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너도 귀를 뚫고 싶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너도 귀를 뚫고 싶니?”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

"엄마, 키위 부모도 우리나라 부모나 똑같애."

우리 아이가 중학교 다니던 어느 날, 한 말이다.

"왜 그런 말 하니?"

아이 친구의 부모가 늘 말했단다. 귀를 뚫는 것은 괜찮아도 문신은 절대로 하면 안된다고. 그런데 그 친구가 정작 귀를 뚫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 애 말은 우리나라 부모나 여기 부모나 똑같다나.

내가 언제 우리 아이에게 이것은 되는데 저것은 안된다고 했다가 이것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안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나를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없는데 아이가 그렇게 말하다니 억울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적 있냐고 항의했더니 우리 아이 말, "보통 엄마 아빠들이 그러잖아, 엄마는 그러지 않지만."

그 말에 내가 누그러져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 친구는 부모 말을 듣고 귀를 뚫지 않았니?"

"아니,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어서 뚫었대."

이번엔 내 반격차례가 왔다.

"부모가 하지 말라는데 굳이 하는 건 키위 아이나 우리나라 아이나 다 같구나" 라는 말을 내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순순히 인정했다.

"응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아니더라도 더 하고 싶어져."

이 말에 우리 아이도 귀를 뚫고 싶은 건가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다.

"너도 귀를 뚫고 싶니?"

"응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나도 하고 싶어."

방금 나눈 이야기가 있는지라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난감했다. 귀를 뚫겠다고 나한테 간접적으로 통고를 하고 있는 건지 뚫고 싶은데 말리면 자기도 친구처럼 해버릴 것임을 암시하는 건지.

어쨌거나 난 내 의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래, 난 귀를 뚫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예쁘게 단장하는 것은 좋지만 원래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는 것은 옛날에 종들에게 소유권 표시를 하기 위하여 했던 거란다, 소나 말 엉덩이에 화인을 찍는 것처럼." (발찌가 노예 사슬에서 나왔으리라고는 혼자 생각했었지만 귀를 뚫는 것이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건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몸에 자기가 스스로 흠집을 내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고, 그런 것 안 해도 너는 참 이쁘단다. 그렇지만 네가 굳이 하겠다면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엄마는 네가 다 큰 다음에 20살쯤 된 다음에도 하고 싶으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정도로 미루어놓고 다른 이유를 들기 시작했다.

"만일 귀를 뚫는다면 일주일 이상 하루에 몇 차례씩 그 자리를 소독해야 한다고 하더라. 네가 혼자 그 일을 할 수 있겠니? 귀 뚫을 때 아프기도 할테고."

그 말에 아이는 대답했다.

"아니 꼭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니까 하고 싶은 거라니까."

나는 노파심에서 아이를 데리고 귀걸이를 사주러 갔다. 귀를 뚫지 않고도 귀에 달 수 있는 걸 사주려고. 그런데 귀를 뚫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귀걸이는 열에 하나도 되지 않았고, 그러나 그 숫자보다도 더 문제는 아이 마음에 드는 것은 다 귀를 뚫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 마음을 달래주려고 갔다가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시대착오적인 엄마라는 것만 증명한 셈이다. 어쨋거나 그 뒤로 아이는 다시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이가 지금까지 귀를 안 뚫은 것은 사실 나의 설득에 넘어가서라기보다는 귀를 뚫은 친구들이 아이 주변에 그리 많지 않아서 귀를 뚫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친구들로부터 별로 받지 않기 때문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난 우리나라 부모와 같은 키위 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