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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수경사령관 장태완을 요정으로 유인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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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두환, 수경사령관 장태완을 요정으로 유인한 뒤…

[박정희 권력의 DNA]<5> 하나회측 허허실실 전술

전두환이 보낸 돈 봉투, "형님, 김장에 보태 쓰십시오"

육사 11기인 전두환의 소위 임관이 1955년이고, 종합 11기인 장태완의 소위 임관이 1950년이니, 군 서열상 전두환은 장태완의 한참 후배다. 그러나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한 전두환이 그해 10.26 직후인 11월 수경사령관으로 부임한 장태완보다 권부 핵심에는 먼저 진입했다.

장태완에게 경례를 붙인 허화평이 자리에 앉아 전두환의 안부 인사를 전한다.

"저희 사령관께서 각별히 안부 인사를 여쭈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허화평은 흰 봉투 하나를 장태완에게 건넸다. 장태완은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었다.

"형님, 얼마 되지 않지만 집의 김장에 보태 쓰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전두환의 메모와 함께 100만원권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지금 화폐가치로 치면 아마 1000만원은 족히 넘을 것이다. 수표를 들여다보고 있는 장태완에게 허화평이 덧붙였다.

"저희 사령관께서 장 사령관님의 부임을 환영하는 술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십니다. 며칠 내로 허락되는 일시를 알아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전두환 하나회 집단의 12.12군사반란을 행동에 옮기기 위한 흉계인줄 장태완은 알 리가 없었다. 장태완은 비상계엄 아래서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데다 계엄사 서울분소장이라는, 경험에 없는 일까지 겸해야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였다. 사령부 본부의 참모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데 이어 경복궁 30경비단을 초도순시했다.

그는 윤필용 사건 직후인 1973년 4월부터 2년 3개월간이나 진종채 수경사령관 아래서 참모장을 지냈지만 특정지역인 30경비단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두 번째였다. 30경비단 초도순시에 이어 그는 33경비단 외곽진지에 올라가 김진영 단장의 안내로 청와대를 지키는 보초근무 태세를 점검했다.

이제 겨우 현황을 둘러보았으니 실질적 부대 장악을 위해 자신의 구상을 다듬어 병력과 장비의 재배치 및 운용계획을 하달해야 한다. 그는 전두환의 술자리 초대를 유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봉투에 관해서는 내가 직접 자네 사령관에게 얘기하겠네. 우리는 서로 협력할 사이고 서열로 보더라도 내 부임 파티는 부대 파악이 끝나면 내가 먼저 마련해야지, 말이 되는가?"

장태완은 전두환에게 부대 파악이 끝나는 대로 연락해 주겠노라는 뜻을 전하라며 허화평을 돌려보냈다.

허화평이 돌아간 뒤 장태완은 참모장 김기택 준장을 불렀다. 김기택은 육사 11기로 전두환과 동기생이지만 정치장교 사조직인 하나회엔 가담하지 않은 야전통이었다. 장태완은 그에게 수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보안사가 이렇게 돈이 많은가? 내 평생 이렇게 큰 수표는 받은 적도 줘본 적도 없네. 그러나 저쪽에서 보내준 것을 곧장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일이니 적당히 반환할 방법을 찾아보시오."

그러자 김기택은 부대 회식이 많은 연말이 다가왔음을 상기시켰다. 연말연시나 명절 때면 청와대 근위부대인 수경사에는 으레 대통령의 하사금이 내려왔다.

"내가 참모장을 할 때는 부대 창설 기념일 같은 때 대통령 각하께서 장병 1인당 닭 한 마리 꼴로 쳐서 300만~400만 원씩 주셨는데…."

그러나 당시는 최규하 대통령이 삼청동 총리공관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근위부대는 '주인'이 없는 상태였다. 장태완은 참모장 김기택에게 다시 일렀다.

"총장님과 장관님한테 가서 100만 원씩 얻어올 테니 이것까지 보태서 연말 특식에 쓰게 보관해두시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장병들에게 특식은 특히 보안사령관의 협조가 많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두 부대 간의 관계가 좋아지도록 합시다."
▲ 10.26 사건 후 수경사령관에 임명된 장태완 소장(오른쪽 찻잔 든 이)이 부임 나흘만인 79년 11월20일 청와대를 지키는 근위부대인 수경사 33경비단을 초도순시, 단장인 김진영 대령으로부터 부대현황을 브리핑받고 있다. 이로부터 3주후 일어난 12.12군사반란에서 장태완은 육군본부 지휘부의 진압군으로, 김진영은 반란군측 핵심 지휘관으로 갈라져 적대관계에 섰다.

전두환의 유인책에 걸린 세 육본 직할 부대장

그로부터 사흘 후인 8일 오후, 장태완 사령관의 집무실에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 대령이 들어섰다.

"오늘 보안사령관실에 인사하러 갔더니 전 사령관이 12일 저녁에 단합 만찬을 하자고 건의 드려보라고 합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님도 함께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수경사과 특전사, 그리고 육군본부 헌병단, 이들은 서울에서 육본이 실병이 필요할 때 직접 써먹을 수 있는 직할부대였다. 그 세 부대의 책임자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태완은 다른 것을 의심했다. 조홍은 육사 13기로 장군 진급 대상자였다. 장태완은 퍼뜩 진급 청탁을 위한 술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자네가 그걸 연락해? 자네 이번에 진급하겠다고 인사 다니나?"

