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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때문에 배운 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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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때문에 배운 말(言)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4> 영어이야기 6

우리 아이가 영어에 자유로워지게 된 것은 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읽는 것과 말하는 데 있어서는. 읽는 이야기는 이미 했고 말을 말 때문에 잘 하게 되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온 지 3년이 다되어 가도록 성적표 영어란에 선생님의 코멘트는 아직 말하는 것을 수줍어한다. 특히 앞에 서서 이야기 하는 것을. 이제 토론하는 데 조금씩 참여하고 있다 정도였다. 3번째 성적표 받아오고 나서 시작된 방학 내내 우리 아이는 포니 클럽에 가서 살았다. 처음 자기 말을 산 지 2달 밖에 안 되어서 아직 그 흥분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가족과 어디 놀러가는 것도 거부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빵 한쪽 가지고 가서 살다 왔다.

말하고 영어로 말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 때문에 영어 말을 잘하게 되었다는 말은 웬 말? 방학이라 아이들이 수시로 포니 클럽에 가서 말을 타고 말을 돌보며 놀았다. 여기 아이들이랑 한 달여를 하루 종일 영어로 말하며 놀다보니 그 동안 머리 속으로만 쌓여있던 말들이 터져나오며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린 거다. 그 방학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말하는데 듣기가 거북했다. 오래 미국에서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혀꼬부라진 한국말은 아닌데, 우리 아이 말이 뭔가 듣기에 답답했다. 남편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도 별로 나처럼 느끼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아이가 말할 때 유심히 쳐다보았다, 입을.

아, 그렇구나고 깨달은 것. 아이가 몇 주일을 눈뜨면 포니 클럽에 가서 해질 무렵에 와 밥 먹고는 골아떨어지면서 우리하고는 이야기하는 시간이 거의 없이 이곳 아이들 하고만 떠들더니 말하는 입의 놀림이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은 입의 놀림이 아니라 혀의 놀림이다. 우리 말은 똑똑 떨어지는 단절음으로 이루어지는데, 내가 언어학자가 아니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 관찰로는, 영어는 l자 말고는 혀를 별로 많이 구부리는 발음이 없어서 주로 혀를 입 아래에 깔아두고 발음하는데, 아이가 영어하듯이 혀를 별로 움직이지 않고 한국말을 하니까 내 귀에 답답하게 들린 것이다.

영어를 제대로 못할까봐 염려하던 것이 이제는 한국말을 제대로 못할까 싶은 염려로 옮겨갔다. 궁리 끝에 날마다 자기 전에 남편이나 내가 읽어주던 한국말 성경을 아이보고 소리내서 읽게 시켰다. 왜 우리가 안 읽어주고 자기가 읽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그렇게 한 일년 정도 성경을 소리내어 읽혔다. 그 결과는 몇 주일 읽지 않아 다시 한국말 발음을 제대로 한다 싶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어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이 절대 다수인데다 말을 하는 내용이나 양도 집안에서 한국 말하는 시간에 비해 훨씬 늘어났으니 아이의 말이 약간 어색하게 들린다 하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지만 한국에 도루 가서 1년만 살면 아무 문제도 아닐 일이기 때문에 남편이나 나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말 덕분에 영어 말이 터진 아이는 이제 자기 스스로를 talkative 라고 할 정도로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서너 시간 전화로 수다떠는 일이 보통이라 아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남편이 아이 방에 전화기를 놔주었다 누워서 전화하라고, 팔 아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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