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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어찌할 것인가?

한국역사연구회와 함께 하는 '역사시평' <8>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현판을 떼고 새로 달겠다는 문화재청의 방침을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문화재청 방침은 광화문을 복원하는 맥락에서 우선 현판을 바꾸겠다는 것이며, 정조의 글씨를 집자하겠다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대해 여러 갈래에서 반대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반대 의견이 하도 분분하여 하나하나 짚기가 어려우나, 그 요점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사진1>

첫째, 굳이 이 시점에서 왜 현판만 교체하나?
이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부정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둘째, 하필이면 왜 정조의 글씨를 집자한다는 것인가?
노대통령을 정조에 비견하려는 의도 아닌가?

셋째, 한글을 왜 한자로 바꾸려 하는가?
한글 사랑에 위배되는 조치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문화재청장이 직접 나서서, 광화문 복원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사업으로서 광복 60주년 기념행사를 경복궁에서 하게 되어 있으므로 우선 현판을 바꾸려는 것이며, 굳이 정조 글씨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는 안과 현존 서예가의 글씨를 받는 안과 함께 검토 대상의 한가지일 뿐이며, 한글을 한자로 바꾸려는 것은 현재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조화를 맞추어 원형대로 되돌리려는 것일 따름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식을 줄 모르고, 엉뚱하게도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반대라는 정치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 요사이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공방에 뛰어들어 어느 한 편을 두둔하거나 공박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하지만 궁궐을 연구하는 처지에서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자문에 쫓겨 문제의 근원과 해결 방향이 무엇인가 급하게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찬찬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광화문이 문화재인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문화재란 무엇인가?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자면, 문화재란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되어야 하며, 유형문화재나 기념물 등으로 지정된 것을 말한다.

그런데 현 광화문이 과연 그러한가? 우선 행정적으로 말하자면 현 광화문은 유형문화재나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지정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현 광화문을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아무리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그러기는 어렵다. 역사적 가치가 있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야 한다. 1968년에 세워진 것을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철근 콘크리이트로 목조 건물을 흉내 내어 지은 것을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할 수 있나?

당시의 어려운 사정에서 공학적인 기술을 발휘하였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광화문”은 조선 태조 연간 경복궁을 지을 때 지었으나, 이름은 한 세대쯤 지난 세종 8년에 가서 처음 지어졌다. 경복궁의 정문으로서 얼굴 노릇을 하던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가 270여년이나 지난 고종 초년 경복궁 중건과 함께 다시 지어졌다.

고종 2년 6월 광화문의 상량문을 지은 사람은 판중추부사 이유원(李裕元), 상량문 글씨를 쓴 사람은 대호군 신석희(申錫禧), 그리고 현판 글씨를 쓴사람은 임태영(任泰瑛)이었다.

임태영은 당시 실력자 흥선대원군의 측근 무장으로서 영건도감에서 활약하던 인물이었다. 광화문은 일제가 경복궁에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수난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로서는 경복궁을 가리고 조선왕조를 부정하기 위하여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터에 그 앞에다 광화문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예 헐어 없애려 하였으나 반대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경복궁 궁장의 동북쪽, 현재 민속박물관의 입구로 쓰이는 자리로 옮겼다. 그렇게 유배가 있던 광화문은 한국전쟁 때 미군기의 폭격을 맞아 문루는 모두 없어지고 그 밑의 육축만 허물어지다 만채로 남게 되었다.

사진2) 한국전쟁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광화문

광화문이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은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광화문은 목조가 아닌 철근 콘크리트로, 경복궁 전체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닌 중앙청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청사의 중심축에 맞추어, 본디 제자리보다 14.5미터 정도 뒤로 물려서, 바닥 지면 높이도 1미터 이상 높게,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된 한글 편액을 달고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뒤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조선총독부 청사를 덜컥 헐어 없애자 광화문만 덩그라니 매우 어색한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이다.

광화문은 제자리로 되돌린 것 자체는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이토록 어색하게 뭣 한 가지 제대로 들어맞는 바 없이 지은 것을 가리켜 문화재 복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시 여건과 분위기에서는 통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그로부터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그 발전을 추구하는 견지에서는 참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문화재를 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가짐, 그것을 다루는 자세와 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현안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인 견지에서 해법을 찾아보자.

