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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聖杯)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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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聖杯)를 찾는 사람들

김민웅의 세상읽기 <75>

1922년과 23년 사이에 발표된 T. S. 엘리옷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는 1차대전을 겪은 이후의 서구 문명세계가 처한 극도의 정신적 방황과 그로 인한 절망적 현실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시대적 상황에 마주서서 시인은 생명의 부활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물은 것입니다.

영혼이 고갈되고 황폐해진 현실의 와중에서 엘리옷트의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고대 종교와 신화의 연구였습니다. 무수한 전쟁을 겪고 시련의 시기를 통과했던 고대인들의 마음속에 드리워졌던 희망의 빛줄기가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했던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옷트가 탐독한 책의 저자는 인류학자 제시 웨스튼(Jessie Weston)였습니다. 그녀의 경우, <제의에서 로망스로(From Ritual to Romance)>라는 책에서 성배(聖杯)전설과 관련, 어부왕(漁夫王)이라는 한 통치자가 황무지처럼 되어버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성배와 창이 있는 곳에 기사를 보내 신탁의 답변을 얻어오는 내용을 파헤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담았다고 하는 기독교의 성배에 대한 관심의 고대적 기원을 탐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성배는 여성을 의미하고, 창은 남성을 상징한다는 대목입니다.

또 한 사람, 엘리옷트의 시 황무지와 관련있는 연구자는 <황금가지(Golden Bough)>의 저자 프레이저입니다. 그의 경우, 풍요를 비는 제사의식에서 신은 봄이 되면 부활하여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므로 이 신을 땅에 파묻어 성대한 제사를 지내고 그 힘으로 곡식이 잘 익기를 바랐다는 전설을 주목합니다. 고대 이집트 등의 신화에 따르면, 왕은 곧 신이므로 그의 몸을 절단 내어 땅에 묻고는 이로써 생명의 죽음과 부활의 의식을 거행했다고 하는데 성배는 본래 이 왕의 머리를 얹어놓은 그릇이라는 설을 프레이저는 주장하게 됩니다.

신화 연구가 조셉 캄벨 역시 이러한 대목에서 켈트적 요소를 주목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러한 성배전설은 고대 켈트 족에게서도 발견되게 되는데, 왕의 죽음과 부활이나 불모의 땅에서 생명의 풍요를 비는 의식이 그리스도의 피, 그의 부활, 그리고 생명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교리와 결합되어 발전되어 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전설에서는 이 성배 의식을 집전하는 것이 여사제라는 것으로 해서 제시 웨스턴은 성배를 창과 대비하여 여성적 상징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연구를 깊이 주시한 엘리옷트는 죽음과 같은 황폐한 현실에 직면한 인간에게 요구되는 기사의 성배 찾기 이야기를 다시 펼쳐냅니다. 물론 그는 윤회와 재생의 사상까지 포괄하는 대단히 범위가 넓은 동양사상의 기초까지 탐색하지만, 그의 시 중심에는 지치고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갈급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성배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성배전설은 기원 6세기경 영국을 통일했다고 알려진 아더왕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역시 켈트적 전설이 기독교의 성배와 결합된 양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가만히 추적해보면, 창으로 상징된 격전(激戰)의 현실과, 이러한 시대적 고뇌를 위로하고 감싸 안는 여성적 성배의 존재가 주시됩니다. 창과 칼이 난무하면서 황무지처럼 고단해진 현실에서 결국 인간을 구하는 힘은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그 어떤 여성적 생명력이라는 실로 중대한 상징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의 변화를 매우 빠르게 거쳐 왔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격함과 쟁투 그리고 정신적 황폐함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정신이 매우 피로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그 불모의 현실을 부드러운 생명력으로 채울 성배를 찾아 헤맵니다. 창으로 격전의 세월을 치른 이후, 그만 지쳐버린 영혼들이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성배를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한 여성 지도자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한때 이 나라의 무서운 지도자로 군림했던 그의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점점 벗어나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그녀에게서 사람들은 곤고한 시대의 위로를 구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풍요를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 이 시대에 일종의 여사제처럼 떠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지식을 묻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의 정신적 온도를 느끼고자 합니다. 그녀가 진정 그럴 수 있다면 다행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배의 전설에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불모의 땅에 생명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피를 세상에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도자들의 거듭되는 배신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백성들은, 다름 아닌 자신을 보시물(報施物)로 내놓을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설의 내용처럼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백성들과 진심으로 나누라는 요청입니다. 감동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 들을 것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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