의 뼈를 움직여
시를 쓰겠다.
그러고, 강은일 해금은 환희의 극치로 치닫을 때도, 중력의 (삼베)옷을 벗지 않는다. 그러나, 하긴 모든 훌륭한 음악이 그렇다. 모든 훌륭한 음악은 죽음과 삶을 양면의 동전으로 갖고 있다. 태양과 죽음의, 혹은 `태양=죽음`의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음악탄생신화 또한 삼각관계 때문에 언니한테 살해된 동생의 뼈로 현악기를 만드니, 악기가 `언니, 너무해. 언니, 너무해.` 소리(음악)를 냈다는 영국 전설의 `죽음탄생설`과, 하나님이 하늘로 가서 음악을 가져오라 하여 바람이 하늘나라로 가보았더니 태양의 찬란한 햇살이 바로 온갖 악기 연주자들이 내는 음악이었다는 남미 아즈테크 인디안 신화의 태양탄생설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리고 삶의 극치는 사실 죽음의 극치고, 음악의 극치는 `삶=죽음`의 극치다. 강은일은 `대중화의 기쁨`으로 `너무 이른` 죽음을 극복했고, 그러므로 강은일의 `국악 대중화` 작업이, 대중화는 물론, 깊이와 너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희귀하게도, 다름 아닌 해금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의 (공존이 아니라)일치를 보여준, 그래서 꽤나 알려진 그의 연주 음반 <오래된 미래>가 태어나게 된 과정을 들어보면 그것은, 분명하다. 처음 국악을 들었을 때 야, 이거 너무 좋다, 너무 좋은데….그런 생각이 들었고, 중학생 친구들한테 알려 줘야지…그런 생각이 또 들었지만 친구들은 , 특히 곡조가 느린 정악을 듣고는 `너무 지루하다, 재미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게 좋다는 것을 친구들한테 어떻게 설명하지?.....고등학교 때부터 대중화를 나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어머니 친구분이 무슨 악기냐고 묻길래 `해금`이라 답했더니 `해금이?`라고 되물었던 때다. 처음에는 친구들한테 `너게 좋아하는 곡을 내가 해금으로 연주해주마`했고, 팝송이나 가요 같은 걸 연주해주었다. 그땐 국악계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라 선생님께 불려가 크게 혼났다. 곡목도 곡목이지만, 그때 `해금`은 의자에 앉아 껄렁껄렁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모셔야`하는 악기였다. 어떻게 하지? 선생님 말씀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대중과 가까워지는 것은 포기해야 하나?.....그런 고민을 하던 중 KBS 관현악단에 들어갔고, 들어가서 `What a wonderful world`, `고엽`, `Autumn Leaves` 같은 팜송 혹은 샹송 멜로디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전혀 다른 각도의 고민이 생겼다. 내가 표현하려던 게 이건가? 그냥 해금으로도 이런 곡을 연주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었는가?.....그건 아니다. 정말, 해금이라는 악기가 좋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지….그렇다면, 어떤 곡을?..... 불행히도, 혹은 다시 다행히도, 대중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맞아. 이것은 대중들한테 맡길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음악을 할지, 내가 무엇을 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걸 정말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하는구나…국악의 정수는 깊이를 지닌 힘, 깊이의 에너지다. 그것과 대중의 경계에 설 수는 없는가. 하여, 그 경계를 심화-확대할 수는 없는가…그런 고민 중에 나온 것이 바로 <오래된 미래>다. `오래된 미래`라….정말 좋은 말이고, 강은일 음악에 아주 걸맞다. `
