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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재규의 신병을 인수한 전두환 보안사는…

[박정희 권력의 DNA]<3> 10.26 합수부장 전두환의 힘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은 박정희의 사망을 10.26 사건이 발생한 후 불과 3시간 만에 포착했다. 엄청난 사건이 불의에 터진 상황에서도 전두환은 치밀하고 냉철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 준장으로부터 '박정희 사망'을 카폰으로 보고받자마자 사령부로 들어가 상황 파악을 했으나 정보가 매우 제한돼 있었다. 11시경 육군본부 보안부대로부터 국방부 회의실에 국무위원들이 모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는 국방부로 향했다.

당시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와 함께 가장 조직적인 위기관리 촉각을 키워 준 집단이 보안사였다. 그 보안사 수장으로서 우연찮은 기회를 잡은 덕도 있지만 정치장교 전두환의 정세파악 후각은 남달랐다.

5.16쿠데타에 깊숙이 관여… 육사생도 지지시위 이끌어내
30대 장교 때 박정희 최고회의 비서실, 중정 인사과장 근무


그는 이미 5.16쿠데타 당시 국내 여론층과 미국의 반대 태도를 바꾸는데 결정적 단서가 된 육사생도의 지지행진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쿠데타에 반대 입장이던 육사교장 강영훈을 박정희에게 밀고해 구금시킨 뒤 육사생도의 시가행진이 가능해졌다.

그런 공으로 대위 전두환은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의 비서실 요원으로 들어간다. 이어 중앙정보부 창설과 함께 그 인사과장으로 파견됐다. 전두환은 30대의 젊은 장교 때 이렇게 5.16쿠데타 속에서 훈련받은 정치장교였다. 전두환이 초급장교 때부터 5.16쿠데타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이때 육사 11기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의 창설자들인 노태우는 방첩대 내사과장으로, 그리고 박정희가 사단장 때부터 전속부관인 손영길은 최고회의의장 비서관으로 일했다.

박정희는 1963년 이른바 민정이양으로 군복을 벗고 정치권에 본격 들어가기 직전인 62년 12월, 전두환에게 국회의원 출마 준비를 주문했다. 이때 5.16쿠데타 주체세력 중 차지철 대위도 군복을 벗고 경기 이천에서 출마해 당선된다. 그러나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지역기반이 약하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사양했다.

"각하, 군에도 충성스런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정희는 전두환의 이 말에 머릿속에서 번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 군부 내에 측근 친위대가 필요하지 … 박정희는 더 이상 전두환에게 일찍 정치권에 들어갈 것을 권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전두환은 박정희의 군내 친위대로 본격 육성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의 행보는 그 때 박정희에게 했던 말 "군내에 남아 있어야 할 충성스런 친위대"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충성의 대상인 보스 박정희 피격에 대한 법치적 사법처리를 훨씬 넘어선 징벌과 보복 성격이었음이 드러난다.
▲박정희 정권이 말기에 들어선 1976년12월 경호실장 차지철은 군 장성들을 경호실에 거느리면서 위상을 과시했다. 가운데가 차지철, 그의 우측 두 번째가 작전차장보 전두환 준장.

10.26군사재판, 전두환 합수부가 조정한 '쪽지재판'
김재규 사형 판결 사흘만에 처형…민심동요 소지 없애


79년 12월4일부터 시작된 10.26 군사재판은 국가안보 기밀을 이유로 비공개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재판정 옆방에서 전두환 합수부 팀이 재판부에 메모지를 보내 조정하는 꼭두각시 재판이었다. 그래서 세계의 이목까지 집중된 채 역사적 평가를 기록해야 할 법정은 '쪽지 재판'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런 재판으로 김재규는 80년 5월21일 사형이 확정되자마자 불과 사흘 후인 5월24일 전격적으로 처형되고 만다. 그렇게 전광석화와도 같이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한 이유는 민심 폭발의 대상이 될 소지를 없애야 했고 또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의 구명운동 가능성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쪽에서 정치범으로 규정하면 사후 처리가 골치 아파질 것을 알고 사전에 정리해 버린 것이다. 더구나 광주 시민항쟁이 발화하고 이에 대한 살상진압이 자행되던 와중이어서 김재규 처형은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는 군 지휘관으로서도 청와대를 지키는 수경사 30경비단 단장과 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두루 거치면서 야전보다는 서울에서 정치 감각을 익혀왔다. 그가 10.26 후 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전형적인 정치군인의 경험 덕이었다.

