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미국의 이라크 침공 작전이 약 3주만에 마무리 국면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번 전쟁은 ‘부당함’을 넘어서 ‘억지’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바그다드를 사실상 함락시킨 전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이 전쟁의 빌미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은닉과 테러지원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최대의 취약점인 것 같습니다.
<사진1> 미 제101공중강습사단이 6일 발견해 1차 조사한 결과 화학무기 물질이 검출된 이라크 카르발라 인근 힌디야 군기지의 드럼통들. @연합뉴스
A) 이 때문에 미군은 ‘후세인 제거’ 못지 않게 ‘대량살상무기(WMD) 색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지난 7일 미군이 힌디야와 나자프의 군사시설에서 화학무기로 의심되는 물질을 발견했지만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좋다 말았습니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카르발라 인근 힌디야의 군사기지에서 드럼통들을 발견해 1차 조사한 결과, 신경가스와 겨자가스 등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고 뉴욕타임스는 당시 현장에 있던 병사 몇명이 현기증과 구토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만, 미군 소식통은 다음날 “정밀조사 결과 이 물질들이 화학물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나자프에서도 7일 겨자가스로 의심되는 물질이 발견돼 미군 병사 5명이 수포와 구토증세를 보였다는 보고가 나왔지만 미군은 “잘못된 보고인 것으로 보인다”고 정정했고 미국 공영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도 미군이 바그다드 인근 지역 무기고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장착한 20기의 중거리 미사일을 발견했다고 보도했지만 이 또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미군은 방독면과 해독제를 찾아냈다며 이를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가진 증거로 제시하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사진2> 미 제101공중강습사단 소속 부대원들이 7일 카르발라 외곽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원료 물질로 추정되는 드럼통이 적재된 창고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Q)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은 현재로서는 궁색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A)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미국이 짐짓 WMD를 이라크에 떨어뜨려 놓고, 발견했다고 주장할 개연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유리한 논조를 펴 온 월 스트리트 저널조차 지난 8일 “미국은 이라크에서 WMD를 찾아내고 그것이 ‘진짜’임을 전세계에 확신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주장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라크가 완전 패색이 짙어진 지금까지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은데다 이라크가 은닉한(?) WMD를 미국이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죠.
Q)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를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확증하는 절차를 놓고 미국과 영국의 견해도 다르다는데요.
A)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유엔 무기사찰단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반면 백악관과 미 국방부는 유엔이 이라크 사찰에 다시 나서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무기사찰단의 활동이 더뎌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전달될 시간만 벌어준다는 주장이죠. 이 역시 억지입니다.
<사진3><사진4> JDAM폭탄 @연합뉴스
Q) 이제 와서 미국은 전쟁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A) WMD 색출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최대 명분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인지 부시 행정부는 최근에는 “그것은 나중에 챙길 문제”라며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6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생물ㆍ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는 물론 우리의 관심사지만 더 큰 목표는 악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고 슬쩍 비껴가는가 하면, MSNBC에 출연해서는 “지금 우리 젊은 군인들이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생물ㆍ화학무기 증거를 찾았느니 못 찾았느니 묻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시점상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며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술 더 떠 CBS방송에 나와선 “이번 전쟁의 목표는 단순히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것 그 이상이 될 필요가 있다”는 억지를 쓰기도 했구요.
피트 페이스 미 합참차장도 7일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찾았느냐는 질문에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이라크 정권 수뇌부가 알아서 판단할 사안이며 전쟁이 끝난 뒤 확실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그동안 의심을 받아온 시설들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이 없어진 부시 행정부는 기왕에 이라크전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이 문제를 아예 핵심 이슈에서 제껴버리려는 속셈인 것 같군요.
Q) 하지만 국제사회의 여론, 특히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하면서 이번 전쟁을 지켜봐야 했던 유엔으로선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 같은데요.
A) 그렇지 않아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8일 “이라크에서 발견되는 어떤 WMD도 신뢰성 확보를 위해 유엔 사찰단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면서 “전쟁이 끝나는 즉시 사찰 활동이 재개될 수 있도록 유엔 안보리의 지도 아래 사찰단이 이라크로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앞서 지난주에도 "IAEA만이 이라크의 핵 무장해제를 검증할 합법적 권위를 가진 유일한 기구"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엘바라데이의 이같은 발언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앞서서도 지적했다시피 이라크의 WMD 은닉을 입증하는 데 혈안이 된 미국이 자칫 어떤 공작(工作)을 할 가능성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 그 하나요, 다음으로 미국이 부결 가능성 때문에 제2차결의안의 유엔안보리 상정을 무시해버린 전과에 대해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어떤 형태로든 징치를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사진5><사진6> 집속탄(cluster bomb) 연합뉴스
Q) WMD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 전쟁에서 WMD를 쓴 쪽은 오히려 미영 연합군 측이죠?
