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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 냄새가 얼마나 좋은데ㆍㆍㆍ"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5> 딸과 말-中

안장 일체를 끼어서 원래 우리가 마음먹었던 액수 2000불에 흥정하고 나니 말을 데리고 오는 일이 아직 남았다. 다행히 그 아버지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말차(승용차 뒤에 붙여서 끌고 가는 차도 있고 아예 큰 트럭으로 말을 태울 수 있게 되어 있는 차도 있다)를 가지고 있는 이웃에게 부탁해서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말만 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장 말을 우리 아이 클럽까지 데리고 오는 일도 문제였던 것이다. 살 때뿐 아니라 아이가 승마 대회에 참석을 한다거나 옆 클럽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말을 옮길 일들이 있고 그럴 때마다 말을 태우고 갈 차가 있어야 했다. 그 차가 있다고 한들 남편이나 나나 말을 태운 차를 우리 차 뒤에 달고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포니 클럽 멤버인 아이들은 그 부모 둘 중 하나가 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들도 말을 타거나 적어도 어려서 포니 클럽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말을 처음 구경한 것은 제주도로 신혼 여행 가서 조랑말을 본 것이 다인 사람과는 아이의 클럽생활에 관여하는 정도가 아예 차원이 달랐다.

어쨌거나 우리는 컴퓨터 한 대 값으로 아이 나이보다 나이가 많은 말과 안장, 말 비옷, 겨울 옷, 빗질해주는 장비 일체를 살 수 있었고 운송까지 해왔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짐을 했다. 이제부터 말을 돌보는 일은 철저히 아이의 몫이라고, 우리는 포니클럽까지 데려다 주는 일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말에 관한 한 무식할 뿐 아니라 무능하다는 것을.

걸어서 10분 거리이기에 포니 클럽에 아이가 혼자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무식의 소치였다. 안장 등을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차 없이 아이 혼자 갈 수가 없었다. 거기다 차로 데려다 주는 일 외에도 부모가 할 일이 많았다.

한 달에 한 번 working bee라고 해서 정말로 노동을 하러 가야 했다. 클럽의 울타리가 망가진 것을 고친다거나 하는 따위는 쉬운 일이었다. 쑥 내려간 골을 가운데로 하고 오르막 내리막 펼쳐져 끝이 아득하게 보이는 땅에 말이 물먹을 수 있도록 여기저기 물탱크가 있는데, 그것을 서로 연결한 고무 파이프를 이리 저리로 옮기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호주에서 목장 울타리로 사용하기 위해서 들여왔다는 가시나무가 잡목처럼 퍼져 그것을 제거하는 일이 이 나라 목장의 골치거리인데 그 클럽 땅에도 예외없이 이곳 저곳에 뭉테기로 자라고 있어 그것을 피해가며, 그 가시에 긁혀가며 내 두 손을 벌려야 들어가는 굵기의 고무 파이프를 어깨에 메고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일은 며칠 몸살 앓을 정도의 노동이었다.

부득이 참석할 수 없는 부모는 불참하는 대신 벌금 조의 돈을 내면 되지만 그 돈으로 다른 인력을 사는 것은 아니라서 우리가 빠지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일을 더 맡기는 셈이라서 빠질 수가 없었다. 특히 우리는 20년 된 그 클럽에 처음 들어간 동양인이 아닌가. 그러니 여기서도 역시 내가 잘 못하면 동양인,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욕먹이는 일이 된다는 생각에, 또 혹시나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그런 일로 따돌림 당할까봐 기를 쓰고 참석할 수 밖에.

