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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0> 학교이야기 4

같은 동네 사는 한국 사람 집에 놀러갔다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어 길에 나섰지만 이야기가 끊기지 않았다. 그 길은 학교에서 오다가 우리 집으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고 있어서 아이가 오는가 살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옆을 지나가던 키위 남자애들이 Hello, Mrs Gook 이라고 말하면서 낄낄거렸다. 같이 이야기 나누던 아주머니가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인사로 받아들이는데, 나는 소리질렀다. “What did you say?” Gook 이란 니그로라는 말처럼 중국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그 말에 Mrs 라는 말을 붙여서 얼핏 듣기에는 그냥 인사 같았지만 사실은 욕을 한 거였다.

아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흥분해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들이 인종차별하는 거라고. 그랬더니 아이가 하는 말 “뭐 그런 것 가지고 화를 내고 그래, 화를 내면 엄마가 지는 거야. 그런 애들은 어디나 있어.” 나는 이 나라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일을 당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아이가 하는 말에 놀랐다. “너도 그런 일을 당해보았니” 하는 나의 물음에 아이가 대답하는 말 “국민학교 때부터 있었어.” (그러니까 이 일이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뭐라고 그랬는데?”

“미끄럼 탈 때 내가 타고 있으면 Chinese girl 비켜 뭐 그런 식이지.”

“그건 별로 욕하는 것 같지 않은데?” 하는 말에 우리 아이는 아니라고 그게 욕이라고 했다.

“지금 중학교에서도 그러니?”

아까 그 아이들도 중학교 아이들이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학교의.

“응 동양 아이들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동양 아이들이 지나가면 욕을 하는 아이들이 있어, 그런데 사실은 동양 아이들 대부분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웃기 때문에 그런 애들은 재미있으니까 계속 그러는 거야. 여기 아이들은 동양애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영어를 못하니까 바보라고 생각해.”

“너한테도 그러니?”

“학교에서는 반 아이들이 나한테 그러지 못하지, 그런데 집에 올 때 건너 편에서 걸어가는 남자애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애들이면 잘 그래, 나를 향해 욕을 할 때가 있어. 그러면 난 그냥 안 있지, 그 아이들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욕을 해주면 멍하니 쳐다보다가 도망가. 어떤 때는 내 친구들이 같이 나랑 소리지르면서 욕을 해주거든.”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지 않았니?”

“하면 뭘 해, 엄마가 기분 나뻐할텐데, 그리고 거의 날마다 있는 일이니까 집에 오면 다 잊어버리거든. 그리고 그런 애들은 어디나 있어, 한국에서도 있었고, 자기들끼리도 약한 아이들에게는 강하고 강한 아이들에게는 약하고 그러니까 무시하는 게 최고야, 그러다가 정 기분 나쁘면 나도 같이 속사포로 욕을 해주면 돼. 지네들보다 더 말 잘하는 줄 알면 못 그러거든.”

아이는 그런 일을 특별히 인종차별이라고 느끼기보다는 어디나 있는 못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라고 권하는 게 나보다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키위 아이들이 욕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 아이들이 욕하는 것을 더 괴로워한다. 우리 아이가 이곳에 왔을 때 같은 학년에 여자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을 뿐. 그러니까 거의 1년 반 동안을 친구 없이 지낸 셈이다. 키위 아이들과도 친구 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아이 생일에 초대하기도 하고, 너그러운 키위 엄마들이 자기 아이와 우리 아이를 친구 만들어 주려고 우리 아이를 초대하기도 했지만 아이들까리 성격이 맞아야 친구가 되는 거지 억지로 어른들이 분위기를 만든다고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잠시 친구해 줄 뿐. 이미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말도 잘 못하는 아이와 호기심으로 몇 번 놀아주는 것도 잠시다. 아이가 아직 친구가 없이 혼자 논다는 게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아이는 걱정하는 나에게 자기는 혼자서도 재미나게 노는 법을 아니까 염려하지 말라, 자기는 심심한 적이 없다고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들면서, 다행히 정말 혼자 잘 지냈다, 책하고 아니면 가끔 끼어주는 키위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나서 이민 붐과 함께 한국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도 친구가 없었다. 어째 한국 아이들 하고도 놀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나에게 한국 아이들이 노는 자리에 갔더니 너는 왜 여기에 왔니 하면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동급생이 다른 아이들보고도 우리 아이랑 놀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왕따를 당한 셈이다. 그래서 한국 아이들과는 안 논다고 했다. 그렇게 씩씩하게 이쪽 저쪽 진짜인 친구없이 2년 이상 버티더니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고 선생님이 표현할 정도로. 그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친구다, 7,8년 된. 가끔 한국 친구 없는 걸 걱정하는 나에게 아이는 말한다. 한국 아이든 키위아이든 서로가 좋은 친구가 되면 친구이고 아니면 아니라고.

사실 우리 아이는 키위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그 아이들 하자는 대로 다 받아주지는 않았다.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학용품이 이쁘고 풍부한 한국아이에게 그런 것을 얻어 갖기 위해 일부러 친한 척하면서 이용하는 영악한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과는 친할 수가 없고 못되게 구는 키위와는 싸움도 불사한다. 어쨋거나 학교에서 키위 친구들과 다니는 우리 아이를 한국 아이들은 이쁘게 보질 않는 모양이다.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와서 들려준 이야기.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한국 애가 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친구에게 ‘누구야, 그 년 들어왔다’고 하면서 자기 듣는 데서 욕을 하더란다. “내가 한국말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한 달쯤 되면 스트레스가 쌓여 울고 싶어질 정도라고 했다. “키위 애들은 전에처럼 그러는 애들이 없니?” “키위 애들도 여전히 그러는 애들이 있지. 그런 애들은 무시하다가 나도 같이 욕해주면 되는데, 그래도 한국 애들이 그러는 게 더 속상해.”

집에서 영어로 말을 하지 않으니, 영어로 욕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영어로 욕하지 못하게 만들 기회조차 없어서 그런가 우리 아이는 영어로는 욕을 할 줄 안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는데, 한국 말로는 욕을 듣고도 그냥 속상해만 하고 가끔 집에서 그 이야기하면서 훌쩍이는게 한국말 욕을 몰라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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