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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꿈’과 ‘미완’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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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꿈’과 ‘미완’의 마을

-헤이리 페스티벌이 우리에게 남긴 것-

"이탈리아에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에 시카고 아트페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헤이리 페스티벌이 있다"

10월 3일 개막한 '헤이리 페스티벌 2003'이 지난 19일 막을 내렸다. 15만평의 부지에는 10여 채의 건축가들의 예술 실험이, 군데군데에는 숨어 있는(?) 환경 설치미술과 특별 주제 전시가 있었다. 노을 음악회, 인디락 콘서트, 마당극 야외무대공연도 있었다. 어린이들은 예술체험마당에서 즐거워했고, 사람 흔적 없던 이곳 파주 통일동산은 '헤이리'가 17일동안 불러들인 4만 3천여명의 사람들로 조금 '특별한' 잔치를 치뤄냈다.

<사진 헤이리 페스티벌>

헤이리는 파주시 법흥리 통일동산에 15만평 규모로 조성중인 문화예술마을이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파주 전통농요 '헤이리 소리'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97년 영화, 미술, 음악, 건축, 공연, 출판, 방송, 대중문화 등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 370여명이 뜻을 모았다. 2003년 8월 부지조성공사가 완료된 후 현재 50여동의 영화촬영소, 아트센터, 갤러리, 박물관, 작가 스튜디오, 공방 등이 준공되고 있다. 현재는 헤이리 마을의 마을회관이라고 할 수 있는 '커뮤니티 하우스'를 비롯 10여동의 건물이 있으며, 2005년까지 300여 채의 건물과 5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상주할 예정이다.

<사진 이종욱 시인의 북까페>

*** 헤이리엔 특별한 것이 있다 **

헤이리 노을음악회 기획자 이소영씨는 헤이리의 의미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소외 지역이자 긴장의 공간이었던 파주 통일동산이 자연환경을 훼손치 않는 일상적 축제공간이 된다는 점, 건축 코디네이터가 도시 전체를 기획한 국내 유일한 마을이라는 점, 공동체 회원들의 자발적 지원과 기획으로 이뤄진다는 점, 그럼으로써 거대자본의 문화상품 전략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예술 실험이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사진 극-소리-움직임>

미완의 마을이 완성되기도 전에 공개됐다. 헤이리측에서는 마을이 완성되는 '과정'을 '공유'하고 이 마을이 추구하는 문화적, 환경적 가치를 같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랬다. 헤이리 사무국장 윤성택씨(시인)는 "페스티벌을 이벤트 외주 업체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시행착오도 겪고 미숙한 점도 있었"지만, "이번 행사로 헤이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취지에 공감했다는 성과가 있다"고 자평했다.

<갈대밭 종다리 2>

*** 17일간의 헤이리, 그동안 무슨일이?**

'페스티벌'은 끝났지만 마을공동체는 계속 된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문화공동체 마을 헤이리. 지난 17일간 대중과 만났다. 그동안 헤이리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 찬사와 비판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현재 헤이리가 처한 '어려움'은 무엇인고 그럼에도 지켜나가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헤이리 사무총장인 이상(46, 전 실천문학사 대표)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프레시안 : 헤이리가 대중과 만났다. 어떤 성과가 있었으며,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나?

이상 사무국장 : 원래 프레(Pre-)라는 이름을 페스티벌에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자칫 '모색'이 아니라 '미숙'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어 '헤이리 페스티벌 2003'으로 정했다. 뭘 잔뜩 지어놓고 '즐겨라-!'가 아니라 관객들이 개입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 고민하고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하는 공간이고자 했다.

관객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이게 뭐냐? 뭘 보고 뭘 느끼라는 거냐?'와 '너무 좋다. 또 오고 싶다'다. 그 외에 내용을 떠나 행사 준비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나친 '서비스'는 경계하려고 했다. 하나의 건물과 도시가 만들어지는 태동기를 같이 지켜보고 경험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관객들이 헤이리에서 여러 가지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느끼고 '고민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길 바랬다.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헤이리를 즐기고 돌아갔다.

<어린이 체험마당>

프레시안 : 일반인에겐 현대건축과 현대미술이 생소하다. 헤이리실험에 대해 일반대중들의 접근도를 높이기 위한 준비는 충분히 했었나?

매일 하루에 두 차례씩 설명을 곁들인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부족했다. 자원 활동가들도 행사 시작 며칠 전에 소집해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헤이리 전반에 대한 이해도나 행사요원으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헤이리를 더 잘 이해하며 같이 커갔다. 나중에는 '이렇게 좋은 의미가 있는 것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워했다. 그밖에 편의시설 부족등 시스템이 미흡했던 것은 인정하며 앞으로 시정할 생각이다.

<활자탑>

관객들이 헤이리에 대해서 대략은 알겠거니 생각했던 것도 큰 착각이었다. 어느 정도 헤이리의 취지나 목표에 대해 동의하거나 관심있는 사람뿐 아니라 '헤이리'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부터 길 가는데 뭐가 있길래 한번 들러봤다는 사람까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찾았다. 그러다다보니 헤이리에 생소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헤이리 투어'로 설명을 곁들인 안내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어린이 체험마당 2>

프레시안 : 헤이리는 실제 문화예술인들의 거주와 창작의 공간이다. 페스티벌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헤이리 프로젝트에 동의한다. 그러나 건축전 중인 건물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공개'와 '프라이버시'사이의 갈등도 없지 않았다. 자기 집에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만져보면 누구라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무료였던 야외 공연에서는 애들은 막 울고 별 흥미가 없으면 중간에 나가버리는 통에 공연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마당극>

프레시안 : 여기 예술가들은 관람태도가 바로잡힌 양식 있는 사람들만 원한다는 것인가?

