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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건설 이상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0> '세계 물의 해' '물의 날'에 부쳐

올해는 자원으로서의 물의 중요성과 환경을 고려한 물 관리를 세계 모든 국가에 알리기 위해 유엔(UN)이 정한 '세계 물의 해'이며, 지난 3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물의 날'이었다. '과학기술@사회'는 '물의 날'을 맞아 초청필자 오은정님의 글을 싣는다. Citisci Group

미국이 결국 국제사회의 동의를 포기한 채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미국과 인류에 대한 ‘잠재적’ 위협세력을 ‘예방적’ 차원에서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음에도, 이것이 사실 중동지역의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주도권 싸움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물론 이라크 전쟁뿐만이 아니다. 기실 인류사의 수많은 전쟁들은 표면에 드러나는 정치적인 명분 뒤에 이와 같은 경제적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를 실질적인 추동력으로 삼아왔으며, 여기에는 생산력 있는 토지와 강을 비롯하여 광물과 보석,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 심지어 여자까지 포함되기도 했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이번 전쟁은 어쩌면 한정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간의 대립과 경쟁이 이제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가용할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비단 석유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전 지구의 산업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석유를 비롯한 많은 자연자원의 이용은 이제 환경을 비롯한 생태계 전반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수자원조차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예측들이 조심스럽게 보고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5일 유엔은 〈세계 수자원개발 보고서〉에서 인구증가와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지구의 1인당 담수 공급량은 앞으로 20년 안에 3분의1이 줄어들 것이고, 지구의 어느 지역도 이 같은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 물평가 프로그램》은 오는 2050년까지 적게는 48개국 20억명, 많게는 60개국 70억 인구가 물부족을 겪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또한 물 문제에 있어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0년, 유엔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한국을 “물 압박 국가군 (여기서 ‘물 압박’의 기준은 1인당 물 사용량이 1,000톤에서 1,500톤 사이를 말한다. 1000톤 미만은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사진설명참조)”에 포함시켰고, 홍수와 가뭄피해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1995년 물가 기준으로, 홍수피해액은 1970년대 연평균 1,323억원, 1980년대 3,554억원, 1990년대 6,288억원 , 2002년 5조 1,497억원 기록)

<사진> 세계자원연구소(WRI)가 발표한 가용담수현황 지도 ― 세계자원연구소가 발표한 가용담수현황 지도. 남한은 동북아국가중의 유일한 물압박 국가로서,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한국의 물 문제가 단순한 자연적 조건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형댐 위주의 물공급 정책의 실패와 물 관리 전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출처: http://www.unep.org/vitalwater)

물론 한국의 수자원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건설교통부나 수자원공사는 경제성장에 따른 물수요의 지속적인 증가는 물 부족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역설해왔고, 여기에 댐 건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지를 천명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ICOLD (국제대형댐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40여 년간 물 부족과 홍수조절에 대비하여 1,214개의 대형댐을 지어왔고, 이는 자랑스럽게도 댐의 보유개수로는 세계 7위 수준이며, 국토면적 대비 밀도는 세계 1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ICOLD 기준에 따르면, “대형댐”은 기초부터 꼭대기까지 높이가 15미터 이상인, 즉 대략 4층 건물보다 높은 댐을 말한다)

댐을 지을 만큼 지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댐을 지어놓고도 홍수와 가뭄피해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이 같은 현실은 이제 물 문제에 있어 더 이상 댐 건설이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가뭄과 홍수의 원인이 아닌가 다시 한번 검토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우리는 이렇게 많은 댐을 짓는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서도, 생수를 사 마시는데 또 돈을 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제하천연대의 디렉터이자 《소리 잃은 강》의 저자 패트릭 맥컬리가 보여주었듯이 댐을 비롯한 대규모 수자원 개발은 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상류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환경과 생태를 무분별하게 파괴한다. 또한 댐 건설 하나로 홍수나 가뭄을 해결하려고 하는 근시안적이고 일방향적인 수자원정책은 수자원 ‘관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댐 건설의 효과를 스스로 더욱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 문제를 댐 건설을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가지는 위험은 단순히 댐건설 자체가 갖는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 위기를 댐 건설을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일정한 한계를 갖는 것은 한국의 물 부족 문제를 단순히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만 논하고 국지적인 문제에 한정시켜, 이것이 전지구적인 산업 및 환경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생태(학)적으로 좀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물 문제의 해결책을 지속적으로 왜곡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의 생성과 분포, 순환, 생물계 및 생태계와의 상호작용 등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문학(水文學, hydrology)의 최근 연구성과는, 단일수종으로 조림된 숲과 단일경작 위주의 농업방식은 생태계를 그만큼 가뭄이나 홍수에 취약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하천의 상류지역에 카지노나 대규모 스키장 건설 등과 같은 레저시설을 개발하여 지속적으로 숲을 파괴하고 하천연안의 무분별한 도시화를 위해 하천을 직강화하는 행위는 자연적인 홍수기능을 가지는 ‘숲과 하천’을 파괴하고 다시 막대한 돈을 들여 홍수조절 댐을 짓는 이중적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도 똑똑히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연구에서는 무엇보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이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켜 결과적으로는 국지적인 홍수나 태풍 등의 이상기후를 더욱 증가시킴으로써, 댐건설과 같은 대증적 처방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도 수자원 개발로 인해 생기는 각종 경제적 이권들이 부동산 투기업자나 개발업자들의 이익을 채움으로써, 물문제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댐건설 사업 추진의 관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흔히 댐 건설의 현실적인 이유들로 내세워지는 전력공급, 가뭄 및 홍수 조절과 같은 것들이 댐건설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오히려 댐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혜택을 훨씬 앞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일각에서 ‘친환경적’ 댐을 지어, 댐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줄이고 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말들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치산치수(治山治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치국(治國)의 기본이 치산(治山)과 치수(治水)라는 것이지만, 이는 또한 치수는 곧 치산과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적으로 치산치수를 통한 물 관리 문제는 단순히 ‘물’ 공급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숲을 비롯한 다양한 토지이용 현황을 포괄적이고 복합적으로 연결하여 해결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곧 물 관리 문제가 대형하천을 위주로 한 댐 건설 증대 및 관련 공학의 발전과 고도화를 통한 수자원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치산치수를 중소하천으로 확대하고, 산업 및 토지이용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물 문제의 해결의 가장 기본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 상수도에서 공급되는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정수기와 플라스틱 병에 들어있는 ‘생수’를 마시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의 도시인들은 물을 둘러싼 갈등과 문제를 몸으로 쉽게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사용과 에너지 시스템의 변환 없이 산업화된 도시 내에서 편안한 생활을 유지하는 ― 석유가 아니라면 하루의 경제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현대인들이 석유를 둘러싼 전쟁을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스펙타클한 게임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그들도 그 전쟁의 암묵적인 공범자이듯이, 우리는 이제 물 문제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는 물을 둘러싼 전쟁에 또 다른 공범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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