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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해적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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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해적의 지도

김민웅의 세상읽기 <41>

어떤 늙은 해적이 보물이 숨겨진 지도를 남기고 죽게 됩니다. 그 지도를 우연히 손에 넣은 소년과 그의 친구들은 길을 떠나고, 이를 알게 된 다른 해적의 무리들이 뒤쫓아 와 서로 간에 추격과 도망, 그리고 격전이 벌어집니다. 그러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소년은 보물섬을 찾아 목적했던 바를 이루게 됩니다. 이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보물섬> 줄거리입니다.

19세기 중엽, 영국은 해상을 지배하는 국가로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해적”의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영국의 해적은 적어도 영국 여왕에게는 충성을 바쳤고 그런 연유로 해서 영국은 바다에서 정규 해군병력 이외에도 이들 해적의 위세로 인한 힘을 함께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여왕은 그래서 이들 해적을 보호하라는 명령까지 내리기조차 했습니다.

이 시기, 영국에서는 이들 해적과 관련해 온갖 전설 같은 소문이 떠돌았고, 스티븐슨의 <보물섬> 이야기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영국 신사”라고 하면 당대 최고의 지성과 품격을 지닌 존재처럼 선전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해적의 역사”가 동시에 있었고 사실 “대영제국”으로 압축되는 영국의 제국주의는 “신사의 얼굴을 한 해적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지성과 품격을 갖춘 지킬 박사는 실로 당대의 영국 신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였습니다. 그의 양심은 지고지순했고, 인류의 미래가 선하게 되기를 바라는 열정 또한 특별했습니다. 그는 과학의 힘을 믿었고 그래서 인간에게 내재한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기만 한다면 악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길은 열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정신병동의 환자나 죄수들을 실험대상으로 하려 했지만 그의 계획이 무모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긴 사회의 반대에 직면하자 지킬은 결국 자기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을 것을 결단하게 됩니다. 그의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성공의 의미는 자신도 몰랐던 지킬 내부의 악한 본성으로 뭉쳐진 하이드가 그 모습을 드러내어 분리되어 나왔다는 점에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하이드를 지킬이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 둘은 동일한 인물이었고 하나의 육신 안에 동거하는 두 영혼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하이드는 지킬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지킬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실험을 했던 지킬 박사의 비극이었습니다.

분리가 되면, 자동적으로 악은 소멸할 것으로 보았지만, 선과 섞인 채로 동거하면서 순간 순간 견제와 통제를 받고 있던 악은 분리된 순간, 자신의 괴력을 온통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지킬은 선이 악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여기고 악을 떼어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킬 박사가 꿈꾸었던 세계는 선한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은 악이란 과학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을 끊임없이 키워 이겨내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 힘을 잃어가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악은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는 가운데 선의 능력으로 돌파해나가야 그 영혼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아까의 그 <보물섬>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입니다. 그가 영국 제국주의의 이중적 면모까지 내다보고 이런 작품을 내놓았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악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과 사회가 어떤 비극에 직면하게 되는가에 대한 경고는 하려 했을 것입니다. 과학문명의 발전이 선한 사회로 우리를 진보하게 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려 했다고 보겠습니다.

최근, 현대사의 굴곡 어린 고비마다 있었던 사건의 문서가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직ㆍ간접적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거나 또는 더 이상의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악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지목받지 않기 위한 처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자신과 분리하면 자신의 선은 보장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 모두 용기를 내고 직면하지 않고서는 우리를 계속 시달리게 하고 괴롭힐 수 있습니다. 지킬과 하이드의 두 모습을 가진 우리 역사 속의 진상을 솔직하게 직시하고, 거기에서부터 하이드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보물섬”을 찾아 나서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비록 어떤 늙은 해적이 남긴 지도를 가지고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말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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