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좌파’는 아니지만 ‘진보’로 꼽히는 노무현 정권을 둘러싸고 진보세력들이 보여주는 분열상이 그렇다. 공산당은커녕 사회민주당 수준인 민주노동당도 의석이 없어 의회에 발을 딛지도 못한 ‘보수공화국’에서 진보세력들이 서로 싸우는 것은 마치 임진왜란을 맞아 몽진하던 선조 옆에서 동인과 서인들이 싸우는 꼬락서니다.
다만 그것을 두고 사색당파니 한국인의 분열주의니 할 것은 없다. 이념을 먹고 사는 좌파나 진보주의자들에게 이념갈등은 숙명 같은 것이다.
1903년 오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분열된 것도 그렇다. 그것은 어떤 정당이 너무 비대해져서 쪼개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회민주노동당은 그 5년 전인 1898년 민스크에서 불과 9명의 사회주의자들이 모여 결성했으나 이들이 모두 붙들려 가서 해체되기도 했다. 당시는 레닌도 시베리아에서 유형중이었다.
그러다 1900년 석방된 레닌이 당의 재건에 힘쓴 덕에 런던에서 열리게 된 당 재건대회 겸 제2차 당대회가 당 분열대회로 끝나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레닌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말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러시아의 현실에 맞춰 폭력혁명을 일으켜야 하며 이에 따라 사회민주당원은 직업적 혁명가로서 소수의 엘리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닌 부르조아 혁명을 주장한 마르토프는 일반적인 대중정당이어야 하고 당원도 그런 대중이면 된다고 맞선 것이다.
그로부터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사회민주노동당이라는 간판은 버리지 않았으나 따로 당조직을 두었다. 달리 말하면 망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두 집 살림을 차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러시아의 민족성이 어쩌니 당시의 혁명가들이 어쩌니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념 투쟁이라면 중국 공산당의 그것이 한 수 위였다. 레닌과 마르토프는 그런 대로 해외의 안전한 거점에서 논쟁을 벌인데 비해 대장정 중에 중국 공산당 수뇌들이 벌인 이념투쟁은 사뭇 살인적이었다.
장정파들은 낮보다 밤을 더 무서워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낮에는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와만 싸우면 그만이었으나 밤이 되면 한편으로는 이와 벼룩과 싸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지들과 싸워야 해서다. 실은 1921년 한국의 독립군들이 러시아의 적군과 싸워 참담한 피해를 입은 자유시 사변도 한국 독립진영 안의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알력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좌파들의 이념투쟁이 우파들의 그것보다 격렬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우파들은 ‘이념’보다 ‘실리’에 따라 움직이기에 그들의 노선차이도 주판으로 셈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그들이 완강하게 쥐고 있는 현실을 좌파들이 뒤집는 방법은 간단할 수 없기에 논쟁도 갈래 갈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근 전북대 교수 강준만이 내논 ‘노무현 죽이기’는 답답하다. 강준만은 오늘날 노무현을 비판하는 세력은 수구언론이나 이에 놀아나는 계층들만이 아니라 일부 개혁적 진보 지식인들이 있으며 이들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태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지엽적인 시각에서 보수주의자들보다도 거칠게 노무현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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