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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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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9> 일상화된 ‘비정상적 위험’ (하)

SK글로벌이 그 동안 분식회계를 해 왔다는 것이 검찰 조사로 밝혀진 후, 지난 한 주는 모든 사람이 각종 경제 지표와 국제 신용 평가 회사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1997년의 외환 위기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을 안고서 말이다. 전 국민이 S&P나 무디스와 같은 국제 신용 평가 회사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현실이야말로 ‘글로벌’한 요즘의 세태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경제 운용의 일거수일투족을 월가의 경제 엘리트들에게 감시당하는 ‘비정상적’인 상황 말이다. 하지만 5년 전 경제 시스템이 붕괴한 직후를 상기해 보면, 어쩌면 우리는 다른 길로 갈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는지도 모른다.

역사에 ‘만약’을 도입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현실을 극복하는 영감을 우리에게 줄 수도 있다. 5년 전 경제 시스템이 붕괴한 직후, 최소한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시스템 붕괴’를 예측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함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안들이 시론적 형태로나마 제출되었다. 80년대 이후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동참하자는 주장이 한 쪽에 있었다면, 다른 한 편에서는 그간의 경제 시스템과 차별되는 ‘지역적 대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지난한 여정을 시작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IMF와 초국적 자본들이 요구하던 것이 바로 전자였고,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느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번 분식회계 사태는 끊임없는 빚꾸러기의 늪에 빠져든 것이 아닌지 하는 회의까지 들게 한다. 부유층의 달러와 금 사재기나, 원정 출산 후 아예 외국에 눌러 앉는다는 최근의 현상은 이런 회의와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이 땅에서 살 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빚꾸러기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 실체가 모호한 ‘대안’을 말하던 후자의 주장이야말로 이런 것들을 예상하고 나온 절박한 주장이었다. 경제적으로 가장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좀더 평등한 원칙이 지배하는 시스템, 동북아 최강 국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주변 국가들의 평화를 중재하고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 구성원들이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타자와 이웃을 고려하는 공동체가 온존하는 사회. 바로 이런 사회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희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후자의 주장이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그 실체가 명확해진 ‘자포자기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시스템을 단순히 보완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바꾸는데 더 고민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정책적, 기술적 보완만으로는 앞으로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와 같은 끔찍한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여기서는 특별히 현대 과학기술의 문제가 시스템을 바꾸는 것과 어떻게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주목해 보겠다.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그간 인간과 환경 그리고 사회를 대상으로만 여겨 온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사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의 노동 환경은 ‘노동의 인간화’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과거 두세 사람이 팀 작업으로 해오던 일이 자동 시스템의 도입으로 한 사람 몫이 되고, 덧붙여 감시 카메라의 시선까지 업게 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자동, 감시 시스템이 노동 현장의 효율성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는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한참 먼 것만큼은 분명하다. (최근의 연구는 이런 시스템 도입이 경제적 효율성과 꼭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기술사(技術史)의 사려 깊은 연구들은 20세기 초ㆍ중반 노동 현장에 자동화 기술이 막 도입되었을 당시에도,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 노동자를 통제하고 노동 운동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주된 목표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단적으로 이번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때, 조종실의 기관사가 두 명이었다면 기관사가 보여 준 무책임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애초에 안 나왔을 수도 있다. 또 이런 참사 때마다 생명을 걸고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이나 안전 구제 요원의 안전, 구제 장비를 개선하는데 관심을 쏟았다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함과 동시에 훨씬 더 많은 생명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장밋빛 미래’는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과 같은 하이테크보다 이런 로테크(low-tech)를 통해 지금, 여기의 삶에서 또 우리의 노동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시민들이 압력 행사를 통해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던 안전 방재 시스템의 구축 역시 기술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과 긴밀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우선 리스크가 큰 기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한번쯤 의문을 제기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 우선의 대중교통 체계가 과연 단 하나의 방향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같은 경우는 지하철 건설비용의 1/80만으로 버스 위주의 교통 시스템을 구축해 수송 분담률의 80% 이상을 달성하고 있다.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이후, 서울 지하철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 사소한 사고는 지하철을 더 확장하겠다는 현재의 정책을 재고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런 점은 최근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나 전국 모든 학교의 전산망을 통합하는 NEIS(나이스) 역시 해당된다. 이런 기술 시스템은 중앙 집중화된 관리와 안전을 위한 기술 방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데, 이런 과정이 증폭될수록 그 위험부담 역시 같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안전 방재 시스템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사전 예보제와 긴급 구조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안전’ 개념이 누락된 시스템에서 이런 사전 예보제나 긴급 구조체제가 제대로 작동될 리 만무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술 시스템의 설계 과정에서 ‘안전’ 개념이 거의 고려되지 못하고 있어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일상화된 대형 참사와, 해마다 거듭되는 각종 재해에도 불구하고 국내 연구개발 투자에서 안전 방재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이것은 안전 방재 기술이 경제에 대한 기여도나 물질적 성장과 같은 요소보다는 삶의 질이나 공동체의 안녕과 같은 비경제적 요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도 유력한 세 후보가 모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얘기했지만, 빈말으로라도 안전방재 기술을 언급한 것은 민주노동당뿐이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안전 방재 시스템은 여전히 반쪽짜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97년 쉬운 길을 택한 대가를 두고두고 치루고 있듯이, ‘자포자기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대가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만 97년 쉬운 길의 대가가 사채 시장의 노름빚처럼 결국 내 가족, 내 몸까지 팔아야 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빚꾸러기가 되는 것이라면, ‘자포자기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대가는 남이 가지 않던 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 드는 수고라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우리들 대다수는 아직 이 ‘희망의 길’에 선뜻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시행착오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대체 무엇을 주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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