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인간게놈프로젝트(HGP)의 사회적 측면을 다각도로 생각해보는 칼럼을 싣는다. 이번은 그 첫 번째로, 지난 달 14일의 인간게놈프로젝트 종료 선언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고 그것이 과학계에 어떤 파장을 미치고 있는지를 되새겨보는 글을 준비했다. 다음 연재 분에는 ‘인간 유전정보의 사회적 이용’에 관해 다룰 예정이다. Citisci Group
지난달 14일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미국 등 6개국 20개 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해 오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고 발표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사실상 끝났다는 식의 대중적 발표만 해도 2000년 6월의 초안 발표, 2001년 2월에 ≪네이쳐≫와 ≪사이언스≫에 각각 실린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초안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종료 선언을 몇 차례나 하는 것이며, 그러면 과거의 ‘사실상 종료’ 선언은 거짓말이었던 말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번 발표의 내막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00% 완성?**
이번 발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이 염기서열에 대한 상세한 논문도 특정한 유전자의 기능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보도자료로 나온 것은 1990년도부터 2005년까지 약 30억 달러를 투자해 인간 유전체 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하기로 했던 사업이 4월 13일부로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즉 프로젝트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러나 실상, 인간 염기서열의 100% 분석은 사실이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 발표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전체 염기서열 중에서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는 영역의 99% 정도를 분석했고 DNA 구조와 관련돼 있는 약 400군데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빈 공간으로 남겨 두고 있다. 사실 염기 서열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은 지난 2001년 초안에서 거의 다 드러난 상태였는데, 이번 발표는 분석의 정확도나 예상 유전자의 개수를 조금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
정확성 역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밝혀낸 염기서열은 후속 연구를 위한 참고자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이제까지 발표된 염기서열의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수정되거나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또한 연구에 사용된 몇 사람의 유전체를 가지고 인간 유전체 분석이 완료됐다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염기서열의 정확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초안 발표 직후인 2001년에 벌어진 적이 있었다. 염기서열 분석을 놓고 경쟁을 벌이던 국제컨소시엄(이번에 사업 종료를 발표했던)과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는 각기 다른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배경에는 그들이 서로 다른 분석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 국제컨소시엄은 전체 DNA를 일정한 계획아래 조각 낸 다음 서열을 분석하는 계층적 방법을 사용한 반면, 지노믹스사는 처음부터 전체 DNA를 무작위로 조각낸 후 컴퓨터로 다시 맞춰 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국제컨소시엄의 과학자들은 셀레라 지노믹스사가 사용한 방법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생물체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염기의 반복이 많은 인간에게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해 논쟁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설령 정확성이 높은 염기서열을 얻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단백질로 발현돼 기능을 할 것으로 추측되는 유전자의 정확한 개수조차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3만개 이하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보면, ‘종료’의 정의는 다분히 임의적이고 불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번 발표는 DNA 구조 발견 50주년에 맞추어 벌인 거대한 ‘이벤트 행사’에 가깝다. 게놈 연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계속 유지시켜 생명공학의 연구방향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동시에 관련 시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겠다는 의도를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완성됐다’는 말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나란히 등장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내 언론 보도는 이런 의도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간 게놈 지도 100% 완성’, ‘인간의 청사진 완성’, ‘무병장수의 꿈 눈앞에’, ‘인류 대역사 완성’ 등, 언론보도만 보고 있으면 마치 당장이라도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아 보인다. 이런 식의 과대 선전은 일반 시민들에게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심어주면서 시장형성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빛 바랜 ‘공유주의’**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처음 종료 시점이 2005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반이나 앞당겨 조기 달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의 회의적 시각에서 우호적으로 변한 생물학계의 분위기나 관련 기술 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앞으로 열릴 거대 생명공학 시장에 대한 기대와 이로 인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 국립게놈연구소에서 게놈프로젝트 연구를 하고 있었던 크레이그 벤터가 연구소를 나와 거대 생명공학회사와 함께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었으며, 많은 기업들이 새롭게 설립돼 유전체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 것 역시 유전자 상업화에 따른 기대 때문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들이 연구에 가세하면서 게놈프로젝트는 혼탁해졌고 긍정적 의미가 상당히 퇴색됐다. 이런 상황이 2001년에 염기서열 초안을 각각 다른 저널에 발표하도록 만들었다. 공적자금으로 운영된 국제컨소시엄은 1996년 전세계의 누구라도 제한 없이 분석결과를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버뮤다 원칙’을 채택했지만 셀레라 지노믹스측은 자체 분석 결과를 공개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생명공학 시장의 창출은 염기 서열 및 유전자에 대한 특허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벌써 상당수 거대 기업들이 이에 대한 특허를 소유 또는 출원하고 있는데 이미 인간의 예상 유전자의 수보다 12배나 많은 염기서열 조각이 특허 출원, 획득되었다. 동일한 DNA 가닥에 대해 복수의 특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구잡이식 특허 허용으로 인해 보건의료 서비스가 교란되고 후속 연구가 저해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연구의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특허로 인해 25%는 자신이 개발한 임상시험법을 포기했고 48%는 아예 개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질병 관련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해도 임상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의 연구가 필요한데 특허가 그런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설사 기능 유전체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둬 그에 기반한 이른바 '맞춤 치료법'이 가능하게 된다 하더라도 접근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아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글리벡 사태는 특허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의 논의를 보면, 1997년 UNESCO가 채택한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은 인간 유전체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보고 있고, 다양성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상업적 이익에 밀려 그 소중한 정신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 이후 인간유전자를 상품화하려는 경제적 동기로 강력히 추동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지식의 축적과 불치병 치료’라는 애초의 긍정적 목적에서 상당히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과학활동의 전환점**
게놈프로젝트는 현대 과학활동의 새로운 전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2차대전 이후 과학활동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거대과학(Big Science)의 성격을 잘 보여주면서도, 그 동안 공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과학연구가 상업적 성격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001년 국제컨소시엄과 셀레라 지노믹스 사이의 서열 공개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게놈프로젝트는 염기서열 특허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즉 인간 유전체가 공유해야할 어떤 것에서 소유해야할 어떤 것으로 바뀐 것이다.
수많은 바이오벤처들이 새로이 등장했고, 더욱더 탄력을 받고 있다. 국내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대학교수가 바이오벤처를 세워 상업활동을 하는 것이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게놈프로젝트와 여기서 파생된 기업활동들은 그 동안 공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과학활동이 상업화되어 ‘기업과학’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예가 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기업과학자(corporate scientist)’의 출현을 촉진시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기업과학자들이 뿌린 ‘보도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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