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타자(他者)와 더불어 살기를 배워야 할 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타자(他者)와 더불어 살기를 배워야 할 때

<기고>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에 부쳐

우리 사회는 지금 다시 한번 역사의 기억을 둘러싼 내전(civil war)에 휩쓸리고 있다. 이 전쟁의 포화는 2년 전 검정을 통과한 4개 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보이는 김영삼ㆍ김대중 두 정권에 대한 기술이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금성출판사가 펴낸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에 십자포화의 포연이 자욱하다. 한국근현대사를 사회과 선택과목으로 정한 고등학교의 절반 이상이 택한 이 교과서의 현대사 기술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친북ㆍ반미ㆍ반재벌적 관점"으로 가득 차 있는지 여부가 화두이다.

필자는 검정위원으로 이 내전의 유탄을 맞은 적이 있다. 논란의 한 당사자로서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푸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며 문제의 자초지종과 나름의 생각을 밝혀 보려 한다. 교과서 문제는 김영삼 정권 때인 1997년 12월에 만들어진 7차 교육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고시하는 <교육과정>과 별도 지침인 <국사교육 내용 전개의 준거안>에 준해 쓰여진 6개 출판사의 교과서가 검정을 거쳐 2003년부터 교육현장에서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교과서는 성경(聖經)인가? 우리사회는 교과서의 진리성과 표준성을 믿어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신성시 해왔다. 전체주의 사회는 모두가 한 곳을 보고 한 목소리로 말하길 원한다. 다원화된 시민사회는 나와 다른 곳을 보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타자와 더불어 살기를 꿈꾼다. 국정교과서보다 검인정 교과서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오늘의 시민사회에 더 잘 맞는다. 때문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검정교과서로 정한 7차 교육과정을 만든 이들의 판단은 옳다.

역사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지 다가오는 미래에 무엇을 꿈꿀 것인지를 고민하는 해석의 학문이다. 보편적 세계사의 관점에서 볼 때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넘어섰어야 할 이데올로기의 주술에서 아직도 우리가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동족상잔의 비극과 권위주의 시대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함께 꿈꿀 사회적 가치와 지향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재이다. 따라서 충돌이 명약관화한 근현대사 교과서를 검정으로 하기 보단 이견이 적은 고대사와 중세사를 다룬 국사 교과서를 검정으로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모든 역사는 당대사이다. 허나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의 역사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한 터전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물적 풍요와 시민사회는 그네들의 피와 땀의 씨앗이 거둔 결실이다. 그들의 시대를 모르고 우리 시대의 앞길을 열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고대사와 중세사를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필수 과목으로 하고 근현대사를 선택과목으로 한 것은 잘못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후세 교육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왜 그 때 침묵했는지 묻고 싶다.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는 이웃집에 난 불이 아니기에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제 눈썹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해야 할 제 몫의 책임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교과서는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서술이 필수적이다. 이는 학계에 근현대사의 여러 문제에 대해 검증을 거친 통설이 나와 있을 때 가능하다. 당대사에 대해 서술한 통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불모지와 같은 우리학계의 현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기에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어깨가 무겁다. 그렇기에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는 한국사학계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를 사는 이들은 나와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을 관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모적인 논쟁보다 지금 우리는 2008년부터 적용될 제8차 교육과정에서 한국근현대사를 후세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시민이기를 꿈꾸는 이들 모두가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한 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드는 데 힘을 더하고 손을 맞잡을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