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 어떠한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이 전쟁이 하루하루 진행되면서 미ㆍ영군의 이른바 ‘정밀’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의 반전시위가 갈수록 거세어져 가고 있다. 이번 ‘과학기술@사회’에서는 반전평화의 대열에서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초청필자 한재각님의 글을 싣는다. ― Citisci Group
나는 궁금한 것이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를 불태우고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 기술자, 엔지니어들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에서 폭격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차율 0%를 장담하고 있는 초정밀 폭탄에 의해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 폭탄의 개발자들은 자신의 어린 아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대신에 영국 전투기를 떨어뜨린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개발자들은 평화로운 식탁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궁금한 것이 한가지 더 있다. 언론매체들은 각종 첨단무기의 성능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토록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무기가 더 많이, 그리고 더 확실히 이라크 민중을 살해하고 사회 인프라를 파괴하는지를 알려주겠다는 것인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면서, 전쟁은 과학기술을, 그리고 과학기술은 전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더 효과적으로, 더 대규모로 살인하고 파괴할 수 있는 전쟁기술의 발달의 역사로 묘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과학기술이 시민사회로부터 유리되어서 강력한 반발과 사회적 논쟁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전쟁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게 되는 극적인 장면들도 전쟁과 관련된 시기에 이루어진다(브레히트가 쓴 <갈릴레오의 생애>를 보라).
핵폭탄의 개발과 사용으로 인한 엄청난 재앙과 그후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절멸의 공포’로 인해, 과학기술자들 자신으로부터 혹은 시민사회로부터 과학기술의 역할, 그리고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 사용되는 것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단지 그것을 사용하는 정치인의 문제인가? 과학기술자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가? 이에 대한 논쟁은 핵폭탄이 떨어진 직후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자에게 그 책임을 절대 물어서서 안된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다. 토마호크 미사일에 발목이 잘려나간 어린 소녀 앞에서 어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미로와 같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요소를 들먹이면서, 과학기술이 무기로 변하고 사용되며 살인하고 파괴하는 것을 감추려해도 자신의 창조물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숨기겠는가. 그러기에 몇 년 전 노벨평화상을 받은 <퍼그워시(Pugwash) 회의>와 같은 과학기술자들의 평화군축단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전쟁에 대해 전세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 순간에, 과학기술자들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군인들과 그 사용을 결정하는 정치인들만 언론매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 과학기술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군사적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의 살인과 파괴를 돕”고 있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체 다른 과학기술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들도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자 혹은 동조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동료인 전쟁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예의(?) 때문인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양심적인 일부 과학기술자들은 반전평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의 과학자 및 엔지니어들의 단체인 <지구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SGR: http://www.sgr.org.uk/)는 침략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3월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와 영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침략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쟁에 쏟아붓는 수십억 달러를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약품을 공급하고 수백톤의 핵무기를 해체하는 데 사용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유엔에 의해서 인정받고 있는 국제적인 과학자와 엔지니어 단체인 <지구적 책임을 위한 국제 과학자 및 엔지니어 협회>(International Network of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INES: http://www.inesglobal.org/)는 지난 2월 1일 세계 과학자 공동체에게 “과학자들이 가진 전문적 역량을 포함해 개인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연대 활동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INES는 대학의 연구자들에게 강의실과 공청회, 그리고 각종 집회에 참여해서 미국의 침공으로 이라크 민중이 겪게될 결과, 중동 평화의 위기, 지구적 경제와 환경이 겪게될 위험,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과 확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촉구했다.
사실 과학기술자들의 반전평화운동 참여는, 혹 우리에게는 낯선 것일지 몰라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앞서 말한 퍼그워시회의는 2차대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을 이용한 전쟁의 참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만들어진 과학기술자단체로, 냉전시기에 핵무기와 같은 대량무기의 감축을 위해서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또한 미국의 경우에는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을 통해서 많은 과학기술자단체들이 구성되었다. 그 중 하나로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우려하는 과학자동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UCS: http://www.ucsusa.org/)은 MD 구축반대운동 등의 대량살상무기의 감축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 역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과학기술자들에게 부시대통령에 항의편지를 보내는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눈을 돌려 한국을 보자. 일년에 1조 이상의 국가연구개발비를 받고 있는 국방관련 연구자들의 모습은 볼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전쟁에 찬성하고 있을 것일까? 아니면 전쟁에 반대하고 있을까? 파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거리에도 인터넷에서도 어디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혹시 한국에는 과학기술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던 20일 미 대사관 앞과 광화문에는 하루 종일 반전평화 집회가 계속 되었다. 각계각층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고 있었으며, 이라크 민중이 겪을 고통에 대한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과학기술자들이 항상 경쟁상대로 삼고있는(그런 의식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의사와 약사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개업의 한 명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전, 오후 2차례 그 자리에 나왔다가, 아예 병원문을 닫고 나와 교보문고 앞 차가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고 한다. 그 한 명만이 아니다. 보건의료인들은 성명서를 만들고 서명을 하여 의견광고를 내고, 이라크 어린이를 위해 의약품을 모아서 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변호사들은 어떤가? 미 대사관 앞에서, 광화문에서, 국회 앞에서 계속되는 집회, 시위, 농성에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각종 언론에 기고하고, 또한 이라크 파병을 막기 위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뿐인가. 가수, 연예인과 영화인들은 청와대 앞에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위해 피켓을 들고 추운 거리에 서있고, 때로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다. 문학인들은 요르단에 ‘종군문인’을 보내고, 추모시를 쓰고, 집회와 시위를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 학생, 종교인, 노동자들이 전쟁에 반대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는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가?
나는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반전평화선언’을 듣고 싶다. 나는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파병반대’ 시위를 보고 싶다. 그것은 한국 과학기술자들이 가진 과학기술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될 수도 있을 것이다(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면 넘어가도 좋다. 굳이 과학기술이 전쟁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과학기술자들의 책임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 보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시민사회의 상식있는 일 주체로서 과학기술자들이 발언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과학기술이 총과 미사일이 아니라 솜사탕이 되더라도, 길거리 노점상이 평화를 외치듯 과학기술자들도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명분없는 이 전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어찌 책임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또한 ‘전략적 국익을 위해서’라고 강변하는 파병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우리나라의 평화를 사기 위해서 이라크 민중의 피로 물든 전쟁을 지지할 수 있는가?
나는 묻고 싶다. 지난 해 이공계위기를 논하면서 목소리 높였던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은 왜 반전평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지. PBS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렸던 과학기술자들에게 반전평화는 얼마나 큰 관심거리인가? 과학기술수석보좌관의 신설에 대해서 환영논평을 냈던 이들은 반전평화에 대해서는 왜 외면하는가? 왜 과학기술자들이 반전평화성명을 조직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가? 일자리를 위해서, 보다 나은 연구환경과 급여를 위해서, 보다 존경받는 지위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긴급한 사회적 과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그런 계층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지지받지 못한다. 나는 지켜볼 것이다. 아니 한국의 시민사회가 지켜볼 것이며, 세계가 지켜볼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자사회가 책임있는 시민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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