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23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의에 나서지 않겠다"며 그대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등 현정권과의 전면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야당은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산적한 현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국정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병렬 "국회 무시하는 대통령을 이대로 방치 뭇해"**
최 대표는 대통령의 재의 요구를 "헌법 기본정신을 무시하고 국회의사, 국민의 의사를 정면으로 짓밟는 사태"라고 규정한 뒤 "재의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전면 투쟁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국회의 3분의 2가 이를 찬성하느냐 안하느냐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자는 게 거부권행사의 뜻이 아닌가"며 기자들에게 반문한 뒤, "특검법은 이미 3분의 2로 가결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재의를 요청하는가"라며 대통령의 재의 요구는 정당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나는 진정코 이런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거듭 언급한 뒤, "그러나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국회를 짓밟고, 국민의 여론을 외면하는 대통령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거부권 행사시 대통령을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최병렬 "마음속으로는 이미 (투쟁 방법) 결정했다"**
최 대표는 전면 투쟁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했다"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생각한 바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우리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또 의원들의 의견을 들은 뒤에 만약 다수가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우리 의원들의 설득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밝혀 의원총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면투쟁의 방법으로 ▲대통령 탄핵 ▲의원 총사퇴 ▲국회 등원 거부 및 장외투쟁 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24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의결해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홍사덕 원내총무도 지난 21일 의총에서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그 다음날이라도 본회의를 열어 단칼에 처리하겠다"며 "27일 경에 의원 분들은 서울 근교에 머물러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재의 통과 자신없어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22일 이재오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날 최 대표의 재의 거부까지, 한나라당의 입장이 선회하게 된 것은 재의결시 부결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1일 신행정수도특위 구성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 재의 부결 가능성에 크게 작용했다. 신행정수도특위가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자민련과 한나라당 내의 충청권 의원들이 크게 반발, 특검 재의결에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국회법상 재의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된다는 것도 한나라당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한나라당의 공조를 비판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계속된 폭로 공세를 비난했던 한나라당 내 소장파 의원들 일부가 비밀 투표라는 점을 이용해 반대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재의가 두려워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이 결단코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신행정수도 문제를 포함한 문제의 법 세 가지는 별도로 만들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혀 자민련과 당내 충청권 의원들의 협조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한나라당은) 집단적 생떼 수준"**
최 대표의 이날 기자간담회 내용에 대한 청와대와 각 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청와대는 "법질서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한나라당 모두가 잘못이 있다는 양비론을, 우리당은 '정권찬탈투쟁'이라는 격한 용어를 써가며 강하게 비난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과 나라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급하더라도 스스로 헌법을 존중하고 법질서를 지켜주는 자세를 갖춰주기를 바란다"고 최 대표의 이날 기자간담회가 법질서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변인은 오후 구두논평을 통해 "(최 대표와 한나라당이) 다급하긴 다급한 모양"이라며 이같이 말하고 "최 대표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정략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생떼 수준에 다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김성순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결정한 특검을 대통령은 겸허히 수용해야 하며,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국민을 무시한 것"이라고 대통령의 특검 수용을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비리는 묻어두고 산적한 민생문제와 국내외 현안, 예산 심의를 팽개친 채 무한투쟁을 벌인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는 국가적 불행"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당 정동채 홍보위원장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 던지고 바로 정권찬탈투쟁에 들어가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며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정권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은 나라와 경제가 어찌돼가든 국정혼란을 일으키겠다는 후안무치한 의도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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