흔히들 귀족주의나 엘리트주의라며 오해하는데, 기본적으로 헤이리는 폐쇄적인 '주거단지'가 아니라 '도시'다.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열린'상태를 지향한다. 담을 만들면 안 된다는 내부규정은 바로 헤이리의 정신을 보여준다. 아까 그분들도 폐쇄적인 자기만의 공간이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갈등한 것이다.

다만 예술가들 중에는 그저 많이만 와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봐줬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인원이더라도 작품의 의미를 같이 밀도있게 음미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헤이리 소리>

주거와 창작과 소통의 공간이기에 열려야 된다는 전제엔 누구나 공감하지만 '어느 정도로 열려야 하는지'는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동시에 성숙한 관람태도도 필요하다. 각종 전시와 공연은 상호소통이다. 다음 페스티벌부터는 공연에 소액의 돈을 받을까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얼마의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태도를 막기 위해서다.

앞으로는 클래식, 세미클래식, 대중성을 가진 전시와 공연으로 분화시켜서 다층위의 관객들이 골고루 만족하는 복합적인 공간을 만드는데 노력할 것이다.

<인디락 콘서트>

프레시안 : 경기도와 파주시에서 재정지원을 받았다. 앞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가?

이 실험이 기본적으로 수익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재원마련이 시급하다. 일반 시민, 기업들이 기부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들려고 한다. 그를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어 놓았으나 기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지정기부금단체'로 선정받아야 한다. 지정기부금단체는 민법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으로 사업목적에 공공성이 있어야 선정된다. 선정 받는 절차도 복잡한데다 '공공성'은 보통 가시적인 성과를 기초로 인정받기 때문에 아직 '태동중인' 헤이리는 가능성만으로는 공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가시적인 실적이 뚜렷치 않은데 목적의식적으로 사업을 지원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것이다. 문화부는 이 프로젝트를 기본적으로 지자체 소관이라고 보고 있는 편이다.

프레시안 : 파주시의 반응은 어떤가?

파주시는 헤이리에 긍정적이다. 이정표설치, 주차장 보완 등 행정적 지원과 함께 공사 진행상에 있어서도 우리의 재량권을 최대한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헤이리가 파주에 위치했지만 파주주민들의 정서와 요구를 담아내는 공간은 아니라며 지속적인 지원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프레시안 : 헤이리가 파주시에 득이 되지 않는 다는 건가?

헤이리가 파주에 있으니 파주인들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런 역할은 기존의 '율곡문화제'가 하고 있다. 헤이리는 앞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곳으로 키워져야 한다. 지리적 여건도 좋다. 영종도와 40분 거리이고 개성과도 가깝다. 냉전과 긴장의 땅에 문화예술을 꽃피운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 이런 '국제성'에 중점을 맞추자면 '지역성'을 일정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다. 파주 헤이리 마을이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고 국제적인 명소가 된다면 파주시로서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다.

프레시안 : 헤이리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일반 대중들의 생활환경이 변하지 않는다. 헤이리가 자족적인 해방구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면 현재 난개발의 토대위에서 살고 있는 일반대중들의 생활환경 발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생각인가?

원래 이 마을을 기획할 때부터 기존 도시개발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친환경적인 건축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판 못지않게 대안제시도 중요하다. 동시에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우선은 우리가 '대안'을 '실험'하는 것 자체가 비판적 담론이 형성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갈대숲>

헤이리는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법규와 부딪치고 행정과 협의하면서 수많은 우여곡절끝에 여기까지 왔다. 게다가 재정문제를 포함해 앞으로 넘어야 할 장벽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마을이 조금씩 완성되어 갈수록 이런 취지가 전파되고 또 다른 실험들이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예술가들에 의한 것일 필요는 없다. '성격'과 '양상'은 달라도 패러다임은 같이 할 수 있기에 공무원, 학자들도 얼마든지 같이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쌓은 경험과 노하우에 대한 문의가 있으면 언제든지 컨설팅할 생각이다.

전체 도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도 나무 하나를 위한 구불구불한 길이라던가, 참신한 가로등 디자인이라든가 새로운 건축, 도시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와 시도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헤이리 페스티벌도 이런 인식이 전파되고 실험의지를 고무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헤이리 전경>

프레시안 : 헤이리 문화 마을의 건설 자체가 '기여'라는 말인가?

그렇다. 물론 페스티벌이 끝나면 잠시 잠잠해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활동과 성과다. 고무적인 현상은 헤이리를 방문해본 많은 문화예술계의 기획자들이 호평을 보낸다는 것이다. 헤이리가 적격이라며 공연제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물론 페스티벌 프로그램 각각을 놓고 평가하자면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때로는 더 잘할 수 있다. 헤이리는 아직은 총체적으로 봤을 때야 의미부여할 수 있다. 공감을 얻어가는 단계다. 아직은 그 정도 성과에 만족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과 비전이다.

<소리나는 종나무>

프레시안 :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에도 페스티벌을 할 생각인가?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시기와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드러난 성과와 반성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정된 시기의 종합적인 진행이냐, 지속적인 장르별 진행이냐도 고민이다. 장르별로 한다면 '청년미술제', '동아시아 건축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점을 규모와 흥행성에 두지는 않을 생각이다. 문화적으로 의미 있으면서 현재 빠져있는 부분에 중심을 둘 것이다.

헤이리의 마을회관인 '커뮤니티 하우스'를 나서니 헤이리의 바람은 정말 은은한 소리였다.

<평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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