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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2> 영어이야기 4

우리나라의 9시 뉴스에 해당하는 것이 여기서는 6시 뉴스이다. 저녁 밥 준비하면서 대충 듣는 뉴스 시간에 내가 몇 년간 헷갈렸던 단어는 career와 Korea이다. 커리어 발음하는 것이 왜 코리아 라고 하는 것으로 들리는지 우리나라에 무슨 일 일어났나 하고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어 텔레비젼을 보면 상관없는 뉴스다. 또 속았구나, 장면이 한국과 관련없는 것으로 보아. 2, 3년 지나서야 그 발음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제일 알아듣기 힘들었고 알아듣기 시작하는 데 오래 걸린 영어는 아이들 영어이다. 온 지 1년 지났을 때쯤 우리 교회에 손님이 왔다. 초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원봉사 단체에서 온 사람이 그 일을 같이 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이들 영어야 단순할 테니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예배 후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닌데 나도 할 수 있겠냐고. 그 사람은 반색을 하면서 동양인 아이들이 있는 초등학교도 많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영어를 말할 기회도 되겠다는 아주 순수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동기가 있었기에 그 말에 약간 실망을 했지만 내가 필요한 일이라면 하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험이 없는 관계로 이미 십 년 넘게 가르쳐온 베테랑 아주머니의 보조교사를 하게 되었다.

이 나라는 5살 생일이 지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입학식이 따로 없고 생일 지난 다음 날부터 그 다음 학년 새로 시작하는 날까지 그 부모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날 학교에 데리고 가면 된다. 그래서 학년 초에는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다가 점점 늘어나는 게 일학년이다. 그 일학년이 그 아주머니 선생님의 반이었다. 다행히 한국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 협회에서 생각하는 대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일은 아이들이 성경 공부한 것에 대해 만들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되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던 그것에 자기 이름을 쓰고 싶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게 아무리 일학년이라지만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애들이 별로 많지 않아 이름 써주는 일이 주로 내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이들이 불러주는 스펠링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a를 말하는지 e를 말하는지 I를 말하는지 구별할 수가 없어서 내가 이거니 저거니 되물으면 아이가 또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데 이건 정말 난감하다 못해 자존심 어쩌고를 말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나는 일년만 채우고 도저히 내 영어 실력으로는 안되겠다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 선생님이 네 영어 괜찮다고 아무 때나 다시 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전화하라고 했지만 그냥 해주는 말로 들렸고 나의 구겨진 마음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뒤에 이 나라 사람들끼리도 스펠링을 말할 때는 서로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a for apple, b for book 하는 식으로 단어를 붙여 말해준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마음의 위로를 조금 받기는 했지만 꽤 오랫동안 아이와 말할 상황이 되면 겁부터 났다.

아이의 말이 가장 알아듣기 힘들다면, 나의 경우,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경우라고도 할 수 있지만, 교육받은 60대 이상의 사람들 말을 알아듣기가 가장 쉽다. 우선 발음이 거의 사전 그대로 이고, 속어를 안 쓰고, 젊은애들처럼 바람에 날려가듯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러 천천히 말해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배운 단어군을 사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을 알아듣는 데 있어서 발음 말고 더 중요한 요소는 사실 그 말의 내용이다. 내용에 따라서 나의 듣는 실력을 스스로 감탄스러워 할 정도로 기가 막히게 잘 듣거나 아니면 정말 말이 아니라 그냥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음처럼 한 마디도 귀에 걸리지 않는 말이 있다. 내가 가장 쉽게 잘 알아듣는 것은 목사님의 설교다. 내가 거의 아는 이야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설교 중에 못 알아 듣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이곳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예화거나 우스운 이야기 등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처음에는 무척 긴장했다, 나만 못 알아 듣는 것 같아서. 그런데 얼마 지나고 보니 우습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웃는 사람, 또는 그 배경을 모르면 아무리 키위라도 무슨 말인지 우습지가 않아 웃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나도 내가 알아듣고 우스울 때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언젠가 아마추어 합창단 공연에 갔을 때 그 사회자가 뭔가 농담을 했는데, 청중의 절반은 포복절도를 하고 나머지 반 쯤은 왜 웃는지 모르는 표정들이었다. 나를 데리고 간 할머니 말씀, 아이리쉬 농담인데, 그곳 출신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이라고, 그러니 무슨 말인지 몰라도 신경쓰지 말라고. 지금도 그 농담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물론 모른다.

그러니까 아는 이야기가 쉽게 잘 들린다. 모르는 이야기는 아무리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해도 못 알아듣는 것은 우리나 일반인 것이다. 중학생이 대학교수의 철학 강의를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어도 변호사는 변호사끼리 쓰는 말이 있고 전기기술자는 전기기술자끼리 쓰는 말들이 있어서 서로 분야가 다른 곳에 들어가면 아무리 키위라 할지라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다. 거기다가 연령, 교육, 직업, 태어난 곳, 영국이라면 여기에 계층까지 들어가겠지만, 이런 것들이 사용하는 단어군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들어도 원래 알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그냥 들리고 몰랐던 분야로 가면 미리 읽으라고 나누어준 글을 읽어가지 않는 한 대충 감으로 알아듣는 수밖에 없다. 미리 읽으라고 한 것과 상관없는, 강의 외적인 이야기를 하면 감도 잡을 수가 없고. 이것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는 무슨 말하는지 알아도 상황을 모르면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그룹에 속하게 되면 일단은 줄창 듣기만 한다. 그러다 보면 아 무슨 말들을 하고 있구나 하는 감이 먼저 잡히고 그러고 나면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양과 질이 한 단계 높아지고 그러고 나서야 말을 끼어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영어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 나의 영어 실력은 어떤가. 읽고 이해하는 속도는 여기 사람에 별로 많이 뒤지지 않고, 듣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 말고도 그 날의 기분과 몸의 컨디션에 따라 신나게 들리다 말다 그러니까 거의 알아듣는 수준에서 소음으로 들리는 수준까지 일정치 않고, 쓰는 것은 엔간히 써서 전화로 문의하는 것보다는 편지쓰는 것을 선호하고. 그 다음 아래 수준, 최하의 수준이 말하기이다. 말하는 것 또한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편차가 있다. 밤잠 설친 날은 단어조차도 잘 생각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과 처음 말을 나누었을 때의 느낌에 따라 말이 풀리기도 하고 엉겨붙기도 한다. 말하자면 처음 말을 하는데,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그 사람과는 말을 할 때마다 더욱 더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처음에 내 말을 잘 알아들었던 사람과는 다음에도 마찬가지로 말하기가 쉽고 만날수록 말이 늘어난다.

어쨌거나 영어로 인해 내가 내린 결론, 언어 능력은 하나가 아니라 별개의 네 가지 능력의 합성이라는 것이다. 읽는 것이 재미있어 신날 때는 말 배우는 게 더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이 터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내가 영어로 술술 말하는 날이 오리라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글쎄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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