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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말은 사람처럼 변덕스럽지 않아"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6> 딸과 말-下

말똥 냄새까지 좋아서 시작한 우리 아이의 포니 클럽 생활이 그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끝이 났다. 그 땅이 개발업자에게 팔려버려 다른 땅을 빌려야 했다. 그 일을 위해 부모들이 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저기 알아보아 우리 동네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땅을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20년의 클럽 역사를 마감하기로 했다. 이미 너무나 많이 줄어든 회원으로는 그 땅을 빌리는 것이 우리 힘에 벅차고 아무 시설도 없이 땅만 가지고는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회원들은 알아서 근처의 다른 클럽으로 옮겨가든지 포니 클럽 생활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가 들어간지 2년 뒤의 일이었다.

나는 아이가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대상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가까운 어느 클럽에든지 옮겨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너군데 다른 클럽을 놓고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어디는 아이들이 속물이라서 싫고, 말하자면 말 타는 기술보다는 승마 옷이나 말 치장하는데 더 열중하고 잘 난 체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였다. 또 어디는 멀어서 가기가 싫고, 어디는 이미 자기네 멤버가 옮겨 갔는데, 그 아이가 있어서 싫고 등등. 나는 의외의 반응에 속으로 실망을 했다. 벌써 싫증을 내는 걸까, 왜 끈기가 부족한 것일까 라고. 나의 그런 속마음이 당연히 아이를 슬슬 다그치게 만들었다. 다른 포니 클럽에 가지 않으면 말을 어디에다 둘거냐고, 사실 이것은 실질적인 문제였다.

내가 계속 못살게 굴자 아이가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학생까지 있었던 그 클럽에 우리 아이가 가장 어린 나이(10살)로 회원이 되었는데, 친절하게 대해주는 아이도 있었지만 못되게 구는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자기 맡은 구역의 말똥을 다 치우고 나면 그 쪽으로 말똥을 다시 던져놓고는 치우지 않았다고 비난한다거나 한국에 돌아갈건지 물어보고 여기서 계속 살려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라는 둥 말로 귀찮게 아니면 기분 나쁘게 만들거나 편을 만들어 따돌리는 등 못살게 구는 아이가 있었다는 거다.

이 부분에서 내가 좀 헷갈리는 것은 우리 아이가 인종차별을 받은 건지 그냥 텃세를 당했는지가 분명치 않은 거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인종차별 당한 것으로 단정하고 화를 내며 흥분했는데, 오히려 아이가 나를 달래면서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그런 애들이 있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약한 아이에게는 강하고 강한 아이에게는 약하고 원래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자기를 차별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을 하면서도 우리 애는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어딜 가든지 그런 애들은 있게 마련이고 새로 다른 클럽에 가도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될 텐데 그렇게 괴롭힘 당하는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니 어찌하리, 아쉽지만 그러면 말을 팔기로 했다. 아이가 다른 클럽을 간다 해도 어차피 말을 팔아야 할 때도 되긴 했었다. 아이 키가 훌쩍 커버려서 말이 아이에 비해 작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 탈만은 해서 말을 놔둘 땅이 있다면 일이년은 더 탈 수 있지만 아이가 몸무게까지 더 붙기 시작하면 말에게 힘이 부치는 일이 된다.