조홍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진급 청탁이 아니라 군사반란을 거사하기 위한 계책이니 조홍으로서도 민감하게 대처했다. 장태완은 지난번 허화평도 왔다가고 해서 언젠가 한번 치러야 할 행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하나회 신군부집단이 가장 위협적인 인물로 본 수경사령관 장태완의 술집 유인작전은 일단 성공한다.

운명의 12월 12일, 행선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사령부를 나선 장태완은 차가 연희동 쪽으로 달리자 전속부관 천연우 대위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나? 전 장군 집으로 갈 것 같으면 사과라도 한 궤짝 사야 안 되겠는가?"
"아닙니다. 저기 연희동 고급주택가 안쪽에 있는 요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녁 7시 무렵, 전두환이 초대한 비밀요정에 도착한 장태완은 그 호화로움에 내심 놀랐다. '노는 물'이 다른 군부귀족 하나회 장교들의 행태와 그들을 총애해온 박정희 대통령에 생각이 미쳤다.

"종합이나 갑종장교들은 상상도 못할 이런 곳에 하나회 장교라고 거리낌 없이 출입하다니, 윗사람들이 후배들에게 고약한 버릇을 가르쳐 놓았군."

널찍한 정원이 잘 가꾸어진 2층 석조 한옥 저택에 들어서니 한복 차림의 원숙미 넘치는 중년여인이 손님을 맞았다. 먼저 온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육본 헌병감 김진기 준장,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 준장이 정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국일이 장태완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저희 사령관께서 갑자기 대통령 각하의 호출을 받아 가셨습니다. 늦어도 8시까지는 돌아오시겠다고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먼저 주연을 시작하라는 부탁이셨습니다."

그 시각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 재가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는 1차로 재가를 거부당하고 경복궁 30경비단에 돌아가 사후대책을 논의한 뒤 황영시 중장 등과 함께 재차 대통령을 면담하는 중이었다. 같은 시간,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에서는 합수부의 허삼수 · 우경윤 대령이 정 총장에게 동행을 요구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전화받은 김진기 "뭐, 뭐라고! 총장 공관에서 총격?"

우국일의 공손한 태도와 운치 있는 정원 분위기에 장태완은 잠시 느슨해졌다.

"뭐 서두를 거 있나.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서 화초 구경이나 하다가 전 장군이 오면 함께 시작하지."

그러나 전두환을 부하로 거느린 적이 있던 정병주는 퉁명스레 한마디 했다.

"전두환이 지가 늦게 오는 걸 우리가 기다릴 필요 있나. 들어갑시다."

방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 대령이 와 있는 것 아닌가.
장태완은 그에게 큰소리로 면박을 주었다.

"자네가 여길 왜 왔어? 진급됐다고 술을 한 턱 내려거든 돌아가 부대에서나 조촐하게 해, 이 사람아."

장태완은 직속부하인 헌병단장 조 대령이 보안사령관의 초대만찬에 와 있는 것을 보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조홍이 이 자리에 오는 것을 사전에 알지 못한 것이다. 며칠 전에도 조홍이 전두환의 만찬 연락을 하기에 야단친 일이 있다. 자신의 부하가 외부인사와 직거래하는 거동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락을 하는 것도 조홍의 직분에 맞지 않으려니와 직속상관의 동료 장성들이 한잔 하는 자리에 사전허락도 없이 동석한 행위가 주제 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요정의 미녀들 앞에서 상관에게 면박을 당한 조홍은 무안했으나 전두환의 밀명을 수행해야 하므로 어떻게든 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가 머뭇거리자 주위사람들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했다.

"수경사령관이 나오니 헌병단장이 직접 호위하는 것 아닙니까? 조 대령도 이번에 별을 달게 됐으니 함께 축하해줍시다."

조홍은 이날 오전 발표된 준장 진급자 명단에 들어 있었으나 장태완은 이 진급 발표가 탐탁지 않았다. 수경사 간부 중 자신이 우선순위로 꼽은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은 탈락하고 헌병단장인 조홍이 진급했기 때문이다. 박 대령이 육사 14기로 조 대령보다 1기 후배이기는 하지만 특과병과인 헌병은 전투병과인 보병보다 진급이 늦은 것이 통례다.

장 사령관은 조 대령이 진급한 것도 하나회 계열과 직거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진급에서 보안사령관의 입김은 거의 절대적이었고, 그 다음으로 총장과 심사위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풍토였는데, 이때 정승화 총장을 제외하고는 힘쓰는 자리가 대부분 하나회로 채워져 있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하나회 보스임은 다 아는 사실이며, 심사위원장을 맡은 차규헌 중장도 하나회 후원자로 널리 알려진 터였다.

장태완 등 육본 정규지휘계통의 핵심 장성들은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 준장 등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날의 호스트인 전두환을 기다렸다. 하지만 전두환이 나타날 리 만무했다. 그러던 중 마담이 들어와 김진기 헌병감의 귀에 대고 부관의 전화를 받으라며 속삭였다. 밖으로 나가 부관의 전화를 받은 김진기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 뭐라고! 총장 공관에서 총격? 그래, 총장님은 어떻게 됐나?"

총장 공관에서 총격사고가 일어났다는 김진기의 말에 장태완과 정병주는 두어 잔째 마시려던 술잔을 놓고 벌떡 일어섰다. 때는 계엄 상황이고 자신들이 바로 계엄사의 가장 중요한 대비병력 지휘관 아닌가.

세 장성의 머리에는 똑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오랜만의 보안사 측 연락도 이상하다. 더구나 전두환이 초대한 술자리인데 그의 심복들인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은 없지 않은가. 거기에 총장 공관 총격사고라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세 사람은 황급히 부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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