강은일은 출강을 많이 한다. 경희대, 추계예대 말고도 서너 곳이 더 있다, 라는 건, 그가 아직 정식교수가 못되었다는 뜻이다. 아니, 그가 완고한 국악계에서 `정식`국안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유명인과 무명인을 막론한 온갖 장르 음악, 온갖 세계 음악과 만나 음악의 소통을 이루고, 자기 세계를 이룬다. 김기덕 감독영화 <활>의 영화음악도 했다. 이것을 `정식 국악 `활동 혹은 예술`로 받아들이기에는 수천 년의 더깨 자체를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국악계 안방을 차지한 자들의 엉덩이가 너무 앙상함으로 무겁다. 서울 LG 아트센터는 개관 5주년을 기념, 독일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에게 `한국 소재` 무용 작품을 의뢰했고 이 작품에 김민기 음악, 그리고 강은일 연주가 무용음악으로 쓰인다는 `뉴스`가 있었다. 바우쉬는 메레디스 몽크와 함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그리고 가장 참신한 현대무용가다. 비록 `주문생산` 작품이라고 하나, 바우쉬 무용과 강은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은 최소한 청소년 축구 세계 4강 달성보다 더 떠들썩해야 할 일인데도, 문화계조차 조용하고, 그는 그 숱하고 흔한 교수 자리 하나 꿰차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교육 방법은 너무도 재미가 있어 늦깎이로 그에게 해금을 배운 여제자 한 명은 차를 타고 가다 세우고 연습하고 가다 세우고 연습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귀가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의 교육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그 사람에 맞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좋아 하는 만큼까지, 자유분방하게, 가르치다 보면 가르치는 것에 빠질 수가 있는데, 그러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래서, 정석이 없으니까, 이렇게 방황하는 것 같지만, 정석이 …하지만, 바로 그게 정석 아닌가!
`저, 깊을수록 빛나는 울음소리`는 강은일 음악의 `마력=매력`을 표현하고자 내가 만든 말이지만, `말`이 `음악`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하여, `감상시간`을 갖기로 하고 비로소 청중석을 자세히 보니 70% 이상이 고등학교 남학생, 교복차림이지만 까까머리 테를 벗고 싱그러우면서도 자뭇 진지한 학생들이다. 단체로 왔어요?....아니오…학교는 같아요?.....아니오…인솔 교사 있어요?….없어요….그럼 두발 자유화 데모 마치고 몰려 왔나?.... 아니오…. 이것들이 어른 놀리나 싶을 정도로 세대차를 느낀 것도 잠시, <오래된 미래> 두번째 트랙에 실린 `비에 젖은 해금`이란 곡이 장내를 순식간에, 고즈넉하게, 그리고 뭔가 낯익은 기분이 나게 했다. `순식간`과 `고즈넉함`, 그리고 `낯익음은 서로 가파르게 모순되지만 `비에 젖은 해금`은 그 가파름을 넓디 넓은, 그리고 깊고 깊은 `폭의 적심`으로 전화하는 것이다. 기타가 해금에게 편안한 살을 내주고, 해금은 그 살을 받아 비에 젖은, 오래된 미래를 촉촉하면서도 천년 만년의 시간으로 펼쳐 보인다. 그런데, 작곡자와 그의 작업은 꽤나 수월했다. 같이 해보자 해서 간단하게 샘플로 그냥 몇 선율 만들고 자유롭게 즉흥도 넣자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클라이막스 부분은 악보가 없고, <한 오백년>의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를 갖고 만든 즉흥이다. 비에 젖은 해금이 소리가 나느냐, 뭐 그런 소리도 들었지만, 굉장히 서정적이고, 어둠과 차가움, 물, 눈, 얼음 등과 잘 맞는 것 같고…..`비에 젖은 해금이 소리가 나느냐?