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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팔루자에서 벌어진 일이 여기서도 일어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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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팔루자에서 벌어진 일이 여기서도 일어났죠”

김재명의 '중동 현지 르포' <1> 팔레스타인 라파 난민수용소

프레시안은 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진 중동지역의 생생한 실상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지난 달 25일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를 현지에 파견했다. 김 기자는 21일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이라크 등을 누비면서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탄압 실상과 주권이양을 앞둔 이라크 등의 생생한 현지상황을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프레시안의 '뉴욕통신'에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단체 하마스의 투쟁, 미국의 이라크 침공배경 등 중동사태의 실상과 배경에 관한 심층분석기사를 실어왔던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오늘(3일)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취재기 1신을 보내왔다. 이 리포트는 KBS 방송국의 <일요 스페셜> 팀(장영주 PD)과의 공동취재기록임을 밝혀둔다. KBS는 2부작 평화기획 ‘중동’을 주제로 오는 7월초 ‘이슬람, 저항의 이유’를 방영할 예정이다. 편집자

***이스라엘군의 파괴와 살육이 스쳐간 자리엔 깊은 슬픔만이**

<사진1> 이스라엘 군의 마구잡이 파괴로 집을 잃은 난민들은 집터에 세운 천막에서 노숙을 하는 형편이다.@김재명

“이라크 팔루자에서 벌어진 일이 여기서도 일어났죠”

가자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시파 병원에서 만난 한 팔레스타인 청년의 말은 가자 지역 상황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했다. 지난 5월 하순 들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잇단 무장충돌 과정에서 탱크에 탔던 이스라엘 군 병사 6명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이 심어놓은 지뢰로 숨지자, 이스라엘 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탱크 포는 물론이고 헬기 미사일이 발사되는 가운데 대형 불도저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을 마구잡이로 부수었다. 이 과정에서 5월 18일 하룻동안에만 19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앞의 팔레스타인 청년의 말처럼,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국인 사설 보안업체 경호요원 4명이 죽임을 당하자, 미군이 팔루자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2000년 9월말 이래 이스라엘의 강압적인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 봉기)는 4천명 넘는 희생자를 낳아왔다. 5월 들어 특히 가자 지역 남쪽 이집트와 국경을 맞닿은 라파 지역의 피해가 컸다. 이스라엘 군은 이집트로 통하는 무기 밀수 지하터널을 찾는다는 구실로 수백 채가 넘는 집들을 허물어뜨렸다. 그래서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처 가재도구조차 챙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집을 떠나야 했다. 이스라엘 군의 강압적인 주택파괴 과정에서 라파 지역에서는 1주일 사이에 어린 소년소녀들을 포함해 50명 넘는 애꿎은 목숨이 희생당했다.

***“점령지역 주민 강제이주는 전쟁범죄다”**

<사진 2> 파괴된 집 주변에서 이스라엘 군을 향해 장남감 총을 겨누는 팔레스타인 난민 소년들.

“콜라는 없어요. 다른 걸로 주문하세요. 세븐업 같은 것 말이에요”

가자 지구의 식당에 들어서서, 마른 목을 축일 겸 콜라를 주문하자, 팔레스타인 식당 종업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필자로서는 이번이 네번째 취재길인 가자 지구는 예전에 비해 더욱 상황이 악화된 모습이었다. 걸핏하면 옥죄는 이스라엘 군의 봉쇄정책으로 가자 지구는 생활필수품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한때는 담배도 품귀현상을 보여, 담배 한 가치를 낱개로 사려 해도 2셰겔(550원 가량)을 치러야 했다. 골초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듯하다.

