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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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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

조금 멀리 이사가는 기분으로 뉴질랜드에 온지 9년이 넘고 만 10년을 향해 간다. 거창하게 이민간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환경을 바꿔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바램이었다. 그래서 환송나온 친지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뿐 조국을 떠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비장함이나 가슴아픔이 없었다. 와서 보니 우리처럼 답사 한번 안오고, 이민설명회 한 번 안 가보고, 이민 대행회사에 전화 한 번 안 해보고 이민 온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남들에게는 삶의 터전의 뿌리를 옮기는 심각한 일을 우리는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는 정도로 쉽게 생각했다.

이 곳에 와서 처음 놀란 일은 바닷가에 가도 갯내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큼한 바람냄새만 있는 게 신기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바닷가를 따라 이루어진 도시이고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안에 닿을 수 있는 크고 작은 비치가 열이나 있어서 당연히 우리는 바다구경 못해본 사람처럼 뻔질나게 바닷가에 나가곤 했지만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맡던 비릿함이 없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처음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게 되는 일이 차츰 생겨났다. 지금까지 더운 여름 날 서너번 정도. 그 이유가 그 사이에 내 코가 예민해진 건지 아니면 그 동안 우리 동네 바다의 수질이 나빠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처음 이곳 바다를 볼 때의 신선한 감동이 사라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가지, 생각 외로 냄새를 거의 맡을 수 없는 것은 서양사람의 독특한 체취이다. 난 서양 사람들은 모두 다 치즈냄새와 이들이 좋아하는 여러가지 향신료 냄새가 뒤섞인 속이 느글거리다 못해 구역질이 올라오게 하는 냄새를 풍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냄새가 나는 사람은 지금까지 딱 한 사람 보았다. 가끔 슈퍼 계산대에서 같은 줄에 서게 되어 마주치는 남자인데, 부시시한 머리에 수염이 한 자나 아무렇게나 자라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구별할 수 없고 한 낮에 신문 한장이나 빵 한 봉지 들고 서 있는 걸로 보아서는 가족없이 혼자 사는 실업자 같다. 어쨋거나 어쩌다 그 사람이 내 앞이나 뒤에 서게 되면 그런 냄새가 난다. 그 외에는 그런 냄새 풍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 사람들이 향수를 뿌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에 오기 전 나의 고정관념이 틀렸다고 할 수 밖에.

또 하나 엉터리 없는 생각이 깨진 것이 있다. 서양 사람을 거의 영화 속에서만 보아왔기에 나는 서양 사람은 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잘 생긴 줄 알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여기서 잘 생긴 사람을 남자든 여자든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을 어느 날 깨닫고는 내가 영화 속으로 살러 들어온 것이 아니라 여기도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임을 새삼스레 느꼈다. 잘 생긴 사람만 보기 드물 뿐 아니라 키가 큰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아 한국 표준 키인 내가 별로 기 죽지 않고 살 수 있고, 또 가끔 내가 슈퍼에서 계산을 마치고 ‘탱큐’ 대신 나도 모르게 ‘고마와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계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90년대 초반에 한계레 신문에서 후원하고 ‘아침 이슬’을 작곡한 김민기 씨가 총지휘한 ‘겨레의 노래’ 잔치가 한양대학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그 때 새로운 노래들이 작사 작곡되어 처음 불려졌는데, 그 중 문부식 작사의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라는 노래가 있었다. 감옥 안에서 핀 꽃을 보면서 감옥 안에 핀들 꽃이 아니랴 라고 말해주는 노랬였는데, 여기서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은 어디 간들 사람사는 동네 아니랴, 사람사는 동네는 다 같다는 생각이다.

처음 왔을 때 문화충격을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이곳 사람들로부터 가끔 받는다. 그럴 때 글쎄 별로 그렇지 않다는 나의 말과 표정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 곳 키위들은 의아해한다. 우리도 이제는 서구화되어서 너희와 크게 다른 삶을 살지는 않았었다 라고 내가 설명을 덧붙이지만 그 설명이 내 스스로에게도 충분치 않다. 사실은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나의 느낌을 내 짧은 영어로 길게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같지 않다. 분명히 동양문화는 서양문화와 다르고 서로의 관습과 전통도 엄연히 차이가 난다. 거창하게 문화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얼굴 모습,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내가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고 느끼는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설명은 불가능하고 내가 그 동안 살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런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처음에 이곳에 오면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옮겨온 것이니까 하늘을 거꾸로 이고 사는 만큼 당연히 모든 생활이 바뀔 줄 알았다, 속으로 은근히 나의 생각, 삶의 습관, 태도까지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북반구에 여름이 올 때 겨울이 되는 이 남반구에서는 팔자도 바뀌지 않겠냐고 누군가 농담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남반구라서가 아니라 영국 영향을 받은 섬나라여서이긴 하지만 자동차가 왼쪽으로 다닌다든가 그래서 당연히 차의 핸들은 오른 쪽에 있는 것은 오기 전의 상식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키는 것이 아니라 내려야 켜지는 것은 몇 년이 지나도록 익숙해지지 않아 전기 오븐 메인 스위치를 꺼놓고는 한참 만에야 밥이 되지 않을 것을 알아채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겉보기에 거꾸로인 것들이 있다, 당연히. 그러나 엄연히 다른 환경과 관습과 인종 속에서도 어디간들 사람사는 데는 똑같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들, 그것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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