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딴따라는 원래 다른 세계를 꿈꾸며 살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딴따라는 원래 다른 세계를 꿈꾸며 살죠"

[인터뷰]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민주노동당 입당한 이유

"사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전 세계 곳곳의 끔찍한 참사들이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작은 화면을 거치면서 뭔가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다. 타인의 고통은 '진부한 유흥거리'가 되고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사람들은 그 참상에 정통해진다. 그리고 그 참혹함에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미국의 에세이 작가이자 예술평론가인 수잔 손택(70)은 최근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9.11이후 부시행정부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해 미국 내에서 격렬한 찬반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안방에서 가만히 앉아 저널리즘이 전해주는 전쟁에 관한 참혹한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보다보면 전쟁을 향한 천편일률적인 혐오와 쉽게 증발하는 분노에 익숙해진다. 이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에 개입하기를 주저하게 되지만 이는 정치를 내던져버리는 짓이다."

***"명분 있는 전쟁이 어디 있나"**

<사진 1>

여야 4당대표가 이라크 파병안 9일 처리에 합의한 지난 3일 영화배우 오지혜씨는 국회 앞에서 외롭게 '파병반대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오지혜씨는 "정말 재건을 위한 것이라면 총 말고 삽을 들고 가라"며 "민주노동당에서는 '명분없는 전쟁 그만두라'고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명분 있는' 전쟁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오씨는 "'국익'의 정체성에 대해 더 고민해 봤음 좋겠다"며 "미국에 더 잘 보여서 이라크 사람들을 더 죽고 다치게 하면 과연 우리가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이른바 '충무로 민주노동당 6인방' 중 한 사람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썰렁한' 국회 앞을 벗어나 좀 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오지혜가 당원이 된 이유**

오씨에게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 때 정책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지지했으나 현실논리로 찍어주지 못해 미안해했던 당"이자 "여성,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등 마이너리티를 시혜가 아니라 '입장의 동일함'으로 감싸 안고 변화를 따뜻하게 실천할 것 같은 당"이었다 한다. '신랑과 총선관련 뉴스 보면서 갑자기 생각나서 인터넷으로 입당했다'는 입당 계기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가 의외로(?) 싱거웠다.

<사진 2>

"지난 대선 이후로 먹고 사는게 바빠서 관심도 못 가지고 있다가 인터넷으로 클릭 한번 해서 자동이체 당비 납부 결정한 것 밖에 없는데 배우라는 것 하나로 이렇게 관심 받게 되서 열심히 일하는 진짜 당원들에게 송구스럽다."

오씨의 소박한 입당 소감이다.

***"딴따라들은 원래 다른 세계를 꿈꾸며 산다"**

<올드보이> 등을 만든 박찬욱 감독은 예전에 "제가 민주노동당의 열성 당원이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워 하시는 분도 있는데 사실 제 주위엔 아나키스트적인 사람이 많아 오히려 저보고 현실적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지혜씨도 마찬가지 얘기를 했다.

"상대적인 거죠. 딴따라 밖에서는 (민주노동당 가입을 두고) '너무 세상을 순진하게 보는 것 아니냐'고들 하시지만 딴따라 안에서는 또 무정부주의적인 사람들도 많거든요.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성 있는 배우만 대중적으로 노출되니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죠.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우리에겐 또 다른 정부가 있다'라는 책도 썼지만 우리 딴따라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면서 살잖아요. 독재정권 하에서도 무대나 스크린 안에서는 다른 세계를 만들면서 사니깐. 우리가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되기를 해요, 월급을 받기를 해요? 뭐 세상 돌아가는 거에 뚝 떨어져서 사니깐 상대적으로 세상에 거리를 두고 보게 되죠."

"어떻게 사회운동에 관심 갖게 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요. 연극영화과에 운동권 친구들이나 훌륭한 선후배들이 많아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어떤 기자분이 묻더라구요. '아니, 연극영화과에도 운동권이 있어요?' 편견이죠. 저야 조직에 있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저희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총학에서는 영화과 퍼센티지가 가장 많았거든요."

