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마지막날인 12월31일 한나라당은 오전엔 서청원 전대표를 필두로 한 중진들의 조직적 공천 반발, 오후엔 이재오 사무총장의 사퇴와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의 반박 성명 등으로 심한 몸살을 겪었다.
***이재오 "어제 의총장이 한나라당의 모습 그대로"**
한나라당 이재오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에 '살생부'라고 불리는 당내 당무감사 자료가 유출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이 전총장은 그러면서도 "백의종군해 당내 개혁공천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공언, 그를 공격한 중진들과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이 전총장은 "사실 사퇴성명서는 어제 작성했었다"면서 "그러나 어제 의총장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다가 접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의총장에서 일어나는 당내 갈등과 표현이 도를 넘은 것이 많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다"며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한나라당의 모습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이 전총장은 "어제 의총장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군사독재와 싸울 때, 추운 겨울 긴긴 밤을 감옥에서 보낼 때를 생각했다"며 "자기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의도적으로, 기획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구시대적, 권위주의 시대, 군사독재 시대 정치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당 중진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어"한나라당은 전쟁에 돌입했다"며 "장수는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싸움은 전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쟁은 후방도 중요하다"고 밝혀, 총장직을 물러난 뒤에도 당내 물갈이를 위한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전총장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도 아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이 당에 백의종군하면서 공천혁명이 좌절되지 않도록, 내가 좋아하는 많은 젊은 의원들과 함께 감시해서 물갈이가 수구적 움직임에 의해 좌절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전총장은 감정이 복받쳤는지, 기자회견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비상대책위원장만 공석일 뿐, 아직 비대위가 해체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 당내 중진들의 요구와는 달리 비대위를 해체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대변인은 후임 총장 인선에 대해서 "인사위원회가 소집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국회의원선거후보자 공모가 끝나는 12일 정도 안에는 인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연대 "근거없는 음해 중단하라"**
이날 이 전총장의 사퇴 기자회견에는 오세훈, 남경필, 정병국 의원 등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이 함께했다.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은 이 전총장의 총장직 사퇴 기자회견 직후, 성명서를 내고 "당 개혁을 위한 공천혁신이 좌초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미래연대는 특히 정형근 의원이 30일 의총장에서 "미래연대가 자신이 출마할 지역의 경쟁자에게 공천을 주려 한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당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거 없는 음해로 개혁세력을 폄하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정치개혁과 인물교체를 통해 재창당 수준의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연대는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 ▲비대위 해체 ▲총선준비위원회 구성 ▲자료 유출건에 대한 당 지도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최, "당무감사 자료, 근거를 가지고 수정 보완됐다"**
이에 앞서 최병렬 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열고 당무감사자료 작성 과정과 유출된 경위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최 대표는 "당무감사 자료가 구체적으로 수정 보완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근거가 있어 크게 틀리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대표는 "(당내 공천에서) 경쟁관계가 없었을 때 80점을 맞은 사람이 경쟁관계를 고려했을 때 60점으로 내려간 경우가 있다"며 "이런 식으로 B급에서 D급으로 깎인 사람이 십수명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바뀌게 된 이유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다 납득은 가더라"며 "그 자체가 다른 의도로 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대표는 "당무 감사의 주된 평가 대상은 대선이나 지방 선거가 우선 반영되고, 지구당 면적이나, 유급 직원 수 등이 주조를 이루고 그 지역에 누가 도전하고 있는가 등 이었다"며 "경쟁력을 나름대로 평가해보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고 당무감사 결과에 대해 대체로 틀리지 않다는 평가를 내렸다.
최 대표는 자료가 언론에 공개된 경위에 대해서도 "내가 총장에게 보고받은 자료에선 (표가) 횡으로 돼있었는데, 이 기사를 보도한 신문사에 확인해보니 세로로 된 것을 받았다고 하더라"며 "내 상식은 가로를 세로로 쉽게 바꿀 수 있게, (문서 형태가 아닌) 콤팩트 디스크(CD)로 유출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이재오 사무총장등이 이번 사태와 관련 물러난 것과 관련,"이재오 사무총장이나, 박승국 사무부총장, 조직국장 모두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공당의 입장에서 달리 선택의 길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재오 총장 사퇴로 일단 분당이라는 극한적 파국은 면한 것으로 보나, 새 사무총장을 뽑는 과정을 시작으로 1월 공천심사가 본격화되면서 대폭 물갈이를 단행하려는 최병렬 지도부와 비주류인 서청원계간의 대립이 극한적 대립상황으로 치달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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