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민주노동당 남성당직자 2명이 중앙당 징계위에 의해 징계면직 처분됐다. 징계요인은 여성당직자에 대한 폭언과 폭행이다.
창원시 민노당 시의원 뇌물수수 구속사건과 함께 민주노동당 창당후 최악의 사태로 일컬어지는 이번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지난달 20일, 민주노동당 중앙당 간부인 K모씨는 민주노총과 함께한 수련회에서 여성당직자 A모씨가 민주노총 상근자들의 이름을 호칭을 생략하고 부르자, 안주그릇을 A씨에게 던지고, 머리와 상체를 발로 차는 폭력을 행사했다. K씨가 주변의 만류로 물러난 사이, 이번에는 술에 만취한 또다른 중앙당 간부 C모씨가 A씨에게 달려들어 멱살과 머리채를 잡고, 이를 말리는 민주노총 상근자와 몸싸움을 벌였다.
***당 징계위, "해이된 활동기강과 잘못된 술 문화 때문"**
이같은 폭행사실은 곧 민노당과 민노총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당 징계위는 사건발발 일주일이 지난 지난달 27일 징계문을 통해 "도를 지나친 폭언과 폭력 행사로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입히고 당의 명예를 손상시켰다"고 잘못을 시인한 뒤, "위 사건의 발생은 해이된 활동기강, 잘못된 술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하고 향후 교양 등의 방법으로 이를 시정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징계문 발표로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사건발생 7일만에야 징계위의 결정이 내려지고, 최고위원등 당 지도부가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향후 재발방지책 마련에 머뭇거리는 사이, 당게시판에는 분명한 해결을 촉구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질타가 폭주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질타에 반발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이 과정에서 "운동선배를 몰라보는 풍토가 잘못됐다"며 피해자 이름을 거론하는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버젓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급기야 각 지구당과 당내 모임 등이 "최고위원회가 직접 당기위에 '가해당직자 출당(제명)' 제소를 하고, 형사고발조치를 취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인사위원회도 없이 검증안된 인물을 당직자에 앉힌 사무총장과 대표는 공식사과하라"는 일반 당원들의 요구가 빗발치기에 이르렀다.
이에 최고위원회는 1일 "형사고발은 피해자 본인에게 결정권이 있으며, 최고위원회가 당기위 제소를 대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사태의 심각성은 징계 결정과 사과문 발표로 충분히 표했다"며 ▲사무총장의 사과문 발표 ▲폭언 폭행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 제정 ▲인사위원회 설치 등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노동당의 적나라한 현주소**
그런데 과연 이번 사건은 당 지도부 주장대로 단순히 '기강이 해이해진 몇몇 당직자의 술자리 해프닝'일까. 하지만 다수는 이번 사건을 '남성의 여성동료에 대한 나이와 성별을 매개로 한 폭력이자, 권위주의 문화에 뿌리깊게 젖어있는 진보정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에 대응하는 지도부의 태도는 미적지근했고, '후배의 버릇고치기'라는 명목하에 저질러진 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은 민주노동당의 현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특히 민주노동당 당 게시판에 "폭력은 잘못됐지만, '동지애'로서 징벌·교정해주려고 했던 것", "피해자도 잘한 것 없다"는 전형적인 '피해자 유발론'과 "가해자만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지 말고, 운동에 대한 그간의 헌신을 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가해자 옹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물론, '강력한 가해자 처벌'을 주장하는 당원들조차도 아무 문제의식 없이 피해자의 이름을 드러내는 실수를 연발했다.
이 과정에 가해자 처벌 못지 않게 중요한 피해자 보호와 안정적 복귀를 위한 목소리는 터무니없이 작았고, 가해자가 속한 특정 정파에 대한 변호나 공격이 논쟁의 중심에 떠올랐다. 오히려 이 건이 그동안 해묵은 당내 정파싸움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김혜경 대표는 대표당선 취임사에서 "민주노동당이 '언니들의 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언니들의 당' 이전에 최소한 진보정당이라면, '맞을 짓이란 없다'는 사회적 약자의 시각을 갖추고 있어야만 '진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테러리스트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라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평화'의 이름으로 제일 열심히 파병반대, 점령반대 운동을 벌였던 곳이 다름아닌 민주노동당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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