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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뉴질랜드를 따뜻한 남쪽 나라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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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뉴질랜드를 따뜻한 남쪽 나라라 했나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8>

아무도 나에게 뉴질랜드가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속았어 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거나 정말 속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온돌을 그리워했다, 거의 7,8년간을. 이곳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이곳에 너만 왔냐 네 가족도 있냐? 이 때 가족은 나의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을 뜻한다. 남편과 아이 말고는 이곳에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면 고향이 그립겠구나 라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끄덕이지만 솔직히 그런 말 들을 때 말고 날마다 정말 절실하게 그리운 것은 따뜻함이었다.

사실 해가 나면 기가 막히게 따뜻하다, 온돌이 없더라도. 그래서 햇빛이 나면 햇빛을 따라 이방 저방 옮겨다니며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기분이 밝아지지만 비라도 추적거리면서 그칠 기미 없이 하루 종일 구름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날이면 속았어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굶는 것은 참아도 추운 것은 참기 힘든 나에게 뉴질랜드는 일년 열두 달 중에 열 달이 추운 나라였다. 거의 일년 내내 에어메리를 아래 위로 다 입고 살아야 하는 나는 차라리 쨍 하게 얼어붙는 추위가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집에 난방시설이라도 있을텐데.

제일 추운 겨울이라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10년 가까이 살면서 0도가 되었던 날은 딱 하루, 4-5도 정도로 내려가는 날도 드물고 아침 기온이 적어도 8-9도는 되는 겨울 날씨를 가지고 내가 너무 불평을 하는 것 같지만 해가 안 나는 날 으슬으슬함은 맵싸한 우리나라 추위보다 마음을 더 시리게 만든다. 얼어죽을 정도로는 춥지 않기 때문에 집 자체에 난방이 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거실에 벽난로든 탄 난로이든 난로가 하나 정도 있을 뿐. 어쩌면 이것은 내가 북섬 오클랜드에 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도 남극에 더 가까운 남섬에 있는 집들은 대체로 난방 시설이 되어 있다고 하니까.

40년 된 우리 집도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다, 장작을 피워야 하는. 그래서 분위기 좋아하는 남편은 겨울에 벽난로 땔 생각에 즐거워했다, 이 집에 이사온 그 여름에. 못된 나는 벽난로까지 청소할 마음이 없으니까, 벽난로에 불을 지피면 벽난로 청소까지 할 생각을 하라고 말해두었다. 벽난로 있는 집에 살았던 친구를 보니까 그 일이 예사 일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벽까지 순식간에 그으름으로 까매지는 것을 보아왔기에. 그러나 청소 문제는 표면적인 이유였고, 벽난로가 사실 바로 그 앞에 앉아서 불을 쬐어봐야 몸 앞면이 따뜻해질 뿐 등은 여전히 시리다는 데 속 이유가 있었다. 나무 사는 돈이면 차라리 전기 난로 키고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싶어서, 또 전기난로는 청소거리를 만들지 않고.

우리 집은 방마다 전기 난로가 천정 바로 밑 한 벽에 부착되어 있기는 하다. 난로라기보다는 전열선이 하나 있는 전열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이것을 키면 빨갛게 달아올라 잘 때 눈을 성가시게 한다, 방 전체를 충분히 따뜻하게도 못하고. 그래서 침대에 전기담요를 깔아놓고 따뜻하게 자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얼굴이 시리다. 우리나라 옛날 스팀 히터처럼 생긴 전기 난로를 방에다 들여놓고 자면 공기는 따뜻하지만 공기가 너무 건조해지고 답답하다. 오늘은 어떤 난방기구를 이용해야 할지, 전기난로를 킨다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켜야 할지, 전기 담요를 킨다면 몇 도에 맞추어야 할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따뜻하면서도 쾌적하게 잘 수 있는지를 의논하는 게 남편과 나의 잠자기 전 일과가 되었다.

난방 종류를 잘 선택하고 온도를 맞추려고 당연히 날씨가 어떨지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고 그래서 남편이나 아이는 뉴스 시간에 일기예보 나오면 나를 열심히 부른다.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이라고 놀리면서.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을 확률은 여기도 거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기예보를 보고 잠자리 온도를 맞추어도 자다가 깨는 일이 일상이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워서 온도를 다시 맞추려고. 어쩌면 밤새 기온이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이 곳 추위에 대한 투덜거림과 한국 아파트의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이 변함없었다, 이곳에 와 5,6년이 지난 어느 겨울 날까지. 집 안이나 집 밖이나 온도 변화가 거의 없는 집에 살다보니 겨울에는 집에서도 당연히 두툼한 세타를 입고 지냈는데 아는 이웃 집에 놀러갔다가 찜통에 들어간 것처럼 숨막히는 경험을 했다. 그 집은 이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중앙 난방 시스템이 있어서 온 집 안에 히터를 켜 놓고는 열효율을 높이려고 창문도 꼭 닫아두었던 것이다. 겨울 옷 차림으로 그 집에 들어간 나는 추위를 못 참아 하고 따뜻함을 그리워했던 것이 언제냐 싶게 환기 안되는 상태의 훈훈함이 갑갑하게 느껴지고 차라리 서늘한 것이 낫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 내가 그 사이에 변했구나, 나도 모르게 이곳 날씨에 몸이 적응을 했나 보다 싶고. 그 뒤로부터 날씨에 대한 불평을 덜 한다. 그래도 아주 안 한다고는 말 못한다, 원래 날씨란 것은 여기나 저기나 변덕스러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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