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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하나만 빼면 벽은 무너진다"

[인터뷰] 민노당 천영세 선대위원장

민주노동당은 요즘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고 있다. 농민의 조직적 지지와 더불어 늘어가는 당원과 지지율 증가에 웃고, 정개특위의 비례대표 축소 움직임과 정부의 민주노동당 후보 사면복권 불가 방침에 운다.

제 17대 총선이 50여일 남은 시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어떤 고민과 활동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천영세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들어보았다.

천영세(61) 선대위원장은 70년대초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진보운동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 후 73년 화학노조에 들어가 삼성제일제당에서 노조를 조직하다 77년 해직당할 때까지 산별노조운동을 펼쳤다. 70년대 후반 노동교육의 산실이던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86년 한국노동교육협회를 만들어 노동자 교육사업에 전념했다. 90년에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 상임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며 민주노총 건설의 기반을 닦은 후 97년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후 계속 진보정당 운동을 이끌어왔다. 말 그대로 30여년간 줄기차게 한 눈 팔지않고 외길을 걸어온 것이다.

<사진 1>

천영세 선대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은 창당 때부터 일관되게 개방농정에 반대해 왔으며 이번 쌀 개방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정부가 말하는 일방적인 농업의 구조조정이 아닌 중장기적인 농업 회생 정책을 세워나갈 예정"이라며 "FTA문제 때문에 늦은감도 있으나 현재 전국의 농촌 지역에서 속속들이 지구당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할 '농민비례대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박일수씨 분신자살후 노동계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선 "어제 노무현 정부가 파견근로자 확대 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현재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역행하는 방침"이라며 "동일노동 동일대우라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공약"이라고 밝혔다.

천 위원장은 또 정개특위의 노조 정치자금 금지 합의와 관련, "이 합의는 위헌"이라며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겠다"고 말해, 불복종 운동을 펼 것임을 밝혔다.

그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에 대해 "벽에 구멍을 낼 때 벽돌 하나 빼기가 어렵지 벽돌 하나만 빠지면 벽은 금방 무너질 수 있다"며 "민주노동당 의원의 국회진출은 반세기동안 온존해온 보수세력의 정치독점에 파열구를 낼 것"이라고 답했다.

'운동권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어떻게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천 위원장은 "노동자, 농민 등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의 특성상 민주화의 이행기라 할지라도 여전히 집회나 파업등 '거리의 정치'는 필요하다"면서도 "상가임대차운동, 신용불량자 회생 법안, 학교급식조례제정 문제등 국민의 생활에 밀착해 정책정당으로서의 성격은 더욱 구체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그는 우리의 성과와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고 대안세력에게 관심이 없고 소외시키는 언론의 냉대에 답답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처럼 달려왔다"며 "희망없는 시대에 다윗은 꼭 필요하고 우리가 지금 꾸는 꿈이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민대중이 물이라면 민주노동당은 '밑빠진 독'"이라며 "독을 큰 물에 던지면 물은 저절로 차오르듯이 큰물에 들어있는 독처럼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을 거치며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천영세 선대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농민비례대표 추진"**

프레시안 : 최근 한-칠레 FTA 비준 등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농민회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입당하는 등 민주노동당에 대한 농민들의 기대도 커가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의 지지는 아직 기존정치권에 대한 환멸로 인한 반사 효과인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농민의 지지확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천영세(이하 천) : 민주노동당은 창당 때부터 일관되게 우리 농업을 미국 중심의 초국적 자본 곡물상에 팔아 넘기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신자유주의 논리만 가지고 있는 관료들과 일부 경제인들은 농업문제를 경제문제라고 보지만 민주노동당은 농업문제는 경제문제인 동시에 사회문제고 환경문제고 문화문제라고 생각한다. 비록 한-칠레 FTA가 통과됐지만 이번 해에는 DDA(도하개발아젠다)와 쌀개방 협상이 남아 있고 이번 쌀 개방 협상은 한국농업의 마지막 분수령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농업회생운동본부가 그동안은 유명무실했으나 농민들의 본격적인 참여로 곧 활력을 받을 전망이다. 총선 후 당내에 정책 연구소를 만들게 되면 국가경영을 책임질 수권정당으로서 책임있는 농업 계획을 만들 것이다.

<사진 2> <사진 3>

프레시안 : 지구당 조직은 어느 정도 되어 있나? 그리고 농민들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에 직능대표로 농민후보를 세우길 바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천 : 현재 1천여명의 농민이 입당했지만 그동안 FTA문제가 절박해 농촌 지역의 지구당 창당과 일반 농민에 대한 홍보 교육등 등 일상사업들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민들 사이에는 아직도 기존정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자는 쪽도 있다.

지난 19일 전여농 지도부와 민노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농민 비례대표' 문제가 논의되었다. 농민들의 정서상 농민들은 농민후보가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당선 가시권에 있어야 민주노동당 지지가 탄력을 받는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당헌과 당규상 비례대표 선출 결정권은 당원에게 있다. 평당원들 역시 FTA문제, 농민들의 집단적 입당 등을 통해 평당원들의 농민이나 농업문제에 대한 이해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농민출신의 후보가 되든 아니든 민주노동당의 누가 의회에 들어가도 농민문제를 잘 대변할 수 있다고 본다.

***"노조정치자금 금지는 위헌,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겠다"**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이번 총선에서 움직이게 되는가?

