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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자유화, 식지 않는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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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자유화, 식지 않는 감자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6>

***미시적 계량연구**

각고의 노력과 점입가경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계량연구란 것이 원래 딱히 뚜렷한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아이켄그린 등 많은 이가 지적하듯 거시적 데이터에 기초한 자본자유화에 관한 계량연구는 변수의 내생성이나 중요한 변수의 생략 등 모델 자체의 문제와 적절한 데이터를 구하기 어렵다는 여러 난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한 국가의 거시 데이터가 아니라 기업 등의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들이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이름 또한 ‘미시적(microeconomic)’ 연구이다. 물론, 미시적 연구라고 해서 꼭 더 정확하라는 법도 없고 이들도 모두 특정한 모델과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래에서는 도대체 경제학자들이 어떤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간략하게만 살펴보자.

대부분의 미시적 연구들은 금융시장이 불완전하다는 전제 하에서 기업의 투자에 내부자금 혹은 현금보유액 등이 미치는 민감도, 이른바 투자의 금융제약(financing constraint)의 정도를 분석한다. 감이 오시는지? 좀더 쉽게 설명해보자. 금융시장이 완벽하고 효율적일수록 좋은 투자기회를 지닌 기업들은 외부에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이므로, 기업의 투자는 펀더멘털(fundamanetals)로 불리는 투자기회에만 영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보부족 등으로 인해 은행이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는 이윤이 쌓인 내부자금으로 행해질 때가 많고 따라서 투자는 얼마나 내부자금이 많은가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이 논리에 따르면 금융시장이 효율적일수록 내부자금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 혹은 투자의 현금흐름 민감도(cash flow sensitivity)는 낮아야만 한다.

학자들은 근본적인 투자기회를 나타내는 변수로는 주가와 관련이 있는 토빈의 q나 매출액/자본 등을 사용하고 내부자금(internal funds) 혹은 유동성(liquidity)을 나타내는 변수로는 현금흐름이나 현금보유액을 사용하여, 현금흐름의 계수가 투자지출에 통계적으로 유의하면 이것을 금융시장이 불완전한 증거로 해석한다. 물론, 현금흐름 자체가 기업의 이윤 나아가 투자의 기회와 아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투자 자체가 미래지향적이고 심리적인 불확실한 행위이므로 이러한 투자모델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케인즈는 미래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로 모른다(we simply don't know)”라고 말하며 경제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강조했으며 투자를 동물적 본능(animal spirit)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던가. 사실 현실의 투자는 온갖 복잡한 요인들에 영향을 받으며, 투자의 현금흐름의 민감도를 해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경제학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의 경우 기업의 현금보유액은 역사상 최고로 늘어가지만 투자는 정체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금융시장이 더 효율적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어찌 되었건 간에 대부분의 연구들은 많은 나라들에서, 특히 중소기업의 투자가 높은 금융제약에 직면해 있으며 대기업이나 계열 등 그룹 소속의 기업들은 투자의 현금흐름의 민감도가 낮음을 보여준다. 중소기업의 경우 정보가 특히 불완전하고 금융시장에서 소외되므로 투자의 금융제약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80년대 일본이 잘 나갈 때에는 일본과 같은 계열기업들의 금융제약이 낮은 것이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장기적인 시야에서 투자를 촉진하는 증거로 자랑스레 이야기되기도 했다. 하긴 경제학자들은 꽤나 변덕스러워서 일본경제가 맛이 간 이후에는, 이것이 거꾸로 일본기업들은 이윤이나 시장신호(market signal)를 무시한다는 나쁜 증거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본자유화와 금융제약**

최근에는 이러한 논리에 기초하여, 금융자유화라든가 금융발전은 금융시장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 것이므로 중소기업 투자의 금융제약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앞서 본 모델들과 비슷하게, 이들은 기업의 현금변수와 금융자유화 혹은 금융발전 변수를 서로 곱하여 모델에 추가하고 이 상호작용(interaction) 변수의 계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마이너스라는 것을 보여서, 금융자유화가 금융제약을 완화하는 효과를 실증적으로 보인다. 즉 금융자유화와 발전이 이루어질수록 중소기업들의 투자의 현금흐름 민감도가 낮아지며 이것이 금융시장이 효율적이 되었다는 증거란 것이다. 나아가, 요즘에는 자본자유화 혹은 해외자본의 유입을 변수로 도입하여 이 변수와의 상호작용 변수를 사용하여 해외자본이 많이 유입될수록 금융시장이 더욱 완벽해지고 금융제약이 완화됨을 보여준다.

