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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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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2>

중학교 가정시간 요리 실습할 때는 계량컵과 스푼을 정확히 사용하여야 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라 누구에게서 들은 건지, 가정 선생님께 들은 건지 아니면 텔레비젼의 어느 요리강습자가 한 말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거나 내 머리 속에 박혀 있는 것은 서양 사람들은 우리처럼 주먹구구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계량하여 과학적으로 음식을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이곳 음식을 만들어볼까 하고 가끔 요리 강습하는 것을 텔레비젼으로 보는데, 소금을 스푼으로 재서 넣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한 스푼 넣으라고 말은 하면서도 적당히 털어넣는다. 아니면 아예 적당히 넣으라고 한다. 거의 모든 양념이 그렇다. 적당히 아니면 한 줌 등등이다. 처음에 나는 '아니 이럴 수가, 속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요리 강습보다 더 비과학적이잖아 라고.

이 나라에서 인기있는 요리사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사람이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수입하여 방영하는 이 나라 방송국 덕분에 미국 뿐 아니라 영국 프로그램을 즐기는데, 요리하면 프랑스지 영국은 푹 삶은 시금치 아니면 생각나는 음식이 없던 나에게 영국에도 요리사가 있나 하는 거의 영국모독적인 생각을 하게 한 장본인이다. 이미 결혼하여 아이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직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동안의 얼굴에 혀 짧은 소리(우리 아이의 말에 의하면 혀가 두꺼운 사람들은 그렇게 발음한다고 한다)로 쉴 새없이 떠들며 부엌에서 장난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없이 요리를 하는 남자 요리사다. 이름하여, The Naked Chef.

어려서부터 음식만드는 게 취미였다는 이 요리사는 마늘은 주먹으로 내리쳐서 껍질채 넣고 서양 요리의 감초격인 생 베이질은 손으로 죽 훓어서 넣는다. 야채도 적당히 손으로 뜯어 넣어 어머니가 칼을 대면 맛이 없다고 배추를 손으로 찢어서 겉절이 하시던 생각이 나게 만들며, 소스가 손에 묻으면 손가락을 쭉쭉 빨아가며 음식을 만든다. 만들면서 얼마나 맛이 좋을 건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인지 먹을 것을 앞에 둔 배고픈 사람처럼 침을 꼴깍 삼킨다. 그런 그를 보노라면 일부러 연기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저 사람이 정말로 음식 만들기와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한번은 친구들과 바닷가로 휴가를 가서 놀아가며 아침 점심 저녁을 그가 만들어 먹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디너 메인 디쉬로 그가 만든 것은 연어 요리였는데, 연어 한 마리를 통채로 몇 겹 쌓아놓은 신문지 위에 놓고 소금 적당히 치고 레몬즙을 손으로 쥐어 짜 뿌리고, 마늘은 손으로 내리치고 베이즐은 훑어서 위에 적당히 놓고 이것 저것 뭔지 모를 향신 야채를 얹은 다음 그 신문지로 둘둘 말아 끈으로 묶더니 그것을 양동이에 든 물에 몇 번 집어넣어 물을 충분히 적신 다음 숯불 위에 그대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모래사장에서 배구를 하며 신나게 노는 사이 사이 와서 몇 번 뒤집고는 얼마 지나 신문지가 새까맣게 탄 다음 집어내서 신문지를 걷어내고 같이 시커매진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푹푹 떠내서 친구들 접시에 담아주는 그를 보면서 저 정도되면 요리도 전위예술같은 창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쨌거나 너무 쉽게 요리하는 그를 감탄하는 나에게 남편이 하는 말, “신문지 활자를 찍는 잉크에 납이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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