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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葉敦子라는 日本 女記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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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葉敦子라는 日本 女記者 이야기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 - 빠뜨렸던 이야기들 <59>

***10. 千葉敦子라는 日本 女記者 이야기**

서울에 있는 세계 활자문화의 중고품 집합소이자 또한 세계문화의 편린을 주울 수 있는 보물단지로 내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홍익대학 앞 온고당에서 최근 의외의 발굴을 하였다. 지바 아쓰꼬(千葉敦子)가 쓴 <유방암쯤에 질 수는 없다>란 작은 일본 책이다. 1987년에 나온 것인데 일본서 화제작이 된 듯하고 그 후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신문에 소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지바 기자는 나와 1967년부터 한 학년 동안 미국 하바드대학의 니만 언론연구원으로 있은 인연이 있는 터이기에 책을 즉각 읽어 보았다. 우선 책 맨 앞장에 유방 한 쪽을 떼어내기 전의 정상적인 그의 앞가슴 사진을 게재한 것이 대담하다. 주부들이 젖가슴 종류를 분류해서 말할 때 흔히 말하는 소뿔젖이다. 에로틱하다 해야 할 줄 안다. 책은 대부분 유방암을 발견하고 수술하고 하는 과정을 상세히 적고 있는데, 남성인 나에게는 관심이 적은 일이고, 뒷부분에 있는 수술 후의 생활부분이 관심을 끈다.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남성교제 기록이며 또한 그의 인생철학 이야기이다.

그는 일본의 귀족이나 상류층 출신이 다니는 가꾸슈인(學習院)대학 출신으로 도꾜신분(東京新聞)에서 국제금융 분야를 담당하다 초년 경력의 기자로 미국에 왔다. 나보다는 여덟아홉쯤 아래다. 작은 체구에 용모는 평균적 수준인데, 조숙형인 듯 대단히 이지적으로 생겼고 활동도 맹렬하다. 책에 보니 스스로도 엘리트주의인 것 같다고 했는데, 쉽게 말하여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부인인 일본계 오노 요오꼬를 떠올리면 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그런 전위적인 여성들이 꽤나 많다. 가족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라 하는데, 인생을 백퍼센트 모두, 한방울도 남김없이 충분히 살고 즐기는 그런 지식여성 타입이다. 책에 보니 그는 "문장이란 (여기에 이르러) 필경 사람이며 생명이며 인생이다"라는 일본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에게는 기사(글)를 쓰는 일이 인생의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그 완전히 서양화된 지바 기자는 미국 기자들과 활달하게 어울렸다. 용모 말고는 완전 백인처럼. 책에서 안 것이지만 그는 2차대전 말에 중국에 살다가 한국의 마산으로 소개되어 와서(피란한다는 뜻) 수개월 동안 살았다는데 한 학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한국인인 나에게 그 이야기는 입도 열지 않았다. 별로 기억이 안 좋았던 것인가.

그가 미국에서 귀국한 후 3년쯤 지나 관광차 한국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김포공항으로 마중을 나갔고 시내에 있는, 친구가 사장인 메트로 호텔로 안내했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옛 국제극장 옆 골목 살롱 <샤르망>(오픈 살롱이다)으로 데리고 갔다.

살롱계의 여왕 소리를 들을 만한 김봉숙 여사가 있기에 손님이 꽉 차있었고 한쪽에선 당시 야당 원내총무인 YS가 진을 치고 있다. 언론계의 관례에 따라 지바 기자를 YS에 소개했다. 나올 때 술값을 셈하려 하니 YS가 모두 끝냈단다.

그 다음으로 지금의 프레스센터 뒤에 있던 역시 유명한 살롱 <세르팡>으로 갔다. 유명인의 여동생이고 또 미모도 겸비한 조 마담이다. 거기는 홀도 있고 룸도 있는데 역시 붐볐다. 서울대 철학과 패들인 <거리의 철학자> 채현국과 조선일보의 이종구 기자가 와서 인사를 하더니 나갈 때 <거리의 철학자>가 우리 것까지 계산하고 갔다. 아마 지바 기자는 약간 놀랐을 것이다. 아는 사람도 많고 또한 모두 돈을 대신 내주고 가니 말이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메트로 호텔로 정중히 안내했다.