천 :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지지방침을 재천명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선에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이루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50여명이 이미 당원 직선을 거쳐 지구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현재 현장순회를 비롯해 교육 선전 등 각종 홍보가 추진되고 있다. 정치선거자금도 일인당 적게는 3천원부터 많게는 1만원까지 산별연맹, 총연맹, 지역본부 차원에서 모금할 계획이다.

프레시안 : 최근 정개특위에서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행위를 전면금지하기로 했는데.

천 : 그 결정은 위헌이다. 기업의 기부행위와 노동조합의 기부행위를 기계적으로 동일시 여기는 발상의 실제효과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죽이기로 나타날 것이다.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는 정치활동의 기본이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권리다. 민주노총은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겠다'는 입장이다. 정개특위에서 어떤 명분과 근거를 내놓더라도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 쌈짓돈, 주머니돈이 많을수록 우리정치가 건강하다는 뜻인데 이를 막는다면 한국정치발전에 의미가 없다.

프레시안 : 현재 노동계의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와 일자리창출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천 : 어제도 노무현 대통령이 26개 업종에 한정되어 있던 파견근로자를 모든 업종에 확대시키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는 차별해소에 대한 역행으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는 이번 총선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약이다. 왜 한국정부만 '동일노동 동일대우'라는 국제기준을 안 지키는가에 대한 노 대통령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은 일자리 창출의 주요 부문이다. 정부부터 공공부문에서 땜빵식으로 임시직만 채용하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벽돌 하나만 빼면 벽은 금방 무너뜨릴 수 있다"**

프레시안 : 개혁성과 진보성을 어필해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한-칠레 FTA, 부안 핵폐기장, 비정규직 문제 등에 관해 연이어 공약과 배치된 모습을 보이면서 진보지지층의 이탈을 자초하고 있다. 결국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인데 민주노동당이 원내 의석 몇 석을 차지하는 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사진 4>

천 : 개인이 아무리 개혁의지가 있더라도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호랑이굴에 호랑이 잡으러 갔다'가 동화되는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본질은 한 사회가 가진 여러가지 모순을 정치에 반영하는 정당간의 경쟁이다. 이것이 정당 정치다. 이런 판갈이 없이 개인이 아무리 개혁적일지라도 기성 정치권에 들어가봐야 보수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포위될 뿐이다.

벽에 구멍을 낼 때 벽돌 하나 빼기가 어렵지, 벽돌 하나만 빠지면 벽은 금방 무너질 수 있다. 민주노동당 의원의 국회진출은 반세기동안 온존해온 보수세력의 정치 독점에 파열구를 낼 것이다. 기존 틀에 길들여지지 않은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변화와 긴장을 가져올 것이다.

지난 2002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왕따도 당하고 무시도 받았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의정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안과 국회 밖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자리는 몇석이지만 민주노동당 의원을 통해 국회 밖의 시민사회와 국민의 목소리가 국회 안에 전달되도록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원은 개인플레이가 아니다. 정책이나 재정이나 인력이나 모든 면에서 의원은 당 중심성을 지켜야하고 평당원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모든 공직자는 당헌이나 당규를 위반했을시 당원투표에 의해 소환될 수 있다.

***총선전 5만 당원 가능**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보기도 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민주노동당이 낯설고 멀리 느껴지는 분위기도 크다. 민주노동당이 당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대중정당으로 거듭날 방안은 무엇인가?

천 :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면은 우리 역사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군사독재와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정치 상황이 파행으로 치달았고 진보세력은 정상적인 경쟁에서 배제당하고 억압당했다.

군사독재 하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거리의 정치였고 항쟁의 정치가 곧 살아있는 정치였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가 민주화 사회로의 이행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집회나 파업 같은 '거리의 정치'는 유효하다. 기존 보수정당은 거리의 정치 자체에 담을 쌓고 있으나 민주노동당은 정책정당이면서 투쟁정당이기도 하다. 대중운동의 기반으로 커온 진보정당으로서는 대중들이 절박함으로 거리 항쟁에 나섰을 때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정책정당을 지향하며 그 성격은 앞으로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의석 하나 없지만 상가임대차운동, 신용불량자 회생 법안, 학교급식조례제정 문제등에서 국민의 생활에 밀착되는 활동을 해왔다. 그 결과 노동자뿐 아니라 농민, 자영업자, 영세상공인, 전문직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속속 입당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총선 전에 5만당원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운동단체와 정당이 다른 점, '대안 제시 기능'**

프레시안 : 노동운동을 오래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 사회운동과 정당과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동안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

천 : 운동단체는 보통 정부를 비판하고 주장만 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당은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추상적인 관념만으론 안되며 전문성을 가진 정책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하루 이틀만에 안되며 길게는 몇년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외부에서 우리의 성과와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려 할 때 답답하고 속상하다. 언론의 냉대가 대표적이다. 언론사들은 정치권에 정책경쟁을 주문하면서도 정작 보도는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가십 위주의 기사를 쓴다. 무엇보다 대안세력에게는 관심이 없거나 소외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천 : 민주노동당은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처럼 달려왔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다윗은 꼭 필요하고, 우리가 지금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민주노동당의 길이 옳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만난을 무릅쓰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갈 것이다. 국민대중이 물이라면 민주노동당은 '밑빠진 독'이다. 바가지로 물을 떠서는 독을 채울 수 없다. 독을 큰 물에 던지면 물은 저절로 차오른다. 큰 물에 들어있는 독처럼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을 거치며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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