초기의 연구들은 금융자유화 혹은 개방의 데이터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유화가 시행된 연도의 전후만을 보여주는 0/1의 더미변수를 사용하는 한계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다 다양한 데이터들이 사용되고 있다. 해리슨 등의 연구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다른 자본유입에 비해 외국인직접투자가 이러한 효과가 가장 뚜렷함을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연구는 미시적인 기업데이터와 거시적인 자본유입 데이터를 함께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투자모델이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는 여러 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거시적 계량연구들의 한계를 넘어서서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상승시킬 수 있는 미시적 효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도 시기와 지역 그리고 여러 가지 맥락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일반화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겠지만, 실제로 해리슨 등의 다른 논문은 이전의 논문과는 다르게 좀은 회의적인 결과도 보고하고 있다. 필자도 한국의 경우를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였지만 90년대의 자본자유화가 기업 투자의 금융제약을 완화시키는 이득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론이 예상하는 바대로 한국의 비재벌기업들은 재벌에 비해 투자의 현금흐름 민감도가 뚜렷하게 높았지만 90년대 이후 금융개방과 외국자본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민감도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는, 외국자본 유입에 관한 여러 데이터와 특히 각 기업별 외국인지분율도 변수로 사용하여 계량분석을 하였지만 자본자유화의 미시적인 이득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1997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구조조정과 신용위축으로 인해 비재벌 기업들의 금융제약이 더욱 극심해지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의 경우, 금융개방 이후 외국자본 자체가 종금사 등 금융기관을 매개로 주로 재벌기업들로 유입되었으므로, 한국의 독특한 기업구조와 금융구조 자체가 이러한 결과와 연관이 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외국자본의 유입이 기업 투자 자체에 미치는 독립적인 영향도 분석해보았는데 외국자본 유입이 투자를 증가시키는 효과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외국인지분율의 증가는 기업투자를 저해하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최근 외국자본에 대항한 경영권확보 등을 배경으로 이윤증대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정체되고 있다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위기 이후 급진전된 금융개방이 기업 투자에 미친 역할에 관한 실증연구와 사례연구들이 발전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분석들은 기업 투자와 외자의 역할을 둘러싼 최근의 혼란스런 논쟁과 대립만 분분한 현실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때로는 많은 연구들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무튼 뭔가 근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일 것이다.

***외국자본은 다 같은가**

자본자유화 ‘정책’ 혹은 외국자본 유입의 효과를 살펴보는 연구들이 실망을 던져주긴 했지만, 경제학자들도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도 보았듯 개방 자체가 외국자본의 투자에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더욱 재미있는 질문은 현실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자본유입이 어떤 상이한 효과를 가져다주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여러 투자들 중에서도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아무래도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아무래도 주식이나 채권 같은 단기적인 포트폴리오투자나 은행대출은 성장을 촉진하는 대신 불안정만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FDI는 웬지 좀은 생산적이고 장기적인 듯하니까. 학자들은 외국자본을 주로 직접투자, 포트폴리오투자, 은행대출 등등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효과를 살펴보기도 한다, 물론 그 중에는 뭐든 좀은 성장에 더 도움이 되는 투자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예상 혹은 기대한 바대로, 많은 연구들은 자본유입을 구분해보면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성장효과가 포트폴리오 투자나 은행대출에 비해 더욱 뚜렷하다고 보고했고 이제 FDI가 도움이 되는 외국자본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특히 몇몇 학자들은 교육수준이나 제도적인 발전 혹은 금융시장의 발전 등 바람직한 전제조건 혹은 수용능력(absorptive capacity) 이 갖추어진 경우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FDI의 스필오버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므로 그 성장촉진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시 계량분석이란 것이 그렇듯이 회의적인 결과도 적지 않게 보고되었다. 보다 발전된 패널기법을 사용한 리바인 등의 최근 연구는 FDI가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주류경제학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FDI에 관해서는 각국의 거시적인 성과를 비교하는 거시적 연구 외에도 FDI가 이루어진 산업이나 그 산업부문의 기업들의 성과를 탐구한 미시적인 계량연구들도 상당히 이루어졌다. 직접투자가 선진적인 기술과 경영기법 그리고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연구들에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볼 때 FDI의 미시적 이득은 더욱 박약한 것으로 보인다. 몇몇 연구들은 미시적인 스필오버 효과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연구들은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물론 시기와 국가 그리고 상황에 따라 효과가 같지 않을 것이며 데이터와 기법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양쪽의 주장 모두 조심스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슨은 FDI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을 검토하고, “FDI를 촉진하는 정책의 근거가 되는 그 스필오버 효과의 증거는 상당히 미약하다(weak)”고 결론짓고 있다.

