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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는 짓은 범죄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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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스라엘 하는 짓은 범죄행위다”

김재명의 '중동 현지 르포' <4> 아라파트 인터뷰

예루살렘에서 서안지구의 정치중심도시 라말라로 가는 길은 중간쯤에서 언제나 막힌다. 교통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군의 검문으로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탓이다. 그곳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역 이름을 따 칸달리야 검문소라 일컫는다. 이 검문소에 배치된 이스라엘 병사들은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방탄복을 껴입고 중무장한 모습이다. 이따금씩 일어나는 자살폭탄 공격에 대비해서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이른바 순교작전(자살폭탄공격)을 펼치려는 팔레스타인 젊은이가 이 칸달리야 검문소에서 몸수색을 당할 경우, 공격목표 지점을 바꿔 그곳에서 폭탄 연결고리를 잡아당길 수밖에 없게 된다.

<사진 1> 라말라 가는 길의 이스라엘 검문소 김재명

그렇듯 칸달리야 검문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충돌이 빚는 최전선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멀리서 온 외래 방문객을 마땅찮다는 눈길로 바라보던 20대 초반 이스라엘 병사의 메마른 얼굴을 떠올리며, 그 젊은이도 근무가 끝나면 힙합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흔들겠거니 상상을 하는데, 필자가 탄 차량은 낯익은 라말라 중심가로 들어선다. 검문소에서 그저 15분 남짓 거리다. 그만큼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언제라도 위협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마스 지도자들과 바르구티의 포스터**

라말라 시내 한 가운데는 사자(獅子) 조각을 한 장식물을 중심으로 원형 로타리가 있다. 그 일대의 건물 벽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봉기) 과정에서 이스라엘 군의 총격으로 죽거나 자살폭탄 공격으로 스스로의 몸을 던진 ‘순교자’들의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지난 3월과 4월 이스라엘 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잇달아 사망한 하마스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아지즈 란티시를 기리는 포스터들도 눈길을 끌었다.

<사진 2>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또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의 직할 정치조직인 파타(Fatah,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서안지구 사무총장이자, 친 아라파트 계열의 비정규 무장조직인 알-아크사 순교여단 지도자로서 2002년 4월 이스라엘 군에 붙잡힌 뒤 무기수로서 복역할 처지에 놓인 마르완 바르구티의 포스터도 곳곳에 보인다. 재판정에서 수갑을 찬 채 두 손을 높이 든 모습이다. 아라파트를 이을 차세대 후계자로 꼽히는 바르구티의 근거지가 바로 이곳 라말라이기에 다른 포스터보다 더 많이 나붙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방 감옥 안에서 그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민족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을 보여주듯, 포스터에 보이는 그의 얼굴은 맑아 보였다.

이스라엘 군에 붙잡히기 앞서 필자는 두 번 바르구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지금의 인티파다가 3년은 끌 것”이라 내다봤었다. 2000년 9월말에 인티파다가 시작됐으니, 이제 4년이 다 돼간다. 그는 3년쯤 인티파다로써 이스라엘의 압제에 저항을 한다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정치적 경제적 압력을 가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길을 열게 될 것이란 판단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그 사이에 21세기 초강대국이자 사실상 유엔을 주무르는 미국엔 부시행정부가 들어섰고, 친이스라엘 일방정책의 도는 더욱 깊어졌다.

민족의 운세(運勢)란 게 있다면, 지금 시기는 팔레스타인 민족에겐 고난과 좌절의 시기다. 바르구티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자들에게 지도력의 한계를 절감하도록 강요하는 때가 바로 이즈음일 것이다. 바르구티가 이스라엘 감옥 안에 갇혀 이렇다 할 정치적 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무기수로서 복역할 처지라면, 팔레스타인 정치지도자 아라파트는 2002년 9월부터 2년 가까이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지내는 형편이다.

***더욱 처참해진 모습의 무카타(Mukata)**

<사진 3>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

아라파트의 집무실을 중심으로 담으로 둘러싸인 축구장 넓이 두개쯤 되는 공간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카타(Mukata)라 일컫는다. 4년 가까운 이-팔 유혈충돌 과정에서 이 무카타는 이스라엘 군으로부터 되풀이된 공격을 받아 폐허로 바뀌다시피 했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전설적 인물로 이미 신화적 존재가 된 아라파트 개인으로선 커다란 모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라파트와 그를 지키는 소수의 경호대원들은 이스라엘 군의 탱크 포격과 불도저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해왔다.

무카타에 들어서자, 2년 전 이곳에 와봤을 때보다 파괴상태가 더 심해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2년 전에는 아라파트 경호부대원들이 묵는 막사 건물만 파괴된 상태였지만, 지금은 아라파트 집무실 건물 두 채를 뺀 나머지 건물들이 모두 파괴된 모습이다. 집무실 바로 옆 바깥 벽이 모두 허물어져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라파트의 한 측근인 자피르 알-노바니(팔레스타인 국제연대 대표)는 파괴된 건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스라엘 군은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질 때마다 아라파트가 테러리스트들을 제대로 단속하기는커녕, 배후에서 은밀히 지원한다며 불도저를 몰고와 모욕적인 파괴행위를 일삼았다”고 치를 떨었다.

<사진 4>

자피르 알-노바니의 도움으로, 그곳 무카타 부속 건물에서 팔레스타인의 ‘살아있는 전설’ 아라파트를 만나 몇마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2부작 평화기획 ‘중동’을 주제로 오는 7월초 ‘이슬람, 저항의 이유’를 방영할 예정인 KBS <일요 스페셜> 팀(장영주 PD)과 함께였다. 아라파트는 외국 언론사들과 단독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지난 1999년 미국 TV방송 CBS의 간판 프로그램 ‘60분’에 인터뷰를 했다가, 교묘한 편집에 모욕을 당한 뒤로는 일체 단독 인터뷰를 하지 않아왔다. 그 대신 서서 몇 마디 나누는 짧은 코멘트 방식으로 일관해왔다. 우리 한국 방문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른 외국기자들과 함께 한 공동 기자회견이 아니라는 점에 만족해야 했다. 아라파트와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 5>

***“미국은 샤론의 범죄를 덮어왔다”**

-최근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군의 학살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커다란 범죄(big crime)이다. 이스라엘 군은 밤낮으로 어린이들을 포함한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인프라(전기 수도 등 사회간접시설)를 파괴하고 있다. 나아가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80% 이상을 점령하고(2005년으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이른바 중동평화협상을 위한 이정표(road map)를 좌초시켰다. 그 이정표는 알다시피 유엔과 유럽연합(EU),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받아들였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평화로운 이행과정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건설해온 이른바 보안장벽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는지?

“(예전에 소련군이 세웠던) 베를린장벽이 지금 어디 있나? 지금은 다 무너지고 없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이른바 보안장벽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보안장벽을 세운다는 구실로 우리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몰수하고 있다. 보안장벽은 국제법상으로도 불법일 뿐 아니라, 커다란 범죄행위다”

-현 중동사태를 둘러싸고 미 부시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 부분에 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의 범죄행위를 덮어주어 왔다. 샤론은 (유엔에서 대 이스라엘 비난결의안이 나올 때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유엔총회에서 부표를 던져온써) 미국의 지원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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