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자국 신문·방송사들의 이라크 침공 지지에 환멸을 느끼고 영국 BBC와 <가디언>지 등 영국 언론으로 눈길을 돌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가디언> 온라인 독자 40% 미국인, BBC 시청률도 '껑충'**
크리스천 크리스텐센(Christian Christensen) 터키 이스탄불 바체세히르대학 교수는 <브리티시 저널리즘 리뷰>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가디언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이 신문의 온라인 독자 40%가 미국인이고, 또 미국 공영방송 PBS를 통해 방송되는 BBC 월드뉴스 시청자가 이라크전 개전 1주일 동안 30%가 늘어났다"며 "BBC 웹사이트 역시 단순히 게시판과 채팅방 방문 기록만 훑어봐도 미국인 방문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천 교수는 미국 출신으로 영국과 스웨덴에서 산 적이 있으며, 주 연구분야는 국제보도와 매체 경제학이다. 이 글은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미디어 월드와이드> 11월호에도 번역본 전문이 실려 있다.
크리스천 교수는 이처럼 미국인들이 자국언론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언론과 군부의 유착관계에 더해 미국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극도의 상업주의와 국수주의가 이라크전과 관련한 객관적이고 편향되지 않은 정보 습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이같은 현상은 워낙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에 관련 연구자료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는 않지만 영국언론으로 눈길을 돌린 미국인들은 대체로 진보적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대학교육을 받은 민주당 지지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다시 말해 부시 대통령을 싫어하고 이라크에 대한 무력행사를 애초부터 반대한 사람들"이라고 분류했다.
이러한 분석은 지난 10월 13일 그레그 다이크 전 BBC 사장의 한국방문 강연회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다이크 전 사장은 "이라크전과 관련해 미국 언론들은 공정한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며 "이로 인해 많은 미국인들은 더 균형 잡힌 보도를 접하기 위해 BBC에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BBC 라디오와 TV 시청률이 크게 오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주류 언론, 변화 거부하면 수용자 심판 받게 될 것"**
크리스천 교수는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언론에 실망하는 이유는 전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가 아니라 언론 매체 대부분이 명확한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고 비판 없는 보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이에 대한 예로 △부시정권이 이라크 재건사업권을 체니 부통령이 중역으로 근무했던 핼리버턴사에 준 것에 대해 미국언론이 침묵한 점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언론의 대표 앵커인 CBS뉴스 댄 래더가 '미국인이라면 당연히 미군 편에 서야 한다'는 말을 한 것에 대해 미국언론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그는 또 미국인들이 자국 언론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 데에는 "폭스TV의 탓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폭스TV는 마치 소란스럽게 런던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미국 여행객을 방불케 한다"며 "(그들은) 잘못된 점을 사과할 줄고 모르고, 무조건적인 국수주의 성향을 드러내며 CNN은 물론 많은 미국언론에 '추한 미국인'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대로 영국언론은 이같은 상황에서 도박판에 담갔던 발을 빼고 공격적이고 개방적이며 수준 있는 현장 취재와 보도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BBC의 팀 세바스찬이나 제레미 팩스먼 같은 뉴스앵커들이 미국 정치인들과 군 관계자들을 불러 놓고 이마에 식은땀이 나도록 질문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가디언>과 관련해서는 "<가디언> 기사를 보고 이 신문이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헷갈려 할 독자는 아무도 없다"며 "대신 (전쟁 반대) 입장 표명은 치밀한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기사를 통해 제시되고 있고, 여기에 미국인들은 자국 언론에서 불가능한 '다른 시각'을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천 교수는 글 끝에서 "지금의 영국언론 선호 현상은 '성가대원들을 향한 전도' 수준으로 보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라며 "하지만 미국 주류 언론들이 구태를 끌어안고 변화를 거부한다면 그동안 미국언론을 살찌웠던 '사상의 자유시장' 논리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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