우선 하필 왜 지금 편액만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러한 안이 문화재청에서 갑자기 불쑥 내민 것이 아니라 공청회를 거치고 문화재위원회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라면 부지런히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단, 홍보가 부족하여 국민적 공감을 얻는 데 부족하였다면 이제라도 홍보와 설득에 겸허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꼭 정조의 글씨를 집자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재청에서도 딱히 정조 글씨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니, 좀더 타당하고 가능한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알려져 있는 광화문 옛 사진이 꽤 여럿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 모두 편액 부분은 어두워서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光化門” 글씨가 선명한 사진을 힘써 찾아보아서, 만약 그런 사진을 찾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복각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 아닌가 판단된다. 그랬다가 몇 년 뒤에 광화문을 제대로 복원할 때 가서 우리 시대의 대가의 글씨를 받아 새로 현판을 만들어 달면 될 것이다.

만약 “光化門” 글씨가 선명한 사진을 끝내 찾지 못한다면, 집자를 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것이다. 단, 집자를 하더라도 돈화문, 홍화문, 인화문, 흥화문 등 다른 궁궐 정문의 편액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化門”을 취하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光”자만 집자하면 반대 의견을 가진 분들을 설득하는 데도 힘을 얻고, 일도 한결 수월하지 않겠는가?

광화문 현판에 한글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광화문을 복원하는 것과는 배치되는 생각이다. 그것은 현상을 고집하는 것이거나, 원래 모습이 아닌 오늘날의 감각에 맞는 새로운 형태로 바꾸자는 주장으로서 전혀 입론의 근거와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광화문에서 시야를 넓혀 경복궁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포함하여 논의해야 한다.

조선왕조의 법궁 경복궁을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것이 문화재청에서 벌써 몇 년을 추진해온 정책인 바, 그 방향 자체를 포기하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수용하기 곤란한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광화문 현판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는 광화문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 광화문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는 경복궁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경복궁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광화문 이내로 국한되지 않는다. 광화문 앞, 옛 육조거리를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넓혀질 수밖에 없다.

현재 거액의 예산을 들여 경복궁을 복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가 과연 복원인가? 그 공사의 결과물이 과연 문화재인가? 충분한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것이 문화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글쎄 하며 외로 꼬게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원 공사들은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방식에 머물러 있거나,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복원이란 무엇인가? 원형을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복원을 위해서는 우선 원형이 어떠했는가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원형이란 것이 고정불변이 아니다. 시기에 따라서 변해 왔다. 하지만 적어도 문화재라면 해방 이후의 것을 원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선왕조의 궁궐이라면 그것이 살아있던 시기, 다시 말해서 그곳에 왕과 왕실, 관원들과 수많은 일꾼들이 살며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이라야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점은 아무리 늦어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이전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 시기의 모습을 알려주는 자료는 복원을 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럴수록 꼼꼼히 조사하고 연구해야 하나, 지금 과연 조사와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 아무리 자료가 넉넉하고 조사와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진다고 해서 복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 공법과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오랜 시간 솜씨와 열정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우리 시대의 작품이 만들어질 것이며, 지금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야 훗날 문화재가 될 것이다.

모모 건설회사의 인부들이 전동 공구를 가지고 예산과 공기에 맞추어 만들어내는 건조물은 우리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그 회사들의 제품일 따름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별반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훗날에도 필경 그럴 것이다. 그것을 복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어려운 복원을 왜 하는가? 단지 옛 모습을 되돌리려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복원은 단순히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옛날로 돌아갈 수도 없다. 복원은 오늘의 일이요, 복원의 결과물은 이 시대가 책임져야 한다.

복원한 궁궐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른바 문화 산업에서 필요한 상업주의적 활용의 소재로 쓰기 위해서라면 굳이 어렵게 복원할 필요가 없다. 별도의 세트를 만들어도 될 일이다.

복원은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으로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결과물은 그것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소재로서 활용될 때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대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해서 이렇듯 큰 관심을 갖고 있었나 새삼 놀라게 된다.

문화재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깊이 있게 검토하고, 중지를 모으고, 전체 여론을 수렴해 나아가는 노력을 더욱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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