`, 아니면 `비에 젖은 해금 소리가 나느냐?`…노. 그런 얘기가 아니다. 다시, 아니 합쳐서, `저, 깊을수록 빛나는 울음소리의 몸=악기`다. 음악은 몸이 없지만 그림보다 더 생생하고, 육감적이다. 음악은 뜻이 없지만 글보다 더 구체적이고 축적적이다…..나는 이제까지 음악을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음악을 귀로 `듣는`, 나 같은 사람에게만, `귀의 음악`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연주자의, 온몸의, 최소한 분신의 음악은? `귀의 음악`은 `완성된` 연주를 듣지만, `온몸의 음악`은 `언제나 `해석=형상화`의 불완전성을 겪는다. 그것을 겪지 않은 사람은 귀가 먼 채 마음으로 자신의 연주를 들었던 베토벤 뿐이다. 혹시 그 경험이, 혹은 착각이 베토벤 만년의 치매작이자 걸작을 낳지 않았을까? 강은일은 음반을 만들고 다시 들어보니 처음에는 틀린 것만 들리더라, 그래서 잘 못 듣겠더라고 했다. 하긴, 나도 `읽는` 글쟁이가 아니라, `몸의 글쟁이`고, 20년 전 쓴 글들을 다시 읽다가 너무 창피하여 `창피한 힘`이 기진맥진될 때까지 1주일 동안 술만 퍼마신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는 그래도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힘으로 이제까지 연주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저런. 나는 그런 생각 전혀 안 드는데. 역시 글은 편지도 글이고 일기도 글이고 하다 못해 고지서도 글이지만, 그래서 `글쟁이`는 같은 글도 멋있게 표나게 중뿔나게 비비 꼬면서 써야 하고, 그래서 글은 글 쓰는 사람을 아무래도 찌들게 하는 쪽이지만, 음악은 아무래도 연주하는 사람의 피로조차 씻어주는 쪽인가…..저는 연습할 때 가끔 제가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어요…이거, 이거. 안되겠네….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그래서 그냥 정신과 상담 받는다고 생각하고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나왔거든요….강은일은 그렇게 말했고, 나는 `예술가들 하는 말이 조금만 엇나가면 정신분열증 환자와 구분이 안되죠.`하고 일단 선방(?)했지만, 이거, 이거, 내가 더 중증 정신분열 아닌가!
그리고, `강연` 혹은 `강습` 기회가 올 때마다 강은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눌변`과 `쭈볏쭈볏`을 내팽개치고, 교육에 열을 올렸는데, 그런 `무대꾼`이 없다. 지금부터 들려 드릴 곡은 산조에요, 19세기 말 생긴 장르예요, 그 전까지는 독주곡이 없었죠, 장단이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아세요, 모르세요?, 이렇게 하는 건데요, 하나 둘 셋, 둘둘셋, 셋둘셋, 넷둘셋…. 그는 신이 나서 아예 내 등짝에다 장단을 먹이더니, 그예 추임새까지 설명하고 시범 보이고 시킨다. 손을 드시고 무릎을 칩니다. 얼씨구-, 좋지-, 좋다-, 아암-, 그렇지-, 잘한다….산조는 계면조가 많다고 하는데, 계면조가 뭐냐면….제가 진도아리랑을 잠깐 불러볼 테니까, 여러분이 추임새를 하는 거예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어, 으, 어….산조는 판소리에서 나왔고, 청중이 가장 중요했어요, 1 청중, 2 고수, 3 명창이라 했어요, 관객과 무대가 떨어지지 않고, 같이 붙어 있던 거죠, 해금이란 악기는….고등학교 2학년 때 김용배한테 사물놀이를 처음 배우고, 사물놀이 대회에 나가 `앉은 반`(꽹과리, 장구, 북, 징) 부문 상도 받았으니 짐작할 만한 일이지만, 아니, 그런데, 해금 산조, 그러니까 `무반주 해금 소나타`도 추임새를 넣나?......설령 넣었더라도, 오래 넣지는 않았을 것 같다. 19세기 말 이후 얼마 안되어, 판소리나 민요가 조금 더 버텼을 뿐, 혹은 아직도 근근히 버티고 있을 뿐, `기악곡`은 일찌감치 장터를 떠나 연행장소를 무대로 옮겼고, 오늘날 국악 기악곡 공연에 추임새를 하는 공연문화는 찾기 힘들다. 