초동수사 보고서를 보니 사건 현장에 당시 한국의 권력 기둥이 다 모여 있지 않은가. 대통령 박정희,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청와대 비서실장 김계원,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 여기서 일이 터진 것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힘을 쓸 만한 실력자들이 함께 있었다. 거기서 빠진 한 사람의 권력자가 전두환인 셈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박정희와 차지철은 죽었다. 김재규가 범인이고 김계원도 현장에서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 권력자들에 대한 사건 수사 자체가 힘의 행사였다. 전두환의 파워는 범죄사건 수사권을 내세워 다른 권력기관들을 모두 평정하는데서 발휘되기 시작한다.

10월26일 자정이 가까운 무렵, 국방부 회의실.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박정희의 시신을 확인한 국무위원들이 모여 비상국무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국방부장관실에 국무총리 최규하와 국방장관 노재현, 청와대 비서실장 김계원과 사건의 장본인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함께 있다. 최규하는 김재규에게 비상국무회의가 열리면 상황 설명과 향후 대처에 대해 설명할 것을 요청했다.

김계원은 일이 잘못 돌아간다고 느끼고 조속하게 정리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김재규의 눈길 때문에 행동이 부자유스러웠다고 나중에 군사법정에서 진술했다.

김계원, 국방장관과 육참총장에게 김재규 체포를 요청

김계원은 화장실에 가는 척 하고 장관실 옆의 보좌관실로 빠져 나왔다. 장관 보좌관 조익래 준장에게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조용히 불러달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국방장관 노재현과 육참총장 정승화가 한 사람씩 나타났다. 김계원은 이들에게 처음으로 사건 현장의 진상과 함께 대통령 살해범이 김재규라고 입을 뗀다.

△김계원 = … 각하를 시해한 범인은 김재규 부장이오. 술자리서 권총으로 …
△노재현 = 아니 정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

정승화는 몇 시간 전 일이 생각났지만 도무지 무어가 무언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 불러서 갔다가 기다리는 중 헐레벌떡 달려 온 그가 엄지손가락을 아래쪽으로 가리키면서 비상상황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쓰러졌다는 표시였다. 김재규는 자기 승용차에 정승화와 함께 타면서 안보상황을 체크해야 한다고 했다. 삼일고가에 이르렀을 때 기사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부(중앙정보부)로 가실까요?"

이때 정승화는 비상상황이라면 육본 벙커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니, 육본 벙커로 갑시다."

김재규와 정승화를 태운 승용차가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들어갔다면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다. 당시 중정은 보안사보다 훨씬 정예화된 정보망과 비상상황에 대비해 가동할 수 있는 동원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재규의 운명은 삼일고가 갈림길에서 중정이 위치한 남산 쪽으로 좌회전하지 않고 삼각지 육본 벙커 쪽으로 우회전함으로써 판가름났다.

정승화가 잠깐 뒤돌아보는 사이 김계원의 말이 이어졌다.

△김계원 = 김재규는 지금도 무기를 소지하고 있어요. 여기서 체포해야 할 텐데, 서툴게 해서 소란이 일어나면 문제가 커지니까 …. 군인 몇을 불러 조용히 밖에서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것처럼 유인해 내서 더 이상 사고가 안 나게 체포하도록, 잘 조치를 해야 하겠어요.

계엄령 선포 전 민간인 중정부장을 군 헌병과 보안사가 체포
육참총장 정승화, 전두환과 헌병감에 김재규 체포작전 지시


당시는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장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다. 법적으로 한다면 당연히 군 수사기관이 민간인을 체포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검찰과 경찰에 맡겨야 할 사안이었다. 대통령 살해범이니까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직무상 체포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김계원은 권력의 위상으로 보아서 워낙 막강한 중앙정보부장을 체포할 수 있는 힘은 군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노재현과 정승화도 이 점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대통령 살해범이라는 말에 법적 절차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법치 질서가 깨지고 물리적 힘이 통치수단으로 등장한다는 징표이기도 했다.

김계원의 진상 설명을 들은 노재현과 정승화는 그 자리에서 김재규 체포와 수사 절차를 논의했다.