파는 일은 사는 과정을 거꾸로 하면 되었다. 광고신문에 광고를 내자 전화가 오기 시작하고 약속을 해서 살 사람 만나 그 사람이 말을 타 보고 또 우리 아이는 그 사람이 말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관찰하면서 자기가 사랑한 말을 데리고 갈 만한지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도 우리는 아이를 약속 시간에 데려다 주는 일 이상의 관여를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몇 번 사람들이 오가고 내 나이의 아줌마가 사겠다고 왔는데, 우리 아이의 마음과 그 아줌마의 마음이 서로 맞았다. 그 아줌마는 말이 마음에 들었고 우리 아이에게는 그 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2000불에 산 말을 1300불에 팔았다, 중고차 팔듯이. 말이 2년이 더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말을 팔고서 아이는 며칠을 울었다. 그 뒤로 가끔 내가 물었다. 렛슨 받던 곳에 가서 말을 다시 타고 싶으면 데려다 줄까 하고. 아이는 늘 도리질했다, 되었단다. 실연한 사람이 다시 새사람 만나기를 겁내하는 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무렵 나의 286 컴퓨터를 드디어 바꾸어 인터넷이 가능하게 되자 아이는 채팅하는 데 무섭게 매달려 있었다. 주로 미국 서부와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있는 아이들과 채팅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여 사람보다 말을 더 좋아하는 애가 아닌가 하는 나의 의구심을 지워주었는데, 역시 그 나라들에도 말타는 일이 이 나라에서만큼 쉬운 일이니 채팅도 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채팅하면서 만난 친구인데, 자기 집에 말이 있으니 공짜로 와서 타라고 한다면서 데려다 주겠느냐고 물었다. 10대인 아이들만 들어가는 채팅 방이니 부모가 말을 집에서 키울 정도로 부자인 친구인가 싶었다. 그랬더니 아니란다. 19살인데, 이미 커플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18살이면 부모 승락없이 결혼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 나이에 말이 세 마리라면 부자 집 출신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다. 그런데 왜 너에게 와서 그냥 타라고 하니 물으니까 세 마리를 둘이서 돌보기에는, 타면서 운동시키기에는 힘이 드니까 자기가 가서 말을 타주는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고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했다. 자기는 공짜로 말을 타서 좋고 그 커플은 말 운동을 시켜서 좋다는 것이었다.

돈 내가면서 말을 타고 배울 때도 꼬박 데려다 주었는데, 공짜로 말 탄다고 하는데 못 데려다 줄 이유가 없다. 렛슨 받는 것은 한 시간 일이니까 짧은 책 한 권 들고가서 읽으며 기다리면 되었지만, 이제는 좀 두꺼운 책을 가져가면 될 뿐이다.

그래서 시간을 약속하고 그들과 말을 만나러 갔다, 오클랜드를 벗어나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말이 있는 곳은 그들 집은 아니었다. 그 커플 둘 다 그 근처 포니 클럽의 승마 선생인데, 그 회원 아이의 집에 양치는 들판이 있어서 말을 거기에 놓아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 마리 중 하나는 그 커플의 아들 초등학교 선생님 것인데, 팔려고 하여도 팔리지 않아 그들에게 그냥 주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 말을 팔게 되면 돈은 그 선생님에게 주기로 하고. 그리고 짐작과는 달리 부잣집 출신들이 아니라 남자는 집짓는 빌더로 노동을 하고 여자는 어린 아기들 보모 하면서 그냥 먹고 사는 정도인데, 말을 좋아하고 말 타는 것이 좋아서 오클랜드를 벗어나 시골에 집을 얻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그들을 만난 나의 인상은 어째 19살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6살 난 아이가 있는가 의심하는 나에게 우리 애의 말이 그들이 그 채팅방에 들어가기 위해 23살인 나이를 속였다는 것이다. 나이를 속이고 10대 아이들과 채팅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었고 못 미더워했는데, 우리 아이와 같이 말을 타면서 즐거워 하는 그들을 보니 그들 마음이 아직 10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 그 부인하고 둘이서 우리 아이가 말을 타다가 해가 져서 빨갛게 물든 하늘을 등뒤로 하고 나란히 서서 하염없이 말 등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노을이 다 사라져 어둑해질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나는 사람들이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가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참지 못하고 물어볼 수 밖에. 우리 아이의 대답, “말 이야기”. “무슨 말 이야기?” “우리가 탔던 말들에 관한 이야기”. 나의 기다리는 인내심을 시험했던 그들의 긴 대화도 나와는 그 두 마디로 정리가 되어버렸다. 공통의 관심사가 사람을 서로 가깝게 한다는 것은 나도 경험해본 바이지만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좀 특별나지 않나 싶다.

그 이후로 우리 아이는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마다 오클랜드 외곽을 빙빙 돌며 이사하는 그 커플의 집을 따라 이곳 저곳에서 말을 타며 즐겼고, 우울하거나 학교에 가기 싫을 때는 그 말들을 보러 가야 했다. 아이의 말에 대한 평, 말은 사람처럼 변덕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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