가자지구에서 만난 한 약사의 말. “담배는 몸에도 좋지 않으니,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건강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고 치면 그만이고, 콜라도 마시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른 생필품들은 얘기가 다르다”

이를테면 집에 배탈이 난 환자가 생겨 약국으로 달려가면, 설사약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 약사는 “우리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 사람들은 이스라엘군의 집단적 징벌(collective punishment)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은 가자로 통하는 길목마다 검문소를 차려놓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실은 트럭들의 통행을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워 막고 있다. 이스라엘 쪽에서 말하는 “보안상 필요한 조치”는 가자 사람들에겐 그저 허울뿐인 구실로 들릴 뿐이다. 앞의 약사 말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고통 주려는 징벌 성격이 강하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지중해를 따라 난 직사각형 모양의 좁은 회랑에 갇혀 지낸다. 인구 110만명이 360평방km의 좁은 면적 안에 사는 인구밀집지역이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시를 중심으로 열악한 주거환경 아래 살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가자를 벗어날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에도 갈 수 없다. 가자 지역 안에서조차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스라엘 군은 가자를 정확히 3등분해 길목마다 검문소를 세워놓고 수시로 이동을 막고 있다. 그래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늦거나 빠지기가 일쑤다.

이스라엘 군의 봉쇄정책으로 말미암아 마음 고생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뿐 아니다. 국제사회의 구호물품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공급하는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관( UNRWA) 관계자들도 이즈음 들어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5월 중순 가자 지구 남쪽 라파에서 이스라엘 군이 마구잡이 가옥파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생겨났어도, 이들을 돕는 물자들을 실은 UNRWA 트럭들이 현지에 닿기는 쉽지 않았다. 일부 트럭들은 이스라엘군의 저지로 검문소 바깥에서 1주일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가자지구 사무실에서 만난 폴 맥캔(UNRWA 대변인)은 “점령지역 민간인들을 강제 이동시키는 강압조치들은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위반하는 명백한 전쟁범죄 행위”라 잘라 말했다.

<사진 3> 라파 동물원은 이스라엘군의 파괴행위로 1천마리의 동물이 떼죽음을 당했다.

***“어린이 동물원이 군부대처럼 보였나?”**

지중해의 푸른 파도가 바닷가에서 하얀 물살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자 남쪽 라파 난민수용소로 향했다. 가자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라파를 뒤덮고 있는 분위기는 침략자이자 강압적 지배자인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이렇다 할 희망이 없는 내일에 대한 좌절감, 언제라도 또다시 일어날지 모를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비롯된 불안이다. 특히 집을 잃은 난민들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연한 탓에 넋들이 빠진 듯한 모습들이었다. 이들을 임시로 수용한 라파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한 50대 후반의 주민은 “평생 동안 이런 험한 일들을 하도 여러 번 겪어놔서 눈물도 안 나온다”고 했다.

현지인 가이드 사프와트는 필자 일행을 동물원으로 안내했다. 동물원이래야 코끼리나 호랑이가 있는 본격적인 규모엔 훨씬 못 미치는, 그저 팔레스타인 실정에 맞는 소규모다. 그렇지만 이 지역 어린이들에겐 커다란 즐거움을 주어왔던 곳이다. 이스라엘 군은 불도저로 그곳을 밀어붙여 1천 마리 가량의 동물을 죽였다. 무너진 담벼락 벽돌들을 딛고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워낙 많은 동물들이 죽은 탓에 미처 땅 속에 묻지 못한 동물들이 이곳저곳에 버려져 있다.

그곳 관리인 파트히 줌마(41)의 말.

“그 자들(이스라엘군)들이 나를 둘러싸고 꼼짝 못하게 하더니만, 불도저로 담장을 무너뜨리고 동물들을 깔아뭉개 죽였다. 동물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린이동물원이 팔레스타인 군부대도 아닌데...6억원을 들여 지은 동물원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관리인이 의문을 품듯, 왜 이스라엘 병사들은 동물원을 파괴해 그곳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앗아갔을까. 점령군의 가학적인 행위일까, 아니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일찍부터 좌절감을 심어주려는 심리전일까.