서울을 떠나 경주를 들러 부산을 통해 귀국하겠다기에 내 직장인 조선일보 논설위원실 구경을 시켰다. 마침 최석채 주필의 친동생 최석봉씨가 경주경찰서장이어서 최 주필이 명함에 안내를 부탁한다는 메모를 써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척척 맞아 들어가는지...

일 년 후 쯤 일본에 여행하게 되어 외신기자클럽으로 연락을 했다. 지바 기자는 동경신문을 떠나 프리랜서로 외국 미디어에 기고하고 있었다. 록봉기(六本木)에 있는 외신기자 단골집에서 마셨는데 그때 만난 사꾸라이 요시꼬(櫻井良子)는 요즘도 유명 잡지에 왕성하게 기고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우 미모였기에 기억하고 있다.

그 다음 날 저녁에 하바드의 동창으로 동경서 활약하고 있는 필리핀 기자 에디 라치카와 함께 자기 아파트로 초대하겠단다. 주택가이기에 동경 지리에 어두운 나는 조선일보의 차석 특파원인 허문도(許文道, 나중에 통일원 장관)씨의 안내를 받고 나서 허 특파원에게 저녁식사가 끝나는 시간에 근처의 다방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참 우직한 부탁이다.

지바 기자 아파트는 참 좁았다. 독신생활이니 다들 그런 게 아닌가. 그런데 라치카 기자는 어찌된 일인지 아니 오고, 그러니 나 혼자만이 아닌가. 테이블에 촛불을 켠 저녁식사다. 캔들 라이트 디너. 우선 포도주로 시작. 그 분위기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런 가운데도 기다리고 있을 허 특파원에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2시간 쯤 뒤에 정말로 정말로 촌놈처럼 아파트를 나오고 말았다. ('원, 내참.'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의 어이없어 내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 다음 해에 다시 동경에 들렀을 때 아파트에 전화를 거니 "손나 히또 아리마셍(그런 분 없어요)"이라는 여자 목소리다.

1987년 니만 보고서를 보니 지바 기자가 46세로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고, 하바드 때 지바 기자가 잘 어울렸던, 럿거스대학 교수가 된 제롬 오멘테의 애절한 추도문이 실려 있다. 같이 있던 여기자가 두 명이었는데 다른 하나는 미국 NBC-TV의 백악관을 출입하던 캐더린 매킨 기자. 금발의 미녀인 그도 미혼독신으로 지내다 역시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바 기자는 일본서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옮겨 활약했는데 그는 뉴욕을 몹시 사랑했단다. "정기적인 수입이나 연금과 맞바꾸어 일생의 자유를 팔아넘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마 그게 프리랜서를 선택케 한 철학(?)인지 모르겠다,

한쪽 가슴이 없이 그는 쾌활하게 산 것 같다. "나의 남자들은 폼을 단 가슴에 만족했다" "나의 남자친구들은 혐오감을 보이지 않았다" "같이 샤워도 하고... 나의 가슴을 좋아했다" "그들이 끌리는 육체는 나라는 하나의 육체이지, 다른 사람 눈에는 결함이 있어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는 관계가 없었다" 등등 솔직하고 대담한 고백들을 쏟아놓고 있다.

그의 책의 인용문 가운데 나에게 가벼운 충격을 준 게 있다.

"누군가를 식사에 초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집에 있는 동안, 그의 행복을 떠맡는다는 이야기이다."-사봐랑(누군지 모르겠다)

"에로티즘으로 하여 우리가 순간에 몰입하고, 순간의 속에서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조르쥬 바타이유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오노 요오꼬 타입에 기가 약간은 질렸던 것 같다.

또한 책을 읽고 나서는 <콜렉터>에 채집되는 나비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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