***FDI 활용하기**

결국 현재까지의 연구들은 직접투자의 경우 다른 투자에 비해서는 성장효과가 더욱 큰 것으로 보이지만 그 미시적, 거시적 효과가 그리 뚜렷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장을 실제로 짓고 현지인을 고용하는 소위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와 관련된 FDI라면 아무래도 투자와 성장에 미치는 이득이 더욱 클 수도 있겠지만, 앞서도 보았듯 지분의 10%만 넘는 인수도 FDI로 계측되며 외국인투자가 국내산업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2001년 총 FDI에서 차지하는 M&A투자의 비중은 80%나 되며 상당히 감소한 2002년에도 그 비중이 55%나 되었다. 한편 UN의 세계투자보고서(World Investment Report)에 따르면 외국기업의 반경쟁적 행위나 국내기업의 구축(crowding out) 그리고 FDI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외국자본에 대한 너무 많은 양보 등 FDI의 어두운 면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FDI의 가능한 이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각국이 FDI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인하와 임금인하 등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우려되고 있다. 뭐 너무 과도한 우려는 나쁠 수도 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무조건 임금을 낮추는 식으로는 개도국과 경쟁이 불가능할 것이며 오히려 교육이나 인프라스트럭처 등 적절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생산적인 외국자본의 유치와 그 이득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역시 수신제가가 먼저라고, 단순한 개방과 투자유치보다는 국내적으로 보다 튼튼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또한, 외국인이 짓는 공장도 공장 나름이어서, 기술이전을 촉진하고 연구센터 등 핵심부문의 유치 등을 통해 전후방 연관효과를 극대화하고 FDI를 현지화(localizatoin)하는 것이 국내경제에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는 라틴아메리카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도 달리 과거 발전과정에서 FDI에 별로 의존하지 않았으며, FDI와 관련해서도 국내부품 사용이나 외국인 소유의 제한 등 강력한 규제를 통해 외국투자가 국내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갖은 정책을 펴기도 했다. 물론, WTO 체제 하에서 전개되고 있는 TRIMs(trade-related investment measures: 무역관련 투자조치) 협정 등 최근의 세계경제의 변화는 이러한 노력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후진국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진국들은 자신들은 각종 보호에 기초해서 발전해놓고 이제 따라가려는 후진국들의 사다리를 차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kicking away the ladder) 이는 후진국들의 반발과 새로운 연대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어떻든, 과거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한국정부가 외국인투자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은 좀은 슬프기까지 하며 개방과 규제완화 등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최근의 몸부림에서 FDI의 생산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고려가 얼마나 기울여지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특히 동북아 중심국가니 하는 정책들도 금융허브니 하면서 외국자본에 규제완화와 좀은 대책 없는 개방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된다. 한국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겠지만, 위기 이후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던 한국경제가 말 그대로 종이호랑이가 전락한 현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외국자본과의 관계에서가 아닐까.