대중화에 대한 강은일의 열의가 기악 추임새를 고집케 하는 것일 터다. 어쨌거나, 역시 국악은 청중들한테 이것저것 시키는게 되게 많네. 꼭 아랫 것들 시키듯이…난 질색이구만…하면서 80년대 초, 순전히 `문화운동적` 관심에서 민요연구회에 가입했다가 이것저것을 하도 극성 맞게, 근본적으로 연습시키길래 이러다가는 내 감성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100년 전 감성이 대신 들어서는 거 아닌가 싶어 찜찜해지고, 그는, 그도 실내가 환하고 청중 추임새가 시원찮아 시들해지는 듯 하더니, 고등학생 질문을 받고는 삽시간에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고등학생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놀라운 변신과 순발력과 집중력으로 내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연주하신 곡 중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작품`을 묻자, 직접 연주해주었는데, 직접 작곡하여 연습할 때 아들이 `엄마, 엄마 속은 분노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는지라 `분노`로 명명했다는 그 작품은 그의 말 마따나 `시끄럽고, 괴괴한 소리`로 가득 찼지만, 내가 듣기에, 시작부터 현악들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찢는 대담함에 있어서나, 그 긴장을 아주 오래 이어가는 뚝심, 그리고 긴장 자체의 뼈대화 과정에 있어서나 저 유명한 크로노스 4중주단 연주 앨범 중 조지 크럼 현대음악 <검은 천사들>의, 황량한 전쟁터를 급박하고 괴기스럽게 휩쓸고 지나가는 죽음의 천사 떼들 모습에 못지 않았다. 그렇다. 강은일에 의해, 강은일의 작곡과 연주에 의해 해금은 `현대성`에 달한다. 그런데, `현악들`? `4중주단`? 아니, `4중주`로나 가능한 것을 강은일은 해금 하나로?.....강은일 음악에 `크로스오버`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그게 칭찬인 줄 알고 쓴 것이라면 무식한 짓이고, 말 뜻을 제대로 알고 쓴 것이라면 음흉한 짓, 나쁜 짓이다. 크로스오버란 이를 테면 파바로티가 헐리우드 유행가를 부른다거나, 스팅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것,으로, 말 그대로 `널나듦`일 뿐, 예술과 대중화의 변증법과는 상관이 없다. 강은일을 보니 생각나는 것 또 하나. 강은일 같은 `국제적인` 해금 연주자를 지닌 이상, `산조`를 `sanjo`로, `판소리`를 `pansori`로, 국악 용어를 알파벳만 한글에서 영어로 바꿀게 아니라, 용어의 내용(혹은 분위기)을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산조`에 적합한 영어가 도저히 없다지만, 정말 그럴까, 음악이 세계언어라는 것은 상식인데, 그것은 국악현대화와 오히려 연관된 문제 아닐까, 우리는 많은 경우 `봉건적`과 `민족적`을 혼동하는 거 아닐까?
PS. 황석영(소설가)이, 국제문학포럼 참석 각국 문인들과 함께, 강은일과 한번 놀아보겠다 하여, 있는 돈 다 주고 돈 없으면 그냥 먹고 나오는, 그래서 계산서 볼 일 없는 술집 `소설`로 갔지만, 황석영은 포럼 강행군에 뻗었다는 소식이고, 자세히 보니강은일은 주홍보다 젊고, 다시 정신과 상담 운운하더니, 취기가 더운지 웃옷을 활짝 벗어 버리고, `건강한 여성`이 내 앞에 물씬했으나, `악기=몸` 속으로 사라질 외모와 표정이므로 괜한 생심을 지웠지만, 나는 평소의 `난낭구 패션`을 엄두 낼 수 없었다.
*이것은 문예진흥원에서 개최한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 2005년 1기 강좌 “시인 김정환과 함게 하는 `만남, 변화, 아름다움”’의 대담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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