△노재현 = 체포는 육본 헌병대가 맡아야 되지 않겠소? 지금 범인이 위치한 곳이 군 관할지역이기도 하고 …
△정승화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체포한 뒤 신병처리와 수사는 어떻게…? 헌병대에서 수사를 맡기는 좀 부적절하지 않겠습니까.
△노재현 = 수사와 사법처리 절차는 보안사가 해야겠지.

육참총장에게는 보안사를 지휘할 권한이 없다. '국군보안사'로서 국방장관과 대통령에게만 예속된 직속 기관이었다. 노재현은 보좌관 조익래를 시켜 전두환에게 김재규 체포와 수사 건에 대해 육참총장의 지시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이때 전두환은 육본 보안부대에 상황실을 차리고 정세파악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장관실 바깥의 접견실에 앉아 최규하 국무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의 회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이때 국방장관 보좌관이 그에게 다가 와 "정승화 총장에게 가 김재규 체포를 도우라"는 노재현의 지시를 전했다.

한편 정승화는 육본 벙커 총장실로 헌병감 김진기 준장을 불렀다. 김진기는 육사 출신이 아닌 갑종6기로 헌병에서 잔뼈가 굵은 정승화 계 간부였다. 정승화는 김진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 시해범은 중정부장 김재규요. 지금 즉시 헌병 무력을 써서 김재규를 체포하시오."

김진기도 처음엔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안 돼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진상을 알고는 정승화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권총과 실탄을 갖고 있으니 유능한 무도 유단자와 수사관을 동원해서 각별히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하겠소."

정승화는 작전명령을 하달하듯 긴박한 어조로 말했다.
뒤이어 전두환이 정승화 앞에 들어섰다.

"총장님, 부르셨습니까?"

정승화는 다시 두 사람에게 김재규 체포작전을 지시했다. 그때만 해도 정승화는 12월12일 전두환 합수부가 자신에게 가할 총격 체포작전을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헌병감이 김 부장을 만나 내가 여기 벙커 총장실에서 할 얘기가 있다고 끌어내시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복도와 출입문에 헌병들을 증강 배치하고 그를 데리고 나와 조용히 체포하시오. 체포한 뒤에는 전 사령관이 인수해 보안사에서 수사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오."

김진기는 헌병 특수부대 1개분대를 차출했다. 이어 몸집이 커 완력이 좋고 무술이 뛰어난 육본 헌병 중대장 이기덕 대위를 불렀다. 그는 이기덕에게도 진상을 이해하도록 사전에 설명을 해야 했다. 체포 후 압송 등에 필요한 승용차와 장비들은 보안사에서 동원했다. 한편 전두환은 김재규를 인수해 올 책임자로 보안처 군사정보과장 오일랑 중령을 지명했다.

헌병감 김진기는 이기덕 대위와 오일랑 중령을 데리고 국방부 장관실로 갔다. 그는 작전 시나리오대로 장관 보좌관 조익래 준장에게 김재규를 불러내도록 부탁했다. 조익래는 장관실 옆의 회의실 소파에 앉아 있는 김재규에게 다가갔다.

"육참총장님께서 잠깐 뵙자고 합니다. 지금 밖에 총장 비서실장이 와 있습니다."

김재규는 "아, 그래"하며 별 의심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에 나온 김재규에게 헌병감 김진기는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육참총장 비서실장입니다. 총장님이 지금 벙커에 계시는데 조용히 뵙자고 하십니다."

김진기는 그의 기색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지하 비밀통로로 나가는 출입문을 열었다. 김진기는 헌병중대장 이기덕 대위와 보안사의 오일랑 중령이 호위하는 가운데 김재규를 안내했다. 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헌병들이 서 있는 통로를 지나 국방부 청사 후문으로 나왔다. 후문에는 승용차 3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진기가 가운데 승용차의 뒷문을 열었다.

"타시지요."

이때 김재규는 황황한 김에 따라나서기는 했으나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생각보다 멀리 이동하는데다 동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낯설었다. 그는 승용차에 탈 생각을 하지 않고 "박 대령은 어디 갔지?"라며 두리번거렸다. 수행비서인 박흥주 대령(육사18기, 10.26군사재판 후 처형)을 찾는 것이다. 체포조는 가슴이 섬뜩했다.

순간 몸집 큰 이기덕 대위가 김재규 부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대위은 점프한 힘으로 그의 허리를 잡아 승용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어 오일랑은 차 안에서 김재규의 권총을 뒤져냈다. 압송차량은 보안사 서소문 분실로 달렸다. 자동차의 시계는 거의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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