***자본자유화, 여전히 뜨거운 감자**

지금까지는 제쳐두었지만, 자본자유화가 경제의 불안정에 미치는 효과들도 활발히 연구되어 왔다. 금융자유화와 개방이 쌍둥이 위기로 이어졌던 역사적 사례들은 이미 얘기했지만 학자들은 실증적으로도 이러한 영향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며 연구의 결론도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다. 몇몇 연구들은 금융자유화와 개방이, 특히 금융이 덜 발전되고 감독이나 규제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는 불안정과 위기로 이어지기 쉬움을 계량적으로 보였고, 또한 자본자유화가 국내소비의 불안정을 심화시킨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본자유화가 은행위기가 발생할 확률을 꼭 높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국내소비 등의 불안정을 완화시킨다는 계량연구도 제시되고 있다. 나아가, 9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불안정이 줄어들었으며 개방이 진전되면 불안정이 성장에 미치는 악영향도 완화된다는 관찰도 존재한다.

이 정도쯤 되면 독자들은 도대체 이 계량연구란 것이 얼마만큼 믿을 만한가 의문스러울 만도 하다. 사실 현실이란 것은 원체 복잡해서 아무리 복잡한 기법과 데이터를 쓰더라도 계량연구를 통해서 어떤 명확한 결론을 보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정말 까다로운 이들은 예를 들어 노동시장 등 가구 조사와 같이 몇 십만개의 데이터를 사용하고 통계적 유의성도 무지 높게 나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다지 그 결과에 믿음을 두지 않으며, 특히 각국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연구들은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경제학자들을 용서하시라. 학자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분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회과학은 실험실의 자연과학과는 다른 것 아닌가.

아무래도 자본자유화와 같은 어떤 정책과 그 효과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쩌면 앙상한 실증연구보다는 복잡한 권력관계와 각 이해집단들의 요구 그리고 이데올로기까지 뭔가 경제학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요소들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각국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 그리고 이를 만들어온 각국의 역사나 제도적 환경 나아가 정치경제적 역관계 등에 대한 고민이 자본자유화의 성공 혹은 실패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일 것이다. 실제로 무역자유화의 대가인 스리니바산과 바그와티도 로드릭과의 논쟁에서 계량연구에 기초한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복잡한 현실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한국의 경우는 자본자유화와 관련해서도 학자들에겐 무척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한국이 경제학적으로 엄청난 연구대상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경제학자가 된 것에 감사드려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대충 이야기를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서 살펴본 계량경제학에 기초한 실증연구들은 많은 난점을 안고 있지만, 아무튼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이득을 그다지 뚜렷이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 “세계화를 옹호하며(In Defense of Globalization)”라는 책을 펴내며 세계화 지키기에 나선 바그와티조차 적어도 단기적 국제금융자본의 이동에 대해서는 비용이 더 크다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는 여전히 FDI와 무역자유화는 이득이 더 크다고 강조하지만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몰라도 그의 책은 비판적인 연구들은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결국, 어떻게든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외국자본을 많이 받아들이면 효율성과 경제성장이 촉진될 것이라는 자본의 복음은 그 현실적인 근거가 그리 튼튼하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순진하게 그 약속을 믿은 사람들이 어리석었던 것일까, 아니면 결과와는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약속을 퍼뜨리는 이들이 나빴던 것일까. 어떻든 자본자유화는 학계와 정책결정자에게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hot potato)로 남아있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정부나 학자들이나 일반 대중들이나, 거의 모든 이들이 금융개방과 자본자유화의 축복이라는 주문에 홀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역시 더욱 중요한 것은 맹목적인 믿음에 기초한 독선적인 주장보다는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자본자유화 혹은 통제가 경제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학자들은 언제나 경제성장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자본자유화와 관련한 연구들도 투자나 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득분배나 선진국과 후진국의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 등 자본자유화의 다른 복잡한 측면들도, 어렵지만 아주 흥미로운, 어쩌면 더욱 중요한 연구대상일 것이다. 아쉽지만 이러한 주제들은 잠시 뒤로 돌리고 우선 다음 연재에서는 세계화의 다른 한 축인 무역자유화와 성장에 관한 논쟁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 본문에서는 저자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언급된 대부분의 연구들은 필자의 논문들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미시적 계량연구는 아래 논문의 문헌연구 부분을 참조하시길.

Kang-Kook Lee, (2004).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and Investment: Did Liberalization Spur Investment Efficiency in Korea?

www.chol.com/~lyova/study/lee-calfinconst-jn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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