***빨래 걸다 죽은 소녀, 비둘기 모이 주다 죽은 소년**

같은 라파 안에서도 서쪽 텔 술탄 지역의 피해가 컸다. 이곳은 지난 5월 하순 이스라엘 군의 봉쇄로 1주일 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되면서 물이 떨어지고 식량이 바닥나는 등 큰 고통을 겪었다. 이스라엘 군은 탱크와 아파치 헬기, 그리고 불도저를 동원해 많은 집들을 무너뜨렸다.

<사진 4> 이스라엘 저격수에게 아들과 딸을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 스리야(왼쪽)과 희생자들의 숙모.

그곳 한 지역은 축구장 넓이만한 공터가 생겨나 있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콘크리트 부스러기들의 무덤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니에스 몬수리(18)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 다행히도 그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밤마다 들리는 총소리가 마치 음악소리 같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이런 상황에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며 그늘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텔 술탄 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 군사작전(?)은 알-무가이어 집안에 깊고도 진한 슬픔을 안겨주었다.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던 15살 소녀 아스마, 바로 곁에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던 11살 꼬마 동생 아흐메드가 5월 18일 낮 12시쯤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부근 높은 건물옥상에 배치된 이스라엘군 저격수가 밝은 대낮에 쏜 총알이었다. 그 저격수는 조준경을 통해 이들 자매가 무엇을 하는지 잘 보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다시 물음이 생겨난다. 그 저격수는 무슨 까닭에 이들 자매를 죽였을까. 어머니 스리야(43)도 내내 그런 의문을 지우지 못한다. “왜 그들이 내 아들딸들의 목숨을 앗아갔나? 11살 꼬마아이가 총을 든 무장 저항운동가로 보였나? 아니면 화풀이로, 심심풀이로 쏜 것인가?”

<사진 5> 이스라엘 군 불도저에 집이 무너져 초등학교 교실에서 지내는 팔레스타인 여인의 흐느낌.

어머니 스리야의 눈물을 뒤로 하고 다시 곳곳에 집들이 파괴된 거리로 나섰다. 한 가정집의 옥상에 올라가 보니, 보안 장벽 넘어 멀리 유대인 정착촌들이 지중해변을 따라 그림처럼 보인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가자지구의 노른자위 땅 3분의 1을 점령하고 있다. 그 유대인 정착민 7천5백명을 보호하기 위해 약 2만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군이 주둔중이다. 몇 대의 이스라엘 탱크가 달리는지, 보안장벽 넘어로 굉음과 함께 먼지를 휘날린다. 그런 탱크들을 향해 팔레스타인 소년 하나가 망원경이 달린 장난감 총을 겨눈다. 마치 실전을 치르듯 무너진 벽돌 더미에 몸을 숨긴 채 ‘엎드려 사격’ 자세다. 미래의 팔레스타인 전사를 보는 듯했다. 그런 어린이들은 이미 마음 속 깊이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어린이 3명 가운데 1명, “커서 순교자 되겠다”**

가자 시내에서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는 정신신경 전문의인 에야드 엘 사라이 박사(가자 공동체 정신건강프로그램 대표)는 “12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6년 뒤 18살이 됐을 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자, 3명 가운데 1명(34%)이 “이스라엘군의 억압에 맞서 싸우다 죽는 순교자가 되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힌다. 사라이 박사는 “이곳 지구 사람들의 97%가 이른바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걸핏하면 이스라엘 군이 총을 쏴대고 아파치 헬기에서 미사일이 날아드는 상황에서 가자라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기 마련이라는 분석이다.

사라이 박사는 “유엔 등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 소속으로 가자지구에 들어와 일하는 외국인들조차 한달 쯤 지나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할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경우 그 심리적 고통의 정도가 높은 편이라 말한다. 이스라엘의 강압적인 점령정책에서 비롯된 심리적 고통, 경제봉쇄에서 비롯된 경제적 고통, 여기에다 일자리를 잃고 좌절감에 싸인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이란 3중고를 겪는다는 분석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가난과 억압의 세월을 보냈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리며 가자 시내 숙소로 향했다.(계속)

필자 이메일: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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