그래도 보트 클럽에 아이가 들어간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벌써 9년 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우리 집 앞 바닷가에 보트 클럽이 있고 아이들이 조그만 돛단배를 타는 것을 보면서 남편이 아이를 그곳 회원이 되게 하고 싶어했다. 알아보니 보트를 클럽에서 빌려주기도 하고, 사도 된다는데, 그 당시에 400불 정도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 띄울 때 보니까 이건 완전히 아버지의 일이었다. 만일 자기 배가 있으면, 말 운송 하듯이 배도 차 뒤에 실고 끌고 와야 하고 그것을 백사장에서 밀고 바닷가로 띄우는 일이 예사가 아니었다. 주말마다 그렇게 배를 띄우고 아이가 근해에서 돛을 움직이며 연습하는 일을 지켜보고 몇 시간 뒤에 들어오면 다시 바닷가로 끌어내어 배를 씻고, 이것은 하루 종일의 행사였다. 포니 클럽과 마찬가지로 경험있는 부모가 아니면 섣불리 덤벼들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 아이가 배 타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어쨋거나 노동하는 일 말고도 클럽 운영을 부모들이 하기 때문에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포니 클럽이나 보트 클럽이 우리나라에서 듣기에는 엄청난 것 같지만 사실은 취미가 같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 부모가 운영하는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아이가 속했던 포니클럽의 경우 넓은 목초지를 시로부터 빌려서 말을 방목하고 풀이 별로 잘 자라지 않는 겨울에는 건초를 여기저기 갖다 놓으면 말들이 알아서 먹는 식으로 말을 돌보았다.

따로 관리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날씨 나쁠 때 말을 넣어둘 마굿간도 하나 없었다. 아이들이 말 타다가 비가 오면 피할 수 있게 지붕과 세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 하나 크기의 스테이션이 하나, 그 옆에 말을 빗질하고 말굽의 흙을 파주는 등 말을 돌볼 수 있도록 수도가 있는 세멘트 바닥 하나, 그리고 부모들이 일할 때 필요한 연장 넣어두는 헛간과 작은 건초 창고 하나,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승마 연습할 수 있게 나무껍질 깔아 다듬어놓은 직사각형의 연습장 하나, 들판 여기저기에 점프 연습할 수 있게 널려 있는 나무 장애물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 시간이 나는대로 학교 끝나면 클럽에 가서 말을 끌고 와 빗질부터 해준 다음, 타고 놀다가 다시 들판에 풀어놓는 일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너른 땅에 널려져있는 말똥을 구획을 정해 주워서 한 곳에 버리는 일을 했다. 한 두시간씩 허리 굽혀 똥을 주워 비닐봉지에 담는 일은 올림픽 때 멋있게 차려입은 승마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었던 승마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안장 실고 다녀 우리 차에서 말똥 냄새 난다고 내가 투덜거리면 그 냄새가 얼마나 좋은데 라고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래 그 냄새까지 좋지 않으면 어떻게 말을 타고 돌볼 수 있으랴 싶었다. 다른 멤버 엄마가 나보고 말타는 일이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고 돌보는 일을 할 줄 알게 만들어서 좋다고 말한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클럽 내에 행사가 있거나 대회가 있을 때는 말갈기를 곱게 따주고 치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그 전 날 미리 할 수 없는 이유는 미리 해놓아보았자 말이 밤사이에 땅에 한 번 뒹굴어 버리면 헛수고이기 때문이었다. 잠을 10시간 이상 자야 하는 잠꾸러기가 이럴 때는 발딱 일어나서 나간다. 나도 덩달아 그 시간에 일어나 태워다 주어야 하긴 하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 행사가 끝나는 오후 서너시까지 버티는 아이가 신통할 수 밖에. 이런 기분은 공부 잘해서 상 타올 때와는 종류가 전혀 다른 흐뭇함을 느끼게 해준다.

행사를 해도 다른 진행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과 자원봉사하는 승마 선생이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다. 클럽들이 모여 지역별로 대회를 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들이 진행 위원이 되어 행사를 만들어간다. 우리 아이는 경쟁하는 것을 극히 싫어해서 대회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럴 때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점프대 옆에 서서 선수들이 제대로 넘는지 체크를 한다거나 점프 장애물을 갖다 놓았다 치웠다 하는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 클럽을 꾸려나가니 한 달 회비가 40불이면 다였다. 그것으로 겨울에는 건초를 사고 시설 중에 고칠 것 있으면 고치고, 행사 때 아이들 상이나 선물 사는 일 등을 다 했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은 부모들이 회의를 통해서 결정되었다.

아이가 하나여서 이 정도지 서넛 되는 아이들의 취미가 각각이면 그 부모가 자기 여가 시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니 이곳에서의 부모가 한국부모보다 아이들 괴외 뒷바라지로 더 시간이 없고 바쁘다고 말한다면 어거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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