"사실 연극·영화는 보통의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는 만들 수 없는 건데...몸짱·얼짱으로 어린 나이에 이미지로 소비되는 연예인이 전부인 것 같은 편견이 강하죠.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적인'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는 것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사진 3>

***"우리나라는 지금 국가와 가정만 있고 사회가 없다"**

파병을 반대하고 사회적 약자를 옹호해야 된다는 오지혜씨의 생각은 당원-비당원에 좌우되지도 않는 데다가, 당원이 됐다고 갑자기 배우 오지혜가 열성당원으로서 활동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당원인 것과 당원이 아닌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씨는 이 물음에 대해 "일반인으로서는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가와 가정만 있고 사회가 없어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가부장적인 국가만 있고 사회는 없으니 일반 사람들은 힘들어도 비빌 언덕이 없는 거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족 동반자살이 많은 이유가 뭐겠어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니깐 '내가 안보면 얘는 죽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죠."

"건강한 사회고 뭐고 사회라고 불릴만한 것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그냥 국민의 하나로 가만있기보다는 건강한 사회단체들이 활발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저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모임에 이름만 달랑 가입했지만... 가만있기보다는 아무래도 당원이면 함께 사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고민하고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는 것 아니겠어요?"

***"파병문제, 그건 아니다. 실망스럽다"**

오지혜씨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상처를 하도 많이 받아서 노무현 대통령은 애초부터 기대를 안했지만 그래도 권위적이지 않아서 신선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파병반대 1인시위'를 나서게 된 지금도 그런가.

"김대중 대통령 때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핍박받은 분이 대통령 된 게 어마마한 일이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실망도 컸는데, 노무현 대통령한테는 애초부터 별로 기대를 많이 안했어요. 노사모하는 친구가 '구조적인 문제들이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하루 아침에 바뀌겠나. 표 한번 찍어줬다고 너무 잡아먹을 듯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일면 이해는 하지만 파병문제 같은 경우를 보면...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실망스럽죠."

오지혜씨는 노사모 가입을 권유하는 명계남씨에게 '거부 이유'를 밝히는 장문의 편지를 쓴 적도 있다 했다. "노사모 안 들어줬다고 명계남씨가 삐졌을 때 장문의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나는 얼마든지 다른 정치적 지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득했죠. 그 후로는 한번도 정치문제로 토론한 적도, 싸워본 적도 없어요."

오씨는 덧붙였다. "가장 친한 부부나 부모와도 세계관이 다를 수 있는 건데... 그런 부분은 서로 감안하죠."

<사진 4>

***"정치와 정치적인 것은 다르다. 어떻게 관심 없을 수 있나?"**

오씨는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이상 모든 게 정치"라고 단호히 말했다.

"정치뉴스는 잘 몰라요. 비례대표제 그런 얘기 어렵고... 다만 정치와 '정치적'인 것은 다르거든요. 처세술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 말고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데 어떻게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싶어요 저는 배우가 왜 정치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 들으면 '그야말로 당신은 밥 안 먹고 똥 안싸나?'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모든 것이 정치잖아요. 하다 못해 스크린쿼터 얘기 나올 때도 국제정세 들먹이는데요. 딴따라는 문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생각해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 개인적인 제 생각이에요."

수잔 손택이 미국인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다시 찾자'며 호소했다면 영화배우 오지혜는 "'국익'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며 파병반대 1인 시위를 했다. 문화예술인들의 세상에 대한 '개입'이다.

4당 대표는 5일 국방상임위원회를 거쳐 9일 본회의에서 파병동의안을 통과시키기로 이미 합의했다. 이에 파병반대국민행동은 "3천6백여명의 추가파병병력 가운데 2천2백38명의 전투병으로 사실상 '전투병 위주의 파병'"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일 파병동의안 국회 처리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오씨의 파병반대 1인시위는 무의미한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파병문제는 이제 끝이 아닌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