A) 그렇습니다.
우선 3월 20일 미군은 GBU-31 통합직격탄(JDAM)을 이라크에 쏟아 부으면서 전쟁을 시작한 이래, 4월 들어서는 바람과 날씨 변화 등에 맞춰 착탄지점 등을 자동 조절하는 신형 집속탄(CBU-105)을 투하해 국제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습니다.
미군은 2일 B-52 폭격기가 이날 오전 바그다드에서 남하 중인 이라크 탱크 대열을 향해 신형 집속탄(集束彈ㆍcluster bomb) CBU-105 6발을 투하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이날 집속탄은 처참한 민간인 피해를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데 AFP통신은 바그다드 남부 힐라 지역에서 최대 33명의 민간인이 집속탄에 희생됐으며 파편으로 보이는 물체가 민가에서 발견됐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미ㆍ영 전폭기들이 개전 닷새째인 지난달 24일 밤 바스라 상공에 집속탄을 투하했다며 폭탄 파편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무게 454kg의 집속탄은 투하된 후 탄체가 갈라지면서 수백개의 ‘소폭탄’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폭탄으로 지상 가까이 떨어져서 지름 6㎝, 길이 20㎝인 200여개의 소형폭탄으로 나눠져 지름 400m에 걸쳐 흩어진 뒤 폭발해 축구장보다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불구덩이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그 자체로도 인명살상 피해가 큰데다 불발률이 10~25%나 돼 흩뿌려진 불발탄들은 대인지뢰만큼 위험성이 크다고 합니다.
<사진7> 이라크전에서 미군에 이어 영국군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열화우라늄탄. 연합뉴스
Q) 미군에 이어 영국군도 열화우라늄탄(BDU)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요?
A) 독일 제1공영 ARD 방송은 9일 영국군이 남부 바스라 전투에서 열화 우라늄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도했는데요.
ARD 방송은 자체 조사팀이 바스라에서 영국군에게 파괴된 이라크 전차의 포탄관통 구멍을 측정한 결과 방사능 물질 농도가 40.37마이크로Sv로 인근 거리의 측정치에 비해 500배 이상 높아 열화우라늄탄을 쓴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윌리엄스 유엔환경계획(UNEP) 대변인은 가능하면 빨리 우라늄탄 사용 여부와 오염 상황을 조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방송은 강조했습니다.
최근 들어 바그다드를 공격 중인 미군 아파치 전투헬기와 A-10 공격기 등의 열화우라늄탄 사용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미국 측은 이미 열화우라늄탄 사용을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는데요.
열화우라늄탄은 원전연료 제조과정에서 생기는 저농도 방사성 폐기물로 만든 것으로 일반 폭탄에 비해 관통력이 두 배 이상 뛰어나지만, 이 폭탄이 전차를 관통할 때 발생하는 다량의 미세분진을 작전중인 병사들이 다량 흡입할 경우 수일 내에 급성 신장손상 증세를 일으키고 추후 분진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켜 민간인들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 어린이들의 높은 백혈병 발병률과 미국 참전 군인들의 걸프전 증후군 등이 우라늄탄과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국제적으로 이 폭탄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데요.
미군은 1991년 걸프전때 이라크군에 약 320t의 우라늄탄을 퍼부었으며 코소보전쟁에서도 사용한 바 있습니다.
Q) 미국의 이라크 침공 빌미 중 하나인 이라크의 테러지원 의혹은 또 어떤가요?
A) 이 부분이야말로 말그대로 ‘아니면 말고’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너희 둘이 친하고 서로 격려해주는 사이니까 분명히 여러모로 도와줬을 거다. 그러니까 혼 좀 나야 돼”
이를테면 뭐 이런 식으로 전쟁의 빌미에 붙인 건데요.
그런 점에서 최근에 AP통신이 입수했다는 오사마 빈 라덴 육성테이프는 미국의 억지를 어느 정도 뒷받쳐 주는 ‘귀중한 증거’(?)가 될 수 있겠네요.
AP통신은 10일 보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파키스탄으로 넘어온 정황이 있는 압딜이라는 알제리 국적의 인물로부터 지난 7일 빈 라덴의 육성으로 추정되는 테이프를 입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진짜 빈 라덴의 육성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 테이프는 세계 각곳의 이슬람교도들에게 현재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며 “무고한 이라크 어린이들을 복수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시설물들에 자살공격을 벌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란을 광범위하게 인용한 27분짜리 이 테이프는 ‘지하드(聖戰)’는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이슬람 신도들에게 이라크에서 죽임을 당한 이라크 어린이들을 복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알라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는 부시와 블레어에 대항해 단결하고 자살공격으로 그들을 패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빈 라덴을 지원하고 있다고 미영 연합군이 우길 만한 ‘충분한 증거’(?)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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