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현행 보도논조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보수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내부 지적이 제기됐다. MBC의 일부 중진급 기자들은 23일 오전 MBC 보도국 게시판에 이같은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도국 간부진들의 맹성을 촉구했다.
***"MBC 보도, 정치권에 휘둘려 '좌충우돌' 양상"**
지난 81년부터 87년 사이 입사한 경력 18년∼24년차 중진기자 11명은 23일 오전 보도국 게시판에 올린 성명서를 통해 "미미하나마 군사독재시절에도 추구됐던 민주지향적 개혁성이 홀대된 지 오래"라며 "그러다 보니 시대가 바뀌고, 시청자들이 변하고, 정치상황이 달라졌는데도 MBC 뉴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모두 노조전임 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보도국·보도제작국 등에서 차장·부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성명에서 "(현재의) MBC뉴스는 시대역행적인 보수화와 냉전지향적이고 반개혁적인 기득권 보호의 편향성이 노정돼 있고, 더군다나 상명하달식의 작위적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기자들은 1등 의식을 잃어가고 있고, 당연히 사회적 영항력도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이같은 일이 일어난 원인은 보도책임자들, 특히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 항상 아랫목과 양지만을 지향해온 인사들이 보도의 방향과 인사를 좌지우지해 왔기 때문"이라며 "그 결과 편집회의에서 내부비판은 물론 최소한의 토론도 발붙일 자리가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또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현실과 원인을 정확히 바라보고 겸허히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87년 방송민주화 추진 당시와 노조창립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보도국의 한 중진기자는 "MBC 뉴스는 시청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점차 그 위상이 시중 방송사의 하나로 전락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려 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좋은 게 좋다'는 가족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 풍토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결국 MBC의 위상 추락은 △사원들의 책임의식 결여 △그에 따른 부문별, 장르별 경쟁력 저하 △경영진의 무능과 전망 부재, 통합·조정 능력 상실이 복합적으로 얽힌 탓"이라고 덧붙였다.
보도제작국의 한 간부급 기자는 "MBC 뉴스가 '노빠방송' 소리를 듣다가 최근에는 방향성 없이 정부비판에 나서는 등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은 철학 부재의 간부진들이 '양지'만 지향하며 보신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간부진들은 이같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철저히 자기 반성을 해야 하며, 기자들 또한 내부 토론을 통해 MBC 뉴스를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언론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젊은 기자들도 "보도논조, 전반적으로 보수화" 공감**
이에 앞서 85년 입사자(차장급) 이후 보도국 기자들도 최근 MBC 기자협회장의 제안에 따라 기수별 모임을 갖고 침체국면에 빠진 MBC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젊은 기자들은 기수별 모임에서 보수화된 보도논조를 주로 성토하면서 보도국 간부들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일선기자들의 고민 없는 보도태도를 지적하는 등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전했다.
이번 모임을 통해 논의된 사안들은 각 기수별로 정리, 보도국 게시판을 통해 공시하는 방식으로 보도본부장 이하 보도국 간부들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져 MBC측의 추후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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