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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각 인종의 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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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각 인종의 순위는?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7>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1997)의 주인공 멜빈 유돌(잭 니콜슨 분)은 강박장애 환자이자 타인의 삶을 경멸하는 반사회적 독설가이다. 자신의 영역에 그 누구도 침해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는 온갖 편견의 만물상이며, 중·상류층 백인남성의 우월감의 화신이다. 이 영화는 유돌이라는 인물의 이 같은 캐릭터 설정으로 시작부터 긴장의 태엽을 한껏 틀어놓은 다음, 그가 성격 무던한 웨이트리스 캐롤 코넬리(헬렌 헌트 분)에게 마음을 뺏기면서 미세하게나마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그 긴장을 해소시켜 주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첫 장면부터 유돌이라는 인간에게서 '이보다 더 불쾌할 순 없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는, 그가 아주 작은 인간미의 기미만 보여줘도 감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멜빈이 앙증맞은 애완견에 폭 빠지듯이 관객은 니콜슨의 연기에 현혹되어 그가 보여주는 변화의 개연성을 믿어버린다. 그러나 환갑이 가까운 사람의 본성이 바뀌는 것이 그렇게 쉬웠던가. 독설가에서 독지가로의 그의 변신은 이 영화처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한편의 정교한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가능할 뿐이지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얘기이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알게 모르게 멜빈 같은 인간들이 들끓는 미국사회의 현실에 마음의 눈을 돌리게 된다.

멜빈의 성(姓)인 유돌(Udall)은 17세기부터 미국에 뿌리를 내린 영국계 미국인의 성이다. (1976년에 이 성을 가진 사람(Mo Udall)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미국의 지배층은 개개인의 성격이 천차만별일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멜빈 유돌과 같은 족속들로 이루어져 있다. 멜빈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상대역인 캐롤의 성(Connelly)은 아일랜드 계통의 이름으로, 캐릭터 설정상 그녀의 노동자 계급 또는 서민 신분을 말해주는 이름이다. (멜빈은 맨하탄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살고, 캐롤은 브루클린에서 사는데, 이 설정도 그들의 신분 차이를 말해준다.)

이 영화에서 감독 제임스 브룩스가 주인공들에게 부여하는 신분에서 미국의 백인, 그것도 앵글로색슨 백인 중심의 계급사회의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특히 멜빈이라는 캐릭터가 '족보 있는' 앵글로색슨계 백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갖고 있는 편견과 우월의식에 일종의 '투명성'을 부여해주는 효과를 갖는다. 즉 그의 편견과 우월의식은 인종적 신분적 또는 문화적 열등감에 의해 왜곡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사회적이고 모욕적인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행동은 대부분 열등감 또는 자격지심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멜빈의 행동에서는 전혀 그러한 측면이 엿보이지 않는다. 흑인에게, 히스패닉 이민자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유태인들에게 거침없이 인종차별적 독설을 뿜어내는 그는 놀라울 정도로 우월의식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신분(사회적 지위와는 약간 다른)상 그 누구도 자기 위에 있을 수 없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래서 어디서든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앵글로색슨 백인 특유의 우월감과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멜빈은 영화 초반에 3가지 인종을 상대로 원색적 인종차별 독설을 내뱉는다:

1. 흑인(프랭크 삭스) : 멜빈은 영화 초반에 사이먼과 마주쳤을 때, 사이먼의 애인인 프랭크의 인상착의를 이렇게 표현한다. "왜 알잖아, 진한 당밀 같은 (색깔에), 말썽이나 감방 음식 냄새를 맡기에 딱 좋은 넙적한 코에?" ("You know, like thick molasses, with one of those wide noses perfect for smelling trouble and prison food?")

2. 유태인 : 캐롤이 일하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유태인 커플을 보고 멜빈은 즉시 캐롤에게 달려가 "내 테이블에 유태인들이 앉아 있어!"("I've got Jews at my table!")라고 불평하고, 곧바로 유태인 커플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가서는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더 남았소? 식욕이 당신들 코만큼 굉장하진 않은 모양이군?"("How much more you got to eat? Your appetites aren't as bit as your noses, huh?") 그러자 이때까지도 식사 중이었던 커플은 질린 표정으로 곧바로 말없이 자리를 뜬다. (한국 자막에는 이 장면에서 '유태인'이 완전히 생략되고 "내 자리 뺏겼소"라고만 나오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려운 말도 아닌데, 97년도에 무슨 말 못할 정치적 고려사항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3. 히스패닉 이민자 : 사이먼의 가정부 노라(Nora)가 당분간 강아지를 부탁하면서 약간 어색한 영어로 '하나님의 창조물'을 운운하는 고상한 말을 꺼내자 이에 대한 멜빈의 반응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어디서 그렇게 말하는 법을 배웠나? 파나마시티의 호색꾼들 모이는 부둣가 선술집 같은 데서?"("Where'd they teach you to talk like this some Panama City 'sailor wanna hump-hump bar'?") 이 말에 기죽은 가정부는 대꾸도 못하고 슬그머니 물러난다.

코미디는 사실에 근거를 두었을 때 생명이 있다. 멜빈의 이 같은 인종차별적 대사가 불편하게나마 웃음을 자아내고 그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유는, 수많은 앵글로색슨 백인들이 실제로 속으로는 이러한 편견과 우월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적나라한 표현에 수많은 앵글로색슨 백인들이 대리만족의 미소를 짓지 않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얘기하겠는가.

앞서의 1번과 2번 장면 때문에 미국의 주요 소수계 집단인 흑인들과 유태인들이 가만있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헐리우드산 영화에서 이러한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흑인에 대한 모독의 경우 프랭크(쿠바 구딩 주니어 분)가 멜빈의 멱살을 잡기까지 하면서 그를 '손봐'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프랭크가 멜빈과 맞서 시종 당당한 모습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흑인 입장에서는 충분한 보상을 받는 셈이다. 그리고 유태인에 대한 모독의 경우에는, 우선 미국의 유태인들이 그 정도의 모독에 분개할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쓴 제임스 브룩스 감독과 시나리오작가 마크 앤드러스가 모두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이 같은 장난을 할 정도로 이민 역사와 문화가 성숙해 있다.

여기에서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히스패닉 가정부가 봉변을 당하는 3번의 장면이다. 그녀는 억울하게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군홧발에 채인 강아지처럼 제대로 대응도 못해보고 퇴장한다. 그녀에게 반박이나 보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대표하는 인물이 신분(히스패닉)이나 사회적 지위(가정부)면에서 그러한 기회를 부여 받을 정도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인으로서, 아니 정확히 미국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멜빈의 인종차별적 독설을 어느 캐릭터의 입장에 서서 받아야 하는가. (가해자 멜빈의 입장에 서서 본다면 내가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나 인구통계상의 비중으로 따지면 미국사회 계급의 '중요도'는 대충 앵글로색슨 백인, 기타 백인, 유태인, 흑인, 백인계 히스패닉인을 제외한 '유색' 히스패닉인, 아시아계 이민자, 그리고 본토 미국인(인디언) 순으로 정리된다. 1, 2, 3번 중 신분상 나와 가장 가까운 인종은 다름 아닌 3번이다. 내 생각엔 당분간 이보다 좋아질 수는 없다.

삐딱한 시각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나, 소수민족으로서 미국사회를 헤쳐 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사뭇 절실한 문제이다. 백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작품의 동기와 갈등구조, 그리고 그 표현방식을 좀더 세심하게 분석하는 작업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미국영화를 보며 과